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23명이 죽었다... 이 사람들도 위험하다

[고공농성 현장- 쌍용차①] 15만 볼트 철탑, 30미터 상공에서의 복직투쟁

등록 2012.12.10 12:50수정 2012.12.1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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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고공 철탑농성장. 30m 높이에서 한상균(51) 전 쌍용차 노조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부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고공 철탑농성장. 30m 높이에서 한상균(51) 전 쌍용차 노조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부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상규

평택역에 도착한 뒤 잠시 당황했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가려면 몇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정류장은 어디인지 기억이 희미했다. 쌍용자동차 노조가 77일 간 옥쇄파업을 하던 2009년 여름, 평택으로 자주 출근했다.

그로부터 3년 5개월 정도 지났을 뿐인데, '옛 출입처' 가는 길을 잊다니. 그런 내게 '옛 취재원'이 길을 알려줬다. 평택역 광장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천막농성장이 있다. 해고자 한 명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15만4000볼트... 여기에 사람이 산다

쌍용차 공장으로 향하는 버스는 금방 왔다. 조금 이동하자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폭설이 올 거라는 일기예보대로 5일 오전, 평택 하늘은 잔뜩 흐렸다. 30분쯤 달렸을까. 쌍용자동차 공장 굴뚝이 보였다. 굴뚝 맞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높은 송전탑이 보였다. 송전탑에는 붉은색의 거대한 현수막 두 개가 세로로 걸렸다.

'해고자 복직'
'쌍용차 국정조사'

현수막 바로 위, 새집같은 작은 공간이 보였다. 지붕과 벽도 없이 합판 몇 장만 깔아놓은 곳. 바로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지난 11월 20일부터 시작된 '고공 철탑농성장'이다. 약 30m 높이에서 2009년 옥쇄파업을 이끌던 한상균(51) 전 쌍용차 노조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부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철탑농성장은 쌍용차 공장 정문에서 시내 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철탑에서는 쌍용차 공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탑농성장 바로 아래에는 천막 두 개가 설치돼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철탑농성을 지원하고 지키기 위해 설치했다. 30여 명의 해고자들이 돌아가면서 이곳에서 생활한다. 철탑농성장의 하루는 "서로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일로"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속으로 감사 기도부터 합니다. '내가 또 안 죽고 하루를 맞이했구나' 이렇게요. 이어 철탑 위 세 동지도 안전한지 확인합니다. 여기선 '춥다'는 말은 거의 금기어예요. 철탑 위에 저렇게 세 동지가 있는데.... 그런 말 쉽게 하면 안 되죠."


오전 9시께, 추운 날씨 탓인지 해고자 A씨는 연신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잠시 뒤, 그는 철탑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익숙한 솜씨로 죽이 담긴 꾸러미를 밧줄에 묶었다. 9시 30분, 고공농성자들의 아침식사인 죽이 하늘로 올라갔다. 아침식사를 받은 고공농성자들이 이번엔 다시 뭔가를 밧줄에 묶어 내렸다.

 쌍용자동차 철탑 고공농성자들의 '용변통'. 여기에 대소변이 담겨 밑으로 내려온다.
쌍용자동차 철탑 고공농성자들의 '용변통'. 여기에 대소변이 담겨 밑으로 내려온다. 박상규

밧줄에 묶인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꾸러미가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며 땅으로 내려왔다. 세 농성자들의 대변과 소변이 담긴 '용변통'이었다. 애초 생수통이었던 투명색의 용변통에 적힌 문구가 절묘하다.

'이렇게 좋을수가'

A씨는 "사방이 뚫린 저 높은 곳에서 용변 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도 세 농성자들이 잘 조준(?)해서 용변을 보는지 용변통이 늘 깔끔하게 잘 내려온다, 통 주변에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서로 힘들지 않겠냐"고 웃었다.

