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이상 씻지도 못하고...죽겠습니다

[고공농성 현장②- 울산 현대차] 농성 50일 넘긴 최병승·천의봉... 건강 나빠져

등록 2012.12.10 16:45수정 2012.12.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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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일 가까이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철탑. 이곳에서는 매일 진보정당과 노동계가 합류해 촛불집회가 열린다
50일 가까이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철탑. 이곳에서는 매일 진보정당과 노동계가 합류해 촛불집회가 열린다박석철

바람이 매서웠다. 바람이 불고 인근에 강과 바다가 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50일 넘게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최병승, 천의봉씨는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지난 4일 오전 철탑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철탑 밑을 지키는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으로 달려간 뒤였다. '감시사찰 고소고발과 불법파견사업장 폐쇄·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서다.

"지금 있는 법만 지켜도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근 이곳 상황은 긴박했다. 비정규직노조는 지난달 28일, 현대차 사측이 지난 2년간 조합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 온 문건을 공개했다. 29일에는 이에 항의하는 부분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후유증도 컸다. 파업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용역경비들에게 폭행을 당해 일부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폭행 당한 조합원 중에는 철탑농성자에게 식사 올리기 역할을 하는 우상수 사무차장도 있다. 늘 식사 준비를 하던 그는 병원 치료 탓에 이날 현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노동부로 달려간 탓에 철탑 바로 밑에 마련된 해고조합원 농성천막도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15명 가량의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철탑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며 밤을 지샌다.


오랜만에 철탑 위 천의봉 비정규직노조 사무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지난번 전화통화 때 "승리해서 내려가면 술 한잔 사주셔야 한다"라고 밝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 걱정을 했다. 그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싸워서 이기려면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격려하셨는데 요즘에는 '빨리 합의점을 찾아 내려오라'고 하신다"며 "못난 자식 걱정 탓에 어머니도 병이 나셨을 것"이라고 했다.


천의봉씨는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문제해결에 빨리 진정성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의봉, 최병승 두 조합원은 50일 넘게 30여 미터 고공 위에서 생활하고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약 2평이 전부다. 둘은 10월 17일 철탑에서 올랐다. 철탑 바로 밑은 현대차 직원들의 주차장이다. 철탑에서는 자신들이 일하던 현대차 공장도 보인다.

농성 초기, 둘은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넓이의 나무합판 위에서 지냈다.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철탁에 묶인 밧줄로 자기들 몸도 묶었다. 처음엔 천의봉씨가 5m 더 높은 곳에 있었다.

30m 철탑위 두 남자의 하루는?

얼마 뒤, 고공농성장 바닥은 2cm 두께의 나무합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나무합판이 젖어 붕괴 위험이 제기됐다. 그러자 지역의 건설노조원들이 2평 남짓한 판을 마련해줬다. 그때부터 두 조합원은 함께 지낸다. 최근엔 동료 조합원들이 비와 바람을 막을 수 있게 간이천막도 올려줬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처음 송전탑에 올랐을 땐 얇은 나무판에 몸을 의지해야 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처음 송전탑에 올랐을 땐 얇은 나무판에 몸을 의지해야 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둘에게 점점 추워지는 날씨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추위 탓에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면 동이 튼다. 그러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 그제서야 잠이 쏟아진다.

낮 12시와 오후 6시 동료들이 올려 주는 하루 두 번의 식사량을 요즘들어 점점 줄이고 있다.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배변에 문제가 발생한 탓이다. 식사준비에는 조합원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

천의봉씨는 "밑에 있는 조합원에게 미안하기도 하고..."라며 생리현상 해결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용변을 검은색 비닐 봉지에 담아 처리하지만 사방이 공개된 장소에서 '일'을 보는 건 무척 부담스런 일이다. 씻지 못해 몸이 가려운 것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들을 힘나게 하는 일도 있다. 철탑 밑으로 하루 몇 차례 지나다니는 동해남부선 기차의 '빵빵' 기적 소리다. 철도노조원들이 힘 내라고 울려주는 기적 소리에 둘은 큰 손짓으로 화답한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촛불로 응원하는 진보정당, 노동계, 시민단체 등 지역민들의 응원도 이들에게는 큰 힘이다. 또한 전국에서 모여든 지지자들이 농성장 아래에서 1박2일 문화제를 열면 둘도 함께 밤을 꼬박 샌다.

