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마지막 왕의 릉, 구형왕릉에 가다

[합천·산청 여행기④]가야국의 업을 잇고 있는 산청

등록 2012.12.19 18:39수정 2012.12.1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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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의 감칠맛 나는 쇠고기구이는 정말 최고였다. 점심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차를 타고는 삼장면 대포리에 있는 '내원사(內院寺)'라고 하는 작은 절로 갔다. 해인사의 말사인 내원사는 신라 말 무염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a 산청군  내원사 계곡

산청군 내원사 계곡 ⓒ 김수종


창건 당시에는 덕산사(德山寺)라고 했다. 이후에 오랫동안 폐사지로 있다가 전후인 1959년 홍원경 주지가 중건한 뒤 오늘에 이른다. 경내에는 비로전과 산신각·심검당·요사채 등이 있다. 아주 작은 절이다. 그러나 유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있다.


비로전 내에 있는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본래 이곳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지라산 중턱에 있던 석남암 폐사지에서 발굴된 것이다. 석불 대좌 중대석에서 발견된 사리함에 적힌 명문(銘文)에 따르면, 776년(신라 혜공왕 2)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한 화랑이 요절하자 그의 부모가 불상을 제작해 모신 것이라고 한다.

a 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

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 ⓒ 김수종


비로자나불상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최초의 유물로 추정되며, 1990년 보물 제1021호로 지정됐다. 풍부한 입체감과 우아한 자비의 얼굴 모습을 간직한 세련된 조각 솜씨를 지니고 있으며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는 8세기 불교미술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아울러 당시 발견된 사리함은 1986년 '영태이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라는 명칭으로 국보 제233호로 지정돼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a 산청군  내원사 삼층석탑

산청군 내원사 삼층석탑 ⓒ 김수종


한편, 대웅전 앞에 있는 보물 제1113호 내원사삼층석탑은 2단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서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긴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불탄 흔적이 있다.

지난 195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옥개석이 부서지고 상륜부가 사라진 것을 1961년에 홍진식이 복원한 작품이다. 그러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아쉬운 작품이다. 조각 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나 고려 초기 유물로 추정된다.


a 내원사  반야교

내원사 반야교 ⓒ 김수종


사실 우리가 내원사를 찾은 이유는 절을 보기보다는 내원사의 계곡을 보기 위함이었다. 내원사는 안에 들어서면 맑은 물소리로 선경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장당골과 내원골의 합류 지점에 있는 관계로 인근의 대포숲까지를 포괄하면 여름 피서지로 그만인 곳이다. 겨울에도 눈이 와서 그런지 풍경이 최고다.

a 산청군 곶감이 좋은 산청군

산청군 곶감이 좋은 산청군 ⓒ 김수종


아울러 절 입구 반야교를 지나면 마치 속세에서 천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황홀해진다. 절을 살펴본 우리들은 이어 다시 산청읍내로 차를 돌려 곶감을 만드는 '토골농원'을 방문했다.


a 산청군 감말랭이

산청군 감말랭이 ⓒ 김수종


산청의 명물 중에 하나인 곶감을 말리는 풍광이 장관이다. 이어 다시 읍내의 '덕산시장'으로 가서 '감말랭이'를 조금 샀다. 아직 완전한 의미의 곶감은 아니지만 상품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흠집이 많은 감을 가공해 만든 감말랭이는 그런대로 맛이 좋아 '변비에 걸리면 어쩌나' 하면서도 한 봉지를 거의 다 먹었다.

a 산청군 곶감이 아주 좋은 산청군, 비싸게 팔린다

산청군 곶감이 아주 좋은 산청군, 비싸게 팔린다 ⓒ 김수종


시장구경까지 마친 우리들은 이곳저곳 공사가 한창인 '동의보감촌'과 '산청한방테마공원'을 차를 한 바퀴 돌고는 금서면 화계리 있는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으로 갔다.  

구형왕릉은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돌무덤이다.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하는데 김유신의 조부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재임했다.

a 산청군 구형왕릉

산청군 구형왕릉 ⓒ 김수종


구형왕릉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한국식 피라미드 형태의 왕릉으로 이끼나 풀이 자라지 않고 낙엽도 떨어지지 않는 신비함이 있다. 전면 7단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했다.

후면으로 올라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깊이 68cm 내외의 감실이 개설돼 있다.

a 산청군 구형왕릉 재실

산청군 구형왕릉 재실 ⓒ 김수종


경사진 산비탈을 그대로 이용하여 삼태기 모양의 너른 묘역과 거대한 돌무더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돌무덤을 중심으로 같은 잡석으로 높이 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 '가락국호왕릉(駕洛國護王陵)'이라고 새긴 석비가 있다.

그 앞에 상돌과 장명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돌짐승이 1쌍씩 배치돼 있으나 이 석물들은 근래의 작품으로 돌무덤과는 시대적 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덤을 둘러싸고 종래에는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의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어서다.

이 무덤에 왕명을 붙인 기록은 조선시대 문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 처음 보이는데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a 산청군 구형왕릉을 알리는 비석

산청군 구형왕릉을 알리는 비석 ⓒ 김수종


여기에 조선 조 정조임금 17년(1793)에는 왕산사에서 대대로 전해오던 나무상자 안에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옷·활 등이 발견돼 이것들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구형왕릉 앞에는 비록 작은 산이지만 왕(王)이라는 말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쓰고 있는 왕산이 있고, 서쪽에도 왕을 모신다는 의미의 왕산사가 있다. 왕릉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너무 초라한 무덤이라 볼품은 없지만,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모습과 허무함, 초라함을 느낄 수 있어 감회가 남달랐다.

여기에 구형왕이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조부가 되시는 어른이라 언젠가 한 번 쯤은 방문하고 싶어 둘러보게 되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꿈에 그리던 눈 오는 날 해인사 방문과 성철스님, 남명 조식 선생을 다시 발견한 기쁨, 초라한 가야의 왕릉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했던 합천과 산청여행이었다. 조만간 다시 날을 잡아 또 방문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산청군 #구형왕릉 #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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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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