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딜라이트 보청기'의 김정현 대표
고재연
그는 "딜라이트 보청기 이전에도 여러 사업을 했다"고 말했다. 중고물품 거래에서부터 자기만의 '무역업'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을 접했고, 거기에 말 그대로 '꽂혔다'.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김정현씨는 공대가 아닌 경영학도 출신이다. 왜 하필 '보청기' 였을까?
"돈 없어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에서였어요."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딜라이트 보청기는 업계 5위 안에 들 만큼 성장했다. 김 대표는 공대 출신이 아니어서 기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보청기 관련 연구소를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했다. 사업의 의미를 설명하면 다들 흔쾌히 도와주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분야인 만큼 혼자서 공부도 많이 했다.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걸 연구소에 가져가 "이건 어떠냐"고 물어보고 조언을 구했다. 당시 기술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중 몇 명은 현재 딜라이트에서 김정현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다.
34만 원짜리 보청기, 이렇게 만든다딜라이트의 대표적인 보급형 보청기는 34만 원이다. 평균 10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하는 시중의 보청기들에 비하면 무척 싼 편이다.
"노인들이 정부의 보조금만으로 살 수 있는 가격으로 팔기 위해 딜라이트의 표준형 보청기는 34만원이에요."정부는 노인들이 병원에서 청력검사를 받고 '난청'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보청기 구입 보조금을 지원한다. 금액은 30만 원이다. 시중의 보청기는 이 금액에 고액을 더 보태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딜라이트 보청기는 4만 원만 내면 살 수 있다.
'싼 게 비지떡'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나의 할머니도 20~30만 원대의 저가 보청기를 사용하는데, 소리가 울리고 소음까지 크게 들리는 탓에 잘 쓰지 않으신다. 그래서 김 대표에게 어떻게 가격이 쌀 수 있는지 물었다.
"우리 보청기는 시중 보청기와 같은 부품을 사용해요. 딜라이트의 34만 원 짜리 보청기는 스펙(기능)으로만 보면 시중에서 100만 원 정도 하는 보청기와 부품이 같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단가를 낮추는 것일까?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먼저 박리다매 형식이다. 딜라이트는 대형마트와 같이 ELP(Everyday Low Price) 전략을 택했다. 싼 값에 많은 양을 팔아 이윤을 얻는 방식이다. 판매규모가 클수록 부품들을 싸게 들여올 수 있어 지속적으로 싼 값에 보청기를 제공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보청기 '표준화'다. 보통 다른 보청기들은 '맞춤형'인 경우가 많다. 딜라이트 보청기는 기사가 직접 방문해 개인의 청력에 맞게 제작하는 맞춤형 대신 '표준화'된 제품을 파는 방식으로 부가적인 비용을 줄였다.
"하지만 사실 34만 원짜리 제품으로는 이윤을 남기기 어려워요. 이윤은 다른 제품을 팔아서 내고 있어요."나의 할머니도 그렇고, 보청기는 아주 작기 때문에 잃어버리기 쉽다. 노인들이 선뜻 비싼 보청기를 구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노인들의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딜라이트는 보청기에 보험을 들어 놓았다.
"보통 노인분 보청기는 가족들이 십시일반해서 사드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워낙 비싸니까. 그런 만큼 분실하면 노인들이 무척 난감해 하세요. 자식들에게 미안해 숨기려 해도 의사소통이 안 되니 금방 티가 나죠." 딜라이트 보청기는 구입 후 1년 이내에 분실하면 보험이 적용된다. 원래 가격의 3분의 1만 내면 새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보험료도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