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놈의 중 말사 주지라도 보내라'는 말이 욕이었다?

[서평] 무문관 수행의 전설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

등록 2012.12.11 13:04수정 2012.12.1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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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살을 통해 들여다 보이는 방안처럼 <석영단 제선선사>를 읽다 보면 제선선사가 걸었던 구도의 길도 따라 걸을 수 있고, 생사해탈의 관문이라고도 하는 무문관도 현장을 들여다보며 거닐 듯 엿볼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창살을 통해 들여다 보이는 방안처럼 <석영단 제선선사>를 읽다 보면 제선선사가 걸었던 구도의 길도 따라 걸을 수 있고, 생사해탈의 관문이라고도 하는 무문관도 현장을 들여다보며 거닐 듯 엿볼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임윤수

선을 통해서 중생을 제도하라고 해서 스승이 '제선(濟禪)'이라는 법명을 지었다는 석영당(夕影堂) 제선선사(禪師)는 지금껏 전설 속 인물이었다. -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 131쪽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쓰기만 하면 제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 할지라도 먹기가 꺼려질 겁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내용이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어렵고 지루하기만 하면 읽는 걸 회피하게 될 것입니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보약, 내용도 좋고 재미도 있는 책이 있다면 이런 보약이나 책이야 말로 건강도 챙기고 맛도 즐기는 일석이조, 공부도 하고 읽는 재미도 주는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문관 수행의 전설, 실존 인물 석영당 제선선사

 <석영당 제선선사> 표지
<석영당 제선선사> 표지비움과 소통
박부영·원철·김성우 지음, 도서출판 비움과 소통 출판의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 무문관 수행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 제선선사의 일대기와 무문관 수행이 무엇인가를 읽을 수 있는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야말로 공부도 되고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신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위인들의 전기를 읽는 건 그 위인의 인생관, 가치관, 국가관 등을 가슴에 새기며 시나브로 닮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래를 꿈꾸게 하는 희망의 등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대개의 전기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충분히 담고 있으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조금은 과장되고,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러한 과장이나 비현실적으로 생각되는 부분들조차도 가슴에 새기거나 꼭 알아야할 내용을 강조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꾸밈이나 배경입니다.   


그러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병풍 뒤에 누워 있던 부친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아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잘 왔다. 지금 내 머리 위에 두 사자가 와서 빨리 가자는 것을 자식 보고 가겠다며 내가 통 사정을 해서 이렇게 버티고 있었다"하니, 기부는 "어떤 놈이 우리 아버지를 데려가려 왔느냐"하고 호통을 쳤다. 기부를 본 아버지는 "이제 나는 여한이 없다"하며 편안히 눕고는 세상을 떠났다. -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 21쪽

제선선사의 일대기 중 일부는 '전설'이라는 말에서 어림할 수 있듯이 현실에서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사건이거나 수행이력입니다. 하지만 그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조명하고 있는 골자(骨子)들을 헤아려보면 죽음조차도 거스르며 자식을 기다리는 부정(父情)입니다.


집채만큼이나 수북한 장작더미에 올라 앉아 불을 붙여 자화장(自火葬)을 시도한 기행은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도의 탁마였으며 무오류의 진리인 부처님 말씀을 실천한 수행과정의 이력입니다.

 제선선사가 주지로 있던 논산 관촌사 미륵불
제선선사가 주지로 있던 논산 관촌사 미륵불임윤수

1912년, 제주도에서 출생한 이기부(李奇富)는 1937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윤포산 화상을 은사로 득도(得度)하며 제선이라는 법명을 받아 구도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는 세속인 이기부와 출가수행자로 살아간 제선선사가 선삼매(禪三昧) 행각으로 그 행방이 묘연해진 1971년 5월 5일까지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일대기입니다.

승려들에 대한 가장 심한 욕, '저 놈의 중 말사 주지라도 보내라'

한국불교의 근현대사가 그려지기도 하고, 청정하기만 했던 당시의 승풍도 그려지지만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는 건 역시 무문관(無門關) 수행입니다. 교도소의 독방과 같은 공간, 음식을 넣을 수 있는 작은 구멍만 여닫히는 작은 공간에서 6년이란 세월 동안 두문불출 수행했다는 자체가 전설이며 불가사의한 수행이력입니다.
 
당시에는 승려들에 대한 가장 심한 욕이 '저 놈의 중 말사 주지라도 보내라'는 말이었을 정도로 다들 주지 맡기를 꺼려했다. 아니 혐오할 정도로 사판승 되기를 싫어했다. 그러니 제선선사가 말사 주지에 손톱만큼의 미련도 있을 리 없었다. -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 70쪽

제선선사의 특출함은 무문관 6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무문관에는 많은 선사들이 입방했지만 방을 나오지 않고 6년을 채운 사람은 제선선사 혼자 뿐이었다. 사실은 절 산문을 나서지 않는 동구불출(洞口不出) 만으로도 보통의 수행자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 역경(逆境)이다. -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 119쪽

선사의 행적은 전설도 아니며 제자들의 과장된 부풀림도 아닌 사실 그 자체다.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이를 증명한다. 제선선사의 삶을 두고 기이(奇異)하다거나, 불교의 본래 수행과 동떨어졌다고 폄하하는 시각은 옳지 않다. 어쩌면 선사야말로 가장 부처님 가르침에 가깝게 살다간 분이다. -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 125쪽

너무도 전설 같은 수행이력이기에 전설이 아닌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설의 한 토막을 읽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습니다. 어느 위인의 전기를 읽다보면 어느 새 그 위인이 걸었던 인생길에 동무가 되어있듯이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를 읽다보면 어느새 제선선사가 걷던 구도의 길에 도반이라도 된 듯한 느낌에 젖어듭니다. 하지만 문득 정신차려보면 제선선사가 걷던 무문관 수행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두타행이었으며, 자화장보다도 뜨거운 불심으로 피운 연화장 세계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여느 선방들과는 달리 한번 들어가면 독방살이를 하듯 두문불출하며 수행하는 곳이 무문관입니다.
여느 선방들과는 달리 한번 들어가면 독방살이를 하듯 두문불출하며 수행하는 곳이 무문관입니다.임윤수

구도자 제선선사, 교도소 독방 같은 무문관 6년 수행은 아직도 전설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선방은 많습니다. 산산골골에 산재해 있는 절,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웬만한 절이면 스님들이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들 수 있는 선방이 있습니다. 무문관은 그런 정도의 선방도 아니지만 많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무문관이자 선제선사가 독방살이를 하듯 6년 동안 수행을 한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을 포함해 그 수가 예닐곱 밖에 되지 않는 곳이 무문관입니다.

박부영·원철·김성우 지음, 도서출판 비움과 소통 출판의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를 읽다보면 전설 속 인물처럼 신비롭기까지 한 제선선사가 걸었던 구도의 길도 따라 걸을 수 있고, 생사해탈의 관문이라고도 하는 무문관도 현장을 거닐며 들여다보듯 엿볼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석영당 제선濟禪 선사>┃지은이 박부영·원철·김성우┃펴낸곳 도서출판 비움과 소통┃2012.11.21┃값 1만 5천원

석영당 제선선사 - 무문관수행의 전설

박부영.원철.김성우 지음,
비움과소통, 2012


#석영단 제선선사 #박부영 #원철 #김성우 #비움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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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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