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남소연
나는 지난 주장글
"노무현이 아니라 민주당 당신들이 문제야!"에서 민주당의 총선 패배 원인이 정권심판론 전략에 있었다며 대선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또다시 같은 전략으로 대선을 치렀다. 민주당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 가장 큰 이유는 책임 정치가 불가능한 지배구조에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기적인 선거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이유는 매번 다른 의견을 취합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선거에 의해 당선된 세력에게 권력을 주고, 반대했던 세력에게 그들을 심판하고 대체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즉, 권력 교체에 따른 책임 정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당내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매번 합의를 위해 갈등을 극복하는 게 어려우니 당내 주류와 비주류가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사안을 협의하는 것보다는 당내 선거에 의해 당권을 교체하는 게 민주적 문화가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민주적 지배구조가 될 수 있다.
새누리당, 당내 책임정치로 정권심판론 비켜갔다 진보진영은 새누리당에는 당내 민주주의가 없다고 비판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꼭 그렇지도 않다. '747'을 내세웠던 친이계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친박계의 당내 경쟁이 존재했고, 그 결과에 승복했기 때문이다. 즉 친이와 친박이 치열하게 경쟁한 뒤 친이가 권력을 잡자 친박은 비주류로 남아 침묵했고, 친이가 실패하자 친박이 대안 세력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오히려 당내 책임정치가 확실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몇몇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이 55~60% 정도 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그중 20% 정도는 박근혜의 당선도 정권교체라고 생각했다. 새누리당 내 비주류의 존재가 주류의 책임을 비켜가면서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얻어낸 것이다. 때문에 민주당의 정권교체 구호는 무의미했다고 본다.
반면, 민주당은 걸핏하면 당대표를 경질했지만, 책임 정치가 실종된 모습을 보여줬다. 손학규·정세균·한명숙·문재인(권한대행)으로 당대표가 바뀌었지만, 실질적으로 당무를 장악한 486세력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뇌는 한 번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면 회로 수정이 어렵기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다. 정권교체론으로 한 번 선거를 실패했으면, 인적쇄신에 따라 새로운 전략이 시도됐어야 했는데 사람이 바뀌지 않았으니 전략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문재인 후보가 단일지도체제를 이끌었기에 총선 때의 집단지도체제와 달리 당내 갈등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아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가 역대 가장 높았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민주당은 무책임한 집단지도체제를 종식하고 임기를 확실히 보장하는 단일지도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친노' '반노'가 누구인지 불분명하지만 만일 실체가 있다면 투명하게 드러내놓고 계파 정치를 제도화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민주당, 계파정치 제도화해야 책임정치 가능'친노'라는 세력이 민주당의 권력을 독점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막상 '친노'에게 실권은 없었다. 총선 공천은 최고위원들이 나눠 먹었고, 이해찬 대표마저도 최고위원들의 반대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민주당의 집단지도체제가 민주당의 유능함을 저해하는 근본원인이라는 지적은 이미 제기한 바 있다(관련기사 :
"민주통합당, 누가 당대표 되도 선거 못 이겨").
민주당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새누리당과 경쟁하려면 혼란스러운 현재의 지배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당내 분열이 불가피하다면 '화합' '단합'같은 말로 봉합하지 말고 분열을 투명하게 드러내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해법이다. 즉 친노·비노·반노·중도파·진보파·좌파 등 이념과 가치 지향을 중심으로 몇몇 계파로 확실히 나눠지는 게 낫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가치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에게 공개되는 게 바람직하다.
민주당은 최고위원 선거를 폐지하고 당대표 경선만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대표 후보는 당내 중도계파를 포섭해 연합세력을 만들고, 당선되면 모든 당권을 쥐고 연합계파의 대표자를 최고위원에 임명하거나 당대표 출마 때부터 최고위원이 팀으로 출마하는 것도 방법이다. 진보는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있기에 당대표에게 임기 동안 전권을 준 뒤 결과로 심판해야 한다.
민주당, 단일지도체제로 책임정치 강화해야선거에 패해도 책임을 물어 경질하지 말고 당대표의 임기를 지켜줘야 선거를 치른 이들이 뒷수습까지 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이 부정 개표 의혹에 대한 처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선거를 치른 이들이 모두 일선에서 퇴진했기 때문이다. 지도부의 책임은 임기가 끝난 뒤 다음 당권 선거에서 재평가하면 된다.
지금의 체제는 매번 당대표로 당선되는 '친노'에게는 물론이고 '반노' 정치인들에게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이 한심해 보이지만, 많은 문제가 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소위 '친노'는 '친노'가 어떤 집단인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제대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보지도 못하고, 당대표 개인의 잘못을 연대 책임져야 하는 부당함이 존재한다. 이해찬 의원은 한명숙 대표의 잘못을 내가 왜 책임져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법하다. '친노' 의원들은 대선캠프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우리가 왜 패배에 대해 책임져야 하느냐 질문할 수도 있다.
반면, '반노'의원들은 '친노'가 연거푸 당대표와 후보를 겸했으니 대선패배에 대해 '친노책임론'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명숙이 퇴진한 자리에 같은 '친노'라고 생각되는 이해찬이 당선되니 책임정치가 실종된 것으로 느낄 수 있다. '반노'는 지금과 같은 국민참여경선으로는 민주당 당권경쟁에서 이길 여지가 없기에 당 밖의 안철수 후보에게서 희망을 찾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또 486은 당대표 뒤에 숨어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실리를 챙기는 것으로 보여진다. 인맥으로 집단을 만들어 당대표를 뒤에서 조종해도,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전문가들의 진입 기회를 차단해도, 이들의 정체성이 모호해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이념과 가치 지향의 계파정치가 공개적으로 이뤄지면 오히려 사적 인맥은 와해될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언젠가 상대가 잘못하면 내게도 기회가 온다는 희망이 있어야 지켜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강행한 것도 선거로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지금처럼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친노'가 또 당권을 장악한다면 '반노'의 집단 탈당과 안철수 신당 창당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본다.
친노 희생으로 민주당 지배구조 혁신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