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밤, 야시장 풍경
양학용
그런데 어느새 그 소중했던 한 달이 지나가고, 마지막 종착역에 서 있었다. 촛불 아래에서 아이들이 읽어 내려가는 소감문들… 내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동안 내가 읽었던 그 어떤 글들보다 감동적이었다.
다음날 아침 30년 만에 처음이라는 강추위가 만들어놓은 얼음바다를 보았다. 얼음바다의 낯설음이 잠시 우리 여행이 아직 조금 더 지속될 것 같은 착각을 주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공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서울로, 대전으로, 울산으로, 제주도로, 각자의 집으로 떠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었다. 아이들도 서로를 한 명 한 명 안아주었다. 그때 막내 영준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영준이의 눈물 줄기가 이미 만수 수위에 다다랐던 다른 아이들의 울음보까지 넘치게 만들었다. 서희도 울었다. 도솔이도 유진이도 울었다. 수경이도 나운이도 희경이도 윤미도 하영이도 엉엉 울었다. 상훈이도 정호도 성호도 승현이도 훌쩍훌쩍 울었다. 공항 로비를 오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아내와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자리를 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고생했다. 집에 가면 맛있는 것 많이들 먹어."
▲을왕리 해수욕장의 겨울 풍경
양학용
▲눈부신 겨울, 30년 만의 왕추위. 을왕리 해수욕장
양학용
아내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색깔이든, 이번 여행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훗날 삶을 살아가다 팍팍하고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면 작더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로 인해 많이 웃을 수 있어서, 작지만 자주 행복할 수 있어서.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실은 우리 부부가 그들에게 받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이들의 여행 소감문
|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어울리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물론 이번 여름 방학에 제주도 여행에서 좀 친해지긴 했지만 헤어져 있었던 시간이 있었으니까 또 재회를 했을 때는 나는 너무 어색해서 싫었다. 그리고 정말로 학생들끼리 다녀도 되는 건가 하고 걱정도 됐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싫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며 제주도 여행 때처럼 모두 잘해줘서 또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라오스가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다녀보며 알게 되어 나의 걱정거리와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고 싫었던 여행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재미있는 여행이 되어갔다. 돈을 주면 우리끼리 알아서 숙소도 구하고 밥도 먹으며 여행까지 각자 우리끼리 알아서 한다. 이게 학생인 나에게는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 훌륭한 경치들도 보고 라오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고 평소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경험들도 많았다. 그러면서 이때까지 하지 못한 색다른 생각도 많이 해보고 그 생각과 내 과거의 모습을 반성해 보기도 하고 내 옛날 생각과 그 생각을 바꾸어 보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정말 유익했었던 것 같다. 이런 여행을 청소년 시기에 아니 내 일생에 또 해볼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송승현/15살)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