"서로 살았는지 확인하며 하루 시작"

오전 10시부터 농성장은 무척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철탑농성장 보강공사가 시작됐다. 바로 30m 높이 철탑 위에 천막 설치하기. 금속노조의 한 활동가는 "얼마 전, 겨울비 왔을 때 고공농성자들이 엄청 고생했어요"라며 "앞으로 계속 추울 텐데, 눈 비 막을 공간이라도 마련해야죠"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밧줄이 큰 역할을 했다. 땅에서 해고자 약 10명이 약 6~7m 길이의 철제빔을 밧줄에 묶어 철탑 위로 올렸다. 고공농성자들은 철제빔을 받아 자신들 발 아래에 깔았다. 그 모습이 아슬아슬했다. 땅에서 작업하던 해고자들은 걱정스런 눈으로 위를 쳐다봤다.

 쌍용자동차 철탑 고공농성자들을 위해 땅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밧줄에 물품을 묶어 위로 올리고 있다.
쌍용자동차 철탑 고공농성자들을 위해 땅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밧줄에 물품을 묶어 위로 올리고 있다. 박상규

낮 12시께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은 세상을 차별하지 않았다. 해고자의 어깨 위에, 철탑 농성장에, 공장 지붕에 흰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눈발은 굵어졌고, 금방 폭설로 바뀌었다. 차별 심한 인간 세상이 모두 하얗게 변했다.

모든 작업자들의 신발과 장갑이 젖었다. 1시간쯤 작업했을까. 더 이상 올릴 철제빔은 없었다. 이제부터 허공에서 세 사람만이 작업을 해야 한다. 얼마 뒤, 고공의 한상균 전 지부장이 아래에서 작업하던 해고자 김정운씨에게 전화를 했다.

"장갑이랑 신발이 모두 젖어 동상 걸리겠어! 새 장갑 좀 올려보내줘!"

오후 3시께 고공농성장의 바닥 공사가 끝났다. 이번엔 천막이 올라갈 차례다. 다시 해고자 여러 명이 달라붙어 천막을 위로 올렸다. 녹색 천막이 30m 철탑 위에서 펼쳐졌다. 고공농성자들은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작업했다. 

 5일 철탑 고공농성자들의 점심으로 짬뽕이 올라갔다. 하지만 짬뽕 국물은 금방 식고 말았다.
5일 철탑 고공농성자들의 점심으로 짬뽕이 올라갔다. 하지만 짬뽕 국물은 금방 식고 말았다. 박상규

점심은 오후 4시께에나 준비됐다. 이날은 배달된 짬뽕 세 그릇과 밥 두 공기,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이 올라갔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짬뽕 국물이 식으면 안 되는데..."라며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날씨가 워낙 추운 탓에 국물은 금방 식었다. 이날 평택 온도는 영하 10도 안팎이었다. 바람과 폭설 탓에 체감온도는 더 추웠다.

철탑 주변에는 경찰이 24시간 상주한다. 경찰버스가 3대가 현장을 지키고 전경들이 교대로 현장을 지키고 감시한다. 이날 짬뽕이 올라갈 때 경찰은 "혹시 뭐 다른 게 올라가나" 검사를 했다.

송전탑(철탑)을 관리하는 한국전력 관계자도 이날 현장에 나왔다. 두꺼운 외투와 모자를 눌러쓴 그는 걱정스럽게 철탑을 바라봤다. 그는 "아이고 눈 오고,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저기서 살까"라며 혀를 찼다. 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철탈 고공농성자들을 위한 물품이 밧줄에 묶여 위로 올라가고 있다. 밧줄은 고공농성자들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철탈 고공농성자들을 위한 물품이 밧줄에 묶여 위로 올라가고 있다. 밧줄은 고공농성자들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박상규

- 저 송전탑에는 몇 볼트의 전력이 흐르나요?
"15만4000볼트요."

- 그 정도면 어느 정도 강력한 건가요?"
"(잠시 머뭇) 그걸 어떻게 설명합니다. 저긴 까치도 집을 안 짓는 곳이에요. 자기장이 엄청나니까. 저러다 저 사람들 병나지..."

