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오리드의 호수로 뛰어드는 세계각국의 청춘들.
홍성식
2011년 8월 15일 저물녘. 낮 동안 쉼 없이 거리와 숲을 달아오르게 만든 태양이 거대한 수평선 뒤로 사라지고 있었다. 하늘도, 그에 맞닿은 호수도, 더불어 그걸 바라보는 내 얼굴까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평화롭고 적요한 풍경 속에서 백조 두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씨엠립,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이란의 사막도시 야즈드에서 보던 석양 역시 너무나 아름다웠다. 허나, 이곳에서의 일몰처럼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히는 강렬함은 없었던 듯하다. 바로 이 편안함과 나른한 혼곤함을 느끼기 위해 나는 자그마치 19시간을 낡은 버스에서 꾸벅대며 마케도니아의 호수도시 오리드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한 번쯤은 세상과 규범이 정해준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찾아 미개척지를 헤매고 싶어 한다. 어떤 인간이 제게 주어진 평생을 아침에 출근해 점심엔 자장면이나 설렁탕을 먹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하는 단조로운 일상만을 수십 년 살고 싶어 하겠나.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산다. 나 역시 학교를 마친 후 10여 년 이상을 그 단조로운 패턴 안에서 움직였다. 마음속에는 정글을 뛰노는 눈빛 형형한 호랑이가 사는데 그 호랑이는 포장된 아스팔트만을 매일 오가야 했다.
물론 그 삶은 안전했다. 고정적인 몇 푼의 월급과 오랜 노동 후에 주어지는 아주 잠깐의 휴식, 거기에 이 세상 한구석에나마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자족감. 하지만, 그런 서푼 짜리 위로로는 마음속 짐승을 길들일 수 없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쳐 날뛰는 가슴 속 짐승을 어찌하지 않고서는 나까지 미칠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마흔이 가까워져 오던 시기였다. 공자는 사내 나이 마흔을 '세상사 미혹에 흔들리지 아니한다'고 해 '불혹'(不惑)이라 칭했건만, 천만에다. 감히 말하건대 대한민국을 사는 어느 40대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아니할까.
그랬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던 나는 그 흔들림이 주는 현기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20대 초반 청년처럼 배낭을 꾸렸다. '단 1년 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익숙지 않은 풍경 속에 나를 떨어뜨려 보자'는 결심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2011년 1월 27일. 39년 하고도 6개월을 살아온, 아니 아등바등 견뎌온 이 땅에서 떠나던 날은 몹시도 추웠다. 5kg이 넘지 않는 단출한 가방을 메고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비행기에 오르던 그날. '다시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뭇 비장한 마음가짐이었다. 독을 묻힌 칼을 품고 단기필마로 진시황을 암살하러 역수를 건너던 자객 형가(荊軻)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일정 없는 마구잡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