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에서 클럽으로 넘어가는 길목. 각 클럽의 2층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 여행자들에게는 잘 권해지지 않는다.(출처:http://blog.naver.com/ung3256)
츠토무
클럽의 안내원이 우리 같이 한 눈에 봐도 초보티가 나는 사람들을 무대 앞의 밝은 곳에 자리 잡게 한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클럽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고개를 돌려 보니, 무대 뒤의 어두운 뒷좌석에서는 아가씨들과 남자들의 흥정이 한창이었다. 남자들로만 이뤄진 몇몇 관광팀들은 벌거벗은 아가씨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고, 아가씨들은 남자의 무릎에 앉고 어깨에 기대고 뒤에서 껴안으며 자기들을 사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참이었다. 남자들이 지갑을 꺼내 선불로 얼마 정도를 주는 듯하더니, 여자들과 함께 줄을 지어 빠져나갔다.
"여기 좀 봐요, 여기요! 말 좀 해줘요. 내가 남편이라고 좀 해달라고요."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렸다. 동행한 '깨진 안경'에게 서너 명의 아가씨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한 아가씨는 술이 많이 취했는지 아저씨의 고개를 뒤에서 잡아 빼며 억지로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가 버둥버둥 팔을 저었다.
"헤이, 아가씨. 이 사람 내 남편인데요."내가 쭈뼛거리며 한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 말에 그만둘 아가씨들이 아니었다. 한둘은 떨어져 나갔지만 나머지 두어 명이 끈질기게 붙어 어떤 말을 해도 들을 기세가 아니었다. 후배가 드디어 나를 향해 손나발을 불었다.
"언니, 그만 나가자. 난 추워서라도 더 못 있겠어."나도 동의했다. 이렇게 에어컨을 틀어대는데 여기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어떻게 견디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깨진 안경'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클럽의 아가씨 하나가 끝끝내 후배의 옷소매를 당기며 앞을 막고 서서 한동안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우리는 엉거주춤 문 앞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배가 아가씨에게 손사래를 친다. 그녀와 함께 밖에 나오자마자 후덥지근하던 바깥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질 질 지경이었다.
"뭐라 그래, 그 아가씨가?""자정 넘어서는 남자들도 나온다고, 보고 가라고 엄청 붙잡네요. 새벽 2시부터는 남녀가 무대에서 실제 정사하는 쇼를 보여준대요. 언니, 아까 임산부 봤지? 그 사람 괜찮을까?"한때 우리나라도 '기생관광' '섹스관광'으로 이름이 높았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인들을 위한 기생관광 코스가 평양의 필수 코스로 꼽혔고, 이름난 기생들의 엽서가 발간되기도 했으니, 생각보다 기생관광의 역사도 오래된 것이리라. 이제는 그 옛날의 평양과 서울에서 벌어졌던 섹스관광이 사이공으로, 프놈펜으로, 그리고 방콕으로 옮겨오게 된 것인가. 한창 개방 열풍이 부는 또 다른 사회주의 국가, 미얀마가 다음 후보지일까.
아직도 온몸에 남아 있는 매작지근한 피로 속에 방콕의 거리를 거닐며, 우리는 그래도 이 클럽에 와 보길 잘했다고 이야기했다. 무엇이든,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녀들, 어떻게 살고 있을지얼마 전부터, 한국에서 매매춘 여성들을 섹스 노동자로 인정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현재 불법인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성노동자인 여성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자들이 성을 돈 주고 사는 것이 합법이 될 수 있다면, 여성들도 남성들의 성을 돈 주고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유부남과 유부녀는 매매를 할 수 없게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미성년자들의 성시장 진입을 철저히 막는다면 한 번 생각해 볼만도 할까? 그래도 고개가 저어진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것, 그 자체가 역겹다. 더욱이 가난한 동남아의 소녀들이 방콕으로 팔려오고, 궁벽한 시골의 여성들이 얼굴도 못 본 외국남자와 결혼하고, 임산부까지 돈을 달라고 조르는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이 세상에서는 성산업이라는 것을 근원적으로 찬성하기 힘들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성 노동자를 인정하는 게 오히려 여성을 더 보호한다는 주장이 내 마음에 잠시 혼란을 일으킬지라도, 나는 여전히 성매매 시장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갈 것이다.
최근 방콕을 다녀온 사람들의 말로는 에이즈 천국이 된 태국이 경제불황까지 겹쳐 성산업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사정은 좀 나아졌는지. 시골의 소녀들이 여전히 방콕으로 팔려간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특별히 개선된 것 같지는 않다.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가난과 매춘의 사슬, 그 한 단면을 엿보고 온 동남아 여행 이후에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한 동안 그 기세를 마음껏 떨쳤다. 경제발전과 자유라는 이름과 함께 생겨난 그 가난한 나라들의 사슬은 과연 끊어질 수 있을까.
팟퐁에서 보았던 핑크 비키니의 어린 소녀는 지금 쯤 나이가 꽤 들었을 것이다. 그 험한 곳에서 잘 살아남았는지 의문이다. 문득 방콕 차오프라야 강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머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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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서 봤던 분홍 비키니 그녀, 잘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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