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사, 동요가수' 손정호 편히 잠들다

노숙인쉼터 비리고발 후 현장에서 동요가수로 활동, 간암으로 45세에 생 마감해...

등록 2012.12.26 12:20수정 2012.12.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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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리의 악사, 동요부르는 가수로 통했던 손정호씨가 45세의 짦은 나이에 암으로 지난 24일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25일 오후 장례식장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거리의 악사, 동요부르는 가수로 통했던 손정호씨가 45세의 짦은 나이에 암으로 지난 24일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25일 오후 장례식장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 조정훈


대구의 노동현장에서, 집회현장에서, 환경문제가 불거진 현장에서 동요를 부르며 힘을 주었던 '거리의 악사' 손정호씨가 짧은 생을 마감해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해고노동자와 노숙인, 사회의 핍박받는 약자들을 위해 운동권 가요 대신 동요를 부르며 위안을 주었던 손정호씨가 지난여름 가벼운 감기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 지난 24일 오후 4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손정호씨는 지난 2007년 노숙인 쉼터의 내부비리와 인권침해를 지역사회에 알리면서 사회복지시설 비리와 인권침해 척결에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는 이 일로 인해 소위 사회복지 시설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이 되지 않았고 결국 생활고에 시달렸다.

손씨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친환경농산물을 유통하는 일을 하면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현장에 달려가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집회현장의 음향감독으로 활동해왔다. 이런 그를 어떤 이는 '딸기아저씨'라 불렀고 어떤 이는 '거리의 악사', '동요가수'라 불렀다.

손씨의 투병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10월 19일 대구YMCA에서 '동료가수 손정호의 쾌유를 비는 통기타와 함께하는 10월의 작은 음악회'를 열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박창근, 윤상원, 황성재 등의 가수들이 출연해 손정호씨가 살아온 이야기와 노래를 듣고 응원을 보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 지난 11월 25일에는 유기농산물을 가공해 판매하는 '이플'에서 '손정호 기운팍팍 콘서트'를 열고 쾌유를 빌기도 했다. 손씨는 식사 한 끼 하는데도 1시간 이상이 걸리는 어려운 싸움을 하면서도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아들이 있고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생을 포기할 수 없다"며 삶의 의지를 나타냈다.

a  대구에서 거리의 악사로 노동현장과 환경현장을 찾았던 손정호씨가 지난 24일 암투병을 하다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동료가수들이 25일 오후 장례식장에서 그를 기리는 노래를 하고 있다.

대구에서 거리의 악사로 노동현장과 환경현장을 찾았던 손정호씨가 지난 24일 암투병을 하다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동료가수들이 25일 오후 장례식장에서 그를 기리는 노래를 하고 있다. ⓒ 조정훈


손씨는 그러나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손씨가 떠난 후 그를 사랑했던 지인들은 25일 오후 대구의료원 장레식장 국화원에서 추모식을 열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천주교대구정의평화위원회 임성무 총무는 "선배랍시고 힘든일 있을때마다 늘 부려먹기만 해서 미안하고 고맙다"며 "4대강 미사때도,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문화제에도, 앞산지키기 천막농성 할 때도 부려 먹기만 했지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임씨는 "노래 부를 사람이 필요하면 '정호야 노래 부를 사람이 없다'고 하면 아무말없이 와서 노래를 불러주었다"며 "고운 목소리와 순한 얼굴에 가요는 안 어울린다. 동요를 불러라. 나중에 '철부지 노래단' 민들자고 이야기했는데..."라며 흐느꼈다.


'땅과 자유' 변홍철 대표는 "오늘 송전탑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청도 삼평리를 갔다 왔는데 손정호가 같이 가서 그가 잘 부르던 '등대지기', '겨울나무'를 같이 불렀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많은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천주교신자였던 손씨와 인연을 맺었던 보현암의 선진스님은 "태어나는 것은 뜬구름과 같고 죽는다는 것은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며 "장자가 부인이 죽은 후 새로운 생의 시작이라며 춤을 추었듯이 우리도 손정호의 죽음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 생각하자"고 말했다.

a  지난 여름 대구성서공단역 앞에서 개최된 최저임금 투쟁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고 손정호씨

지난 여름 대구성서공단역 앞에서 개최된 최저임금 투쟁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고 손정호씨 ⓒ 조정훈


손정호씨와 알고 지내던 노래패 '좋은친구들'은 손씨가 평소 즐겨부르던 '등대지기'를 부르며 추모했고 노동자시인 신경현씨는 손씨를 추모하는 시를 낭송했다. 손정호씨의 발인은 26일이다.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한다고 한다. 해맑은 웃음으로 옆집 친구 같았던, 때로는 친한 형 같았던 손정호씨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떠나갔다.

"노래는
그가 처음 부른 노래는
그리움에게 향하는 편지를 엎드려 꾹꾹 눌러쓰는 밤에
새들과 함께 새들의 날개직과 함께 날아가네
겨울하늘, 쓸쓸하게 언 하늘위로 날아가네
때로 슬픔이었던 한 때의 기억이 몰려와도
슬픔에게 정중히 돌아가달라고 기도하는
그의 노래는, 그가 처음 부른 노래는....."
   -암 투병중이던 손정호씨에게 쓴 신경현의 시 '노래는, 그가 처음 부른 노래는' 중에서 -
#손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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