▲시인 정세훈 새 시집 <부평 4공단 여공>이 시집 곳곳에는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지닌 속내를 제대로 훑는 참시들로 가득하다.
푸른사상
1972년 중졸 소년이 노동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탄광에서 탄을 캐내는 광부였다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도 가고 싶었다아버지는 늘 자기처럼 되지 마라 했다아버지 같은 노동자가 되기 싫었다그러나 소년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큰 공장에 들어가 일하고 싶었다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중학교만 졸업했다는 이유로규모가 작은 영세 공장에 들어갔다노동법 하나 적용받지 못하는 공장이었다공장은 석면가루를 날렸다 화공약품 악취를 풍겨댔다통풍이 안 되어 40도를 오르내렸다
-'2012년 노동판' 몇 토막시인 정세훈이 쓴 시... 그가 살아온 삶을 들추면 가슴이 시려오면서 갑자기 오슬오슬 추워진다. 젊은 날, 우리들 바람과는 전혀 다른 현장노동자가 되어 둘 다 거칠게 살아왔지만 시인이 겪은 노동현실과 내가 겪은 노동현실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창원공단에 있는, 그나마 괜찮은 큰 공장에 들어갔지만 그가 들어간 공장은 "노동법 하나 적용받지 못하는" 영세공장이었다.
나는 8년 동안 그 공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지만 다른 병은 얻지 않았다. 그는 그 콧구멍만한 공장, 석면가루가 날리고, 화공약품이 악취를 풍겨대고, 통풍이 안 되어 40도를 오르내리는 그런 지옥 같은 공장에서 몹쓸 병까지 얻었다. 그때부터 그를 괴롭히는 그 '진폐증'이란 괴물은 그를 노동현장에서조차 떠나게 만들었다.
"함께 일하던 소년노동자들"은 "가슴이 답답하다며 고향으로 갔"고,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했"지만 "그 누구도 왜 죽었는지 몰랐다". "1972년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가 / 1992년에 어쩔 수 없이 나온 노동판"은 그에게 계속 악몽으로 이어졌다. 그 악몽 속에는 "최저 임금제가 생겨났지만 / 노동판은 죽이고 자본만을 살찌우고 있었"고, "비정규직을 만들어 / 노동판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 "노동의 피와 땀을 착취하여 부를 누린 자본"은 급기야 "정리해고라는 칼을 들이대"며 "일방적으로 공장 문을 닫아 버렸"고, 그렇게 쫓겨난 노동자들은 "후진국으로 더 싼 피땀 값을 착취하러" 가야 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그들은 "든든한 비호세력 정권과 함께 / 종북세력 빨갱이로 매도"까지 했다. 그랬으니, 진폐증을 앓고 있는 시인 마음이 오직 속이 탔겠는가.
시인 정세훈은 어쩌면 그 때문에 그에게 찾아오는 죽음을 끝내 이겨냈는지도 모른다. 억울해서, 너무도 분해서 기어이 살아남아 그 어긋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 그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글만 써서 먹고 살지 못하는 세상'이라고 악만 쓰고 있지 않았던가.
나는 시인 정세훈에게 할 말이 없다. 20여 년 동안 그 열악한 작은 공장에서 일하다 몸만 망가진 그에게, 8년 동안 그나마 환경이 나은 대기업체 노동현장에서 일했던 내가 '나 몰라라' 큰 빚을 떠안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 앞부터 그가 쓴 시를 읽으며, 그 시 앞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과 자본을 이어주는 '공공선'을 찾는 시 살려 주십시오빈다나의 신께 빈다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죄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죄공장에서 병든 죄를 까닭 없이 지었으나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으며부러워하지 않았으며게으름 피우지 않았으며열심히 땀을 흘려 살아왔으니제발 살려주십시오빈다나의 신께 빈다살고 싶다정말 살고 싶다허다하게 병치레를 해왔으니시름시름 해왔으니한번쯤은 병들지 않은 몸으로 살고 싶다-'혈관에 스며드는 마취제처럼' 몇 토막시인 정세훈이 노동현장에서 얻은 진폐증은 잔인하고 무서웠다. 오죽 심했으면 "살려만 주신다면 / 인간답게 살겠다고 / 나보다 더 힘든 이를 위해 /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고 // 가망이 희박하다는 수술대에 누워 / 혈관에 스며드는 마취제처럼" 빌었을까. 오죽 지독했으면 당직 간호사들이 그를 보고 "난 여자인 줄 알았다 / 하도 몸이 야위어서 나도 여잔 줄 알았어 / 어쩌면 남자 몸이 이처럼 말랐을까"라고 중얼거렸을까.
진폐증으로 서서히 죽어가던 시인. 그때 시인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어쨌든 살아남아야 그가 바라는 노동과 자본을 이어주는 '공공선'(公共善)을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고 느꼈다. 시인이 이처럼 그 험악한 노동이 몸에 남긴 죽음과 싸우면서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끈질긴 몸부림은 이 시집 곳곳에 피멍으로 박혀 있다.