- 저 곳에 살면 몸에 이상이 오나요?
"왜 이상이 없겠어요. 이야기했잖아요. 까치도 안 사는 곳이라고. 무식한 '새대가리'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피하는 곳이잖아요."

- 다른 문제는 없나요?
"제가 여길 매일 나오진 않아요. 오늘은 눈이 많이 와서 나왔죠. 눈이나 비 오는 날, 그리고 안개가 많이 낀 날에는 전류가 더 잘 통해요. 오늘같은 날은 진짜 위험하죠."

30m 높이에 천막 설치하기

녹색천막 설치가 완료됐다. 땅에서 지켜보던 해고자들은 "이젠 그나마 눈, 비라도 피할 수 있다"며 작게 안도했다. 하지만 천막 크기는 고작 가로 2m, 세로 2m다. 성인 남자 세 명이 생활하기엔 무척 좁다. 대대적인 공사는 해질 무렵인 오후 5시 넘어서 끝났다. 다시 한 전 지부장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추워요. 동상 걸리기 전에 손 좀 녹여야 할 것 같아! 가스버너 좀 올려줘요!"

한 전 지부장은 2009년 여름, 77일간의 옥쇄파업이 끝나자마자 구속됐다. 지난 8월 5일 약 3년 만에 만기 출소했다. 3개월을 밖에서 산 뒤, 이번엔 저 좁은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는 언제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글쎄요. 우린 그저 저 위의 세 사람이 살아서 내려오기만 바랍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잠시 침묵) 진짜 무섭고 불안해요. 사태 해결이 계속 안 되면, 저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릴까 봐요."

해고자 서석문(43)씨의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죽음은 먼 이야기가 아닌 일상"이라며 "곁에 있던 사람이 눈에 안 보이고 잠시라도 전화를 안 받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정말 외롭다"고 덧붙였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철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철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상규

해가 떨어지자 더 추워졌다. 내린 눈은 모두 얼어붙었다. 오후 7시, 철탑 아래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해고 노동자 등 20여 명이 모였다. 철탑 위의 세 농성자는 천막에서 나와 집회를 지켜봤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철탑 위에서 말했다.

"견딜 만하다... 우린 살아서 공장 들어간다"

"이제 천막도 설치했으니, 새 길이 열릴 겁니다. 추위는 견딜 만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염려도 마세요. 우린 더 강해졌습니다. 이 철탑 '둥지'는 투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 될 겁니다. 희망이 있냐고요? 그 질문 수없이 받았습니다. 저는 늘 가슴으로 이야기했어요. 우린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꼭 들어갑니다!"

한 지부장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도 추운 거다. 얼마전 새누리당 소속 몇몇 의원들은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선 후보의 뜻은 아니었다. 쌍용차 노조도 "대선용 립서비스"라며 이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복직과 국정조사를 통한 쌍용차 문제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측은 지난 2009년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 2608명을 해고했다. 455명은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그동안 해고자와 가족 23명이 자살, 질병 목숨을 잃었다.

쌍용차 노조는 "그동안 3년 5개월 동안 안해 본 투쟁이 없다." 김정우 지부장은 최근 41일 동안 단식을 벌였다. 노조 측은 "2009년 정리해고 당시 회사 위기가 조작됐다"며 "당연히 당시 해고는 무효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부 차원에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뭔가 변화가 찾아올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지상에서 일터를 잃은 사람들은 새도 둥지를 틀지 않는 높은 곳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다. 

저녁 8시께 고공농성자의 저녁식사가 올라갔다. 육개장이었다. 육개장도 금방 식었다. 서석문씨는 "세 고공농성자들과 따뜻한 밥 먹고 사우나 한 번 가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밤 10시께 집에 돌아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추웠는데, 겨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3년을 넘긴 쌍용차 싸움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철탑 고공농성장. 농성자들은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철탑 고공농성장. 농성자들은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박상규

#철탑농성 #쌍용차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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