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사벌왕릉
김수종
이후 사로국이 발전한 신라가 강대해져 충북과 강원도일대까지 세력을 뻗치게 되자 사벌국은 신라의 대 백제 병참기지로서 군사적인 지배를 받고 신라와 백제의 전쟁터로 시달림을 당하자 불만이 누적되었다가 나중에는 진한제국 소속의 소국들까지 신라에 지속적으로 합병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독립을 꾀하였다.
그래서 249년 첨해 이사금 1년에 사벌국이 신라에 반기를 들고 백제에 귀순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신라는 우로를 파견했고 사벌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두 번째 사벌국의 시작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아들 박언창이 사벌대군에 봉해져서 사벌주에 부임하면서부터다. 박언창의 임무는 사벌주를 초적 및 후고구려와 후백제의 마수에서 방어하는 것으로 성을 축조하고 제반군비를 강화하여 쳐들어오는 적과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향각지에서 군웅이 활개 하는 가운데 신라 본국과 연락이 두절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여 박언창은 자립해 사벌국을 선포하고 사벌면 일대에 왕성을 만드는 등 수도로 정비한 뒤 둔진산을 군사 주둔지로 수비의 완벽을 기했다.
그러나 929년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군이 대거 침공하자 사벌국은 격렬히 항쟁했지만 결국 건국 11년 만에 패망하고 말았고 이때에 박언창도 패사했다. 이때 죽은 박언창은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에 매장되었다.
사벌국 멸망 후 박언창의 아들 박욱이 고려왕조의 개국공신이 되었고 그 후에 그 후손인 박견을 중시조로 상산 박씨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사벌면 화달리에 사벌국의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왕릉을 보기위해 갔다. 이 왕릉은 둔진산 남쪽 기슭 화달리 삼층석탑 동북쪽에 있으며, 왕릉이라고 는 하나 정사에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누구의 묘인지 추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 경명왕의 왕자로 사벌국의 왕이었던 박언창의 묘라는 전설이 전한다. 왕릉 옆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그 옆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서북 편에는 재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옛 사벌국의 성이 병성산에 있고 이 성의 곁에 있는 언덕에 우뚝하게 솟은 고분이 있어 사벌왕릉이라 전해오고 있다"라고, <상주군읍지>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만 위치가 "성의 북편 9리쯤 떨어진 곳"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사벌면 화달리 달천부락에 사벌왕릉이라 칭하는 능의 전면에 상석, 망주석, 양마석, 등대석, 비석 등이 있다. 고분의 높이 9척 5촌, 직경 9간이며 사벌왕은 신라 경명왕의 아들로 상산 박씨의 비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작은 소국이었지만, 아직도 사벌국의 왕릉이 남아있다는 것에 이곳 상주사람들은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꼭 보고 가야할 유적지라고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