"김사인 형 앞에 / 내 좋아진 얼굴을 보여주기까지 / 공장에서 일했을 때나 / 공장을 떠나 있었을 때나 / 오직 온갖 병치레로부터 / 살아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제대로 한번 살아야겠다)라거나 "왜 자꾸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지 몰라 / 분명히 그 무덤은 내 무덤이 아닌 게 확실한데 / 어쩌면 그 무덤은 내 무덤이라는 생각이 든다네"(무덤) 등 여러 편이 그러하다.
희망버스에 대해 나는 공생을 위한 것이라 하고그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짓이라 한다고공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을 나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투사라 하고그는 선량한 이들을 선동하는 빨갱이라 한다-'희망버스에 승차하지 못한 날' 몇 토막이 시집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은 노동(죽음)과 자본(삶), 그 사이를 이어주는 끈을 쥐기 위해 시인이 다시 흘리는 땀방울이다. 정세훈 시인은 자본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선과 악처럼 비치는 노동과 자본이 스스로 주고받으며 함께 살 수 있다면 자본주의든 무슨 주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세훈 시인만이 지닌 독특한 철학이다.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 달라지지 않은 해고 노동자 / 원직 복직을 위해 / 시가 울 듯 울었다"(시가 울듯 울었다), "밥을 위한 기도를 위해 제 몸을 불태워주던 / 가난한 나의 한 자루 촛불이여"(밥은 춧불리고 촛불은 밥이다), "민주가 자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 자본이 민주를 위해 존재하는 / 진정한 민주주의를 선언한다"(민주가 자본에게),
"허어 그런데, 오늘 세상의 허다한 고문들이 나에게 물들어 오네 /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해고 노동자"(거룩한 고문), "배가 고파 / 젖꼭지를 물었다가도 / 배를 채우고 나면 / 더 이상 / 한 모금도 탐내지 않듯이"(먹는 법), "나는 이 흉터를 /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흉터), "새 호미는 / 날이 너무 꼿꼿하여 위험하다며 / 일손을 다치게 하고 / 곡식을 다치게도 한다며 / 한사코 바꿔 쥐어주시던 / 날이 반쯤 닳아 무디어진 호미!('옛 고을' 호미) 등이 그러하다.
달동네 단칸 셋방 독거 할머니달랑, 한 장 남은금이 간 연탄부서질세라조심조심노끈으로 동여매시네-'엄동설한' 모두하찮고 힘없는 모든 것 짙푸른 잎사귀로 매달다 "그동안, 1990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5편의 시를 발표한 것을 문단에 나온 근거로 삼아 왔다. 근년에 와서 1989년 '노동해방문학' 5월호에 나의 졸시가 실렸던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문단에 나온 근거를 바로 잡으며, 이를 이 지면을 통해 밝힌다." -'시인의 말' 몇 토막 시인 정세훈 새 시집 <부평 4공단 여공>에 실린 시들은 '엄살'이나 '치장'이 없이 그야말로 '참살이'만 메아리친다. 십대 때부터 현장노동자가 되어 일하다 병을 얻어 긴 세월을 병마와 싸워 기어이 이겨낸 한 시인이 살아온 지옥 같은 삶이 그대로 꿈틀거린다. 그 꿈틀거림은 마침내 새로운 희망이란 씨앗을 싹틔워 이 세상에서 하찮고 힘없는 모든 것을 짙푸른 잎사귀로 매단다.
시인 정희성은 "그의 시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는 많이 아프다. 그런데도 그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한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죽음의 고비를 넘어선 그의 시에는 푸성귀 같은 생기가 있다"라며 "나는 그의 다짐을 '실직' '푸성귀' 같은 시에서 확인하거니와 일찍 세상을 앓다 간 박영근에게 보여준 각별한 애정에서도 그것을 확인한다"고 썼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사인은 "섧고 고달프고 분한 고비에서도 시선과 목소리에 진실함을 잃지 않고자, 사람에 대한 미움에 발목 잡히지 않고자 그가 어떻게 애쓰고 있는지를"이라며 "'엄동설한' '어머니가 우신다' '첫사랑' '야릇한 통증' 같은, 투명하여 가슴 아픈 가편(佳篇)들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여기저기 피어나 있다. 얼마나 힘센 소박함인가. 얼마나 무서운 선량함인가. 무엇이 그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라고 적었다.
시인 정세훈은 195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7살 때부터 자그마한 공장에서 현장노동자로 일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공장에서 얻은 병으로 30여 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2011년 초부터 건강이 좋아져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가 있으며,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 송사리 큰눈이>, 포엠 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 향기>를 펴냈다.
부평 4공단 여공
정세훈 지음,
푸른사상,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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