대선 후보를 비롯해 야당 정치인들의 철탑농성장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안철수, 이정희, 심상정, 김소연, 김순자 등 전현직 대선후보들이 철탑을 찾아와 전화통화로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는 현대차 공장 앞에서 출근인사로 대신했다. 3일에는 한명숙 민주당 의원이 방문해 최병승, 천의봉씨와 차례로 통화하며 격려했다.

천의봉씨는 "멀리에서 찾아와 격려해 주면 힘이 나는 게 사실이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정권이 바뀌면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법만 지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라며 뒷말을 흐렸다.

 지역의 약사들이 가져다 준 여러 종류의 약. 투쟁을 지지한다는 글이 눈에 띈다.
지역의 약사들이 가져다 준 여러 종류의 약. 투쟁을 지지한다는 글이 눈에 띈다.박석철

4일 천씨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견딜 만하다. 아직까지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송전탑 농성자들이) 허리 통증과 무좀으로 고생이 많다"고 걱정했다. 한 동료는 감기약과 무좀약 등 여러 약이 든 비닐봉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는 "3일 지역의 약사 몇 분이 방문해 여러 약을 갖다 주셨다"라고 말했다. 약 봉지에는 "최병승님 코감기랑 무좀 빨리 나으세요" "천의봉님 허리 아픈 것도 빨리 나아지시길 바래요"라고 적혀 있었다. "OO약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문구도 보였다.

약봉지를 사진 찍으려 하자 한 조합원은 "어제는 한의사 두 분이 오셔서 조합원들 건강을 체크해 주고 가셨다"며 "하지만 철탑 위 두 분은 '검진'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송전탑 농성이 50일 넘게 이어지자 지역사회 각계 각층의 관심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점점 나빠지는 고공농성자들의 건강

 철탑 밑 화로와 철탑이 함께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철탑 밑 화로와 철탑이 함께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박석철

철탑 아래 농성장에 놓인 화로의 불기운이 셌다. 화로 안에서 활활 타는 불길의 따뜻함이 추위에 떨고 있는 송전탑 위 조합원들과 대비돼 기분이 묘했다.

화로 옆에는 나무 땔감이 수북했다. 철탑 아래서 밤을 새는 조합원들이 몸을 녹이려 화로를 마련했는데, 화물연대노조 조합원들이 "땔감으로 사용하라"며 화물 운반 뒤 나오는 목재를 수시로 가져온다.

오후 2시가 넘자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화롯가에 모여 들었다. 조끼의 명찰을 보니 현대차 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었다. 거의 매일 농성장에 온다는 현대차노조 박진철 후생복지실장은 철탑 위 두 비정규직의 건강을 우려했다.

그는 "많은 현대차 정규직노동자들이 이제 거의 오십대로 들어서고 있는데,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며 "자기 자녀들이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이어서,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이 하루빨리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는 '정규직노조 이기주의'는 소설에 불과하다"며 "조합원들과 개별적으로 이야기하면 거의 다 '비정규직이 하루빨리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한다"며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분위기를 전했다.

또 그는 "이 싸움이 힘든 이유는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과 자본의 대리전'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결코 (비정규직노조가) 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깊어지는 겨울, 좁혀지지 않는 의견

 목숨 걸고 철탑에 오른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이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하고 있다.
목숨 걸고 철탑에 오른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이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하고 있다.노동과세계 변백선

현대차 정규직, 비정규직들과 섞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오후 6시부터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은 2010년 7월 이후 활발해졌다. 결국 대법원은 사내하청에서 근무하던 최병승씨가 낸 소송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비정규직노조에서는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조활동 보장, 회사 측의 각종 고소고발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공장 점거 파업 등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대차 사측은 2015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 3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최근엔 최병승씨의 정규직화를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초 측은 1만3000명 비정규직 모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고, 회사는 이 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노사(회사, 사내하청, 정규·비정규 노조, 금속노조 등 5주체)는 지난 6일 오후 특별교섭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똑같은 입장만 주고 받았다. 비정규직 노조는 교섭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7일 하루 전면파업을 돌입하기도 했다.

겨울이 깊어가지만 양측의 견해차는 크다.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이 따뜻한 물에 발을 씻을 수 있는 날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박석철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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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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