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가까이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철탑. 이곳에서는 매일 진보정당과 노동계가 합류해 촛불집회가 열린다
박석철
바람이 매서웠다. 바람이 불고 인근에 강과 바다가 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50일 넘게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최병승, 천의봉씨는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지난 4일 오전 철탑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철탑 밑을 지키는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으로 달려간 뒤였다. '감시사찰 고소고발과 불법파견사업장 폐쇄·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서다.
"지금 있는 법만 지켜도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최근 이곳 상황은 긴박했다. 비정규직노조는 지난달 28일, 현대차 사측이 지난 2년간 조합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 온 문건을 공개했다. 29일에는 이에 항의하는 부분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후유증도 컸다. 파업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용역경비들에게 폭행을 당해 일부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폭행 당한 조합원 중에는 철탑농성자에게 식사 올리기 역할을 하는 우상수 사무차장도 있다. 늘 식사 준비를 하던 그는 병원 치료 탓에 이날 현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노동부로 달려간 탓에 철탑 바로 밑에 마련된 해고조합원 농성천막도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15명 가량의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철탑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며 밤을 지샌다.
오랜만에 철탑 위 천의봉 비정규직노조 사무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지난번 전화통화 때 "승리해서 내려가면 술 한잔 사주셔야 한다"라고 밝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 걱정을 했다. 그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싸워서 이기려면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격려하셨는데 요즘에는 '빨리 합의점을 찾아 내려오라'고 하신다"며 "못난 자식 걱정 탓에 어머니도 병이 나셨을 것"이라고 했다.
천의봉씨는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문제해결에 빨리 진정성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의봉, 최병승 두 조합원은 50일 넘게 30여 미터 고공 위에서 생활하고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약 2평이 전부다. 둘은 10월 17일 철탑에서 올랐다. 철탑 바로 밑은 현대차 직원들의 주차장이다. 철탑에서는 자신들이 일하던 현대차 공장도 보인다.
농성 초기, 둘은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넓이의 나무합판 위에서 지냈다.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철탁에 묶인 밧줄로 자기들 몸도 묶었다. 처음엔 천의봉씨가 5m 더 높은 곳에 있었다.
30m 철탑위 두 남자의 하루는?얼마 뒤, 고공농성장 바닥은 2cm 두께의 나무합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나무합판이 젖어 붕괴 위험이 제기됐다. 그러자 지역의 건설노조원들이 2평 남짓한 판을 마련해줬다. 그때부터 두 조합원은 함께 지낸다. 최근엔 동료 조합원들이 비와 바람을 막을 수 있게 간이천막도 올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