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벌레이야기>
열림원
스토리를 구체적으로 보면, 다리 한쪽이 불편하고 성미가 유순한 초등학교 4학년인 외아들 알암이가 어느 날 실종되자 아이 엄마는 그를 찾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아이를 찾지 못하자 그녀는 절간에 가서 촛불 공양을 하기도 하고, 아무 교회당에 가 헌금도 아끼지 않는다.
실종된 지 2달 20일이 지난 뒤 아이는 집근처 건물 지하실에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범인은 아이가 다녔던 주산학원의 원장 김도섭이다. 여자는 거의 인사불성의 상태로 지내다가 이웃집 김 집사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알암이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예배와 기도와 헌금을 드린다. 그녀는 신앙심이 자라 주님의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감사의 말을 하게 된다.
김 집사는 이제는 죄인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사람에겐 애초 남을 심판할 권리도 없지만 ... 차제에 그를 용서함으로써 마음 속의 모든 원망과 분노와 미움과 저주의 뿌리를 뽑아내고 주님을 영광되게 영접하라 하였다"고 말한다. 여자는 범인을 용서했다고 생각하고 교도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범인을 면회한 후 두문불출하며 방안에만 틀어박혀 벌레처럼 웅크린 채 절망감 속에 빠져 든다. 면회를 같이 갔던 김 집사에 의하면 범인은 "이미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고 그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김 집사는 "그의 영혼이 이미 주님의 용서를 받은 이상, 그는 '아이 엄마'와도 똑같은 여호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아들딸이 된 것"이라 말하고 "이미 주님의 사함을 받고 있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아이 엄마'를 나무랐다."
그러나 여자는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예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 없어요"라고 외쳤다. 이에 김 집사가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셨다면 우리도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종이 된 우리 인간들의 의무이니까요"라 말하자, 여자는 "(주님이) 내게서 그를 용서할 기회를 빼앗고, 그를 먼저 용서하여 그로 하여금 나를 용서케하시고... 그걸 정녕 믿어야 한다면 차라리 주님의 저주를 택하겠어요. 내게 어떤 저주가 내리더라도 미워하고 저주하고 복수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겠다는 말이에요"라고 절규한다.
범인의 교수형 소식이 라디오로 전해지자 여자는 김 집사에게는 물론 남편에게도 유서 한 마디 없이 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는다. 이에 대해 작가 이청준은 "사람은 자기 존엄성이 지켜질 때 한 우주의 주인일 수 있고 우주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체적 존엄성이 짓밟힐 때 한 갓 벌레처럼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절대자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 같은 절망적 자각은 미물같은 인간이 절대자 앞에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마지막 증거로서 그의 삶 자체를 끝장냄으로써 자신이 속한 '절대자'의 섭리의 세계를 함께 부수고 싶은 한계적 욕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절대자의 섭리란 이름으로 한 인간의 고유하고 기본적인 존엄성이 무시될 때 그 절대자는 폭군이며, 그 절대자 앞에서 주체가 할 수 있는 자기존엄의 길은 절대자가 위협할 수 있는 최후 수단인 주체의 생명을 주체가 스스로 끊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절망 속에서 탈출하는 길은 자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절대자가 누구에게나 언제나 절대자인 것도 아니다. 자살로 절대자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고, 절대자의 섭리를 수용하는 것도 아닌 제3의 길이 있음을 영화 <밀양>은 보여준다.
<밀양>은 소설 <벌레이야기>를 각색한 것인데, 각색이 의미하는 것처럼 <밀양>에는 <벌레이야기>의 내용과 같은 것도 있고 변화된 것도 있다. 영화와 소설의 줄거리는 대체로 같은데, 그것은 유괴범에 아들을 잃고 고통 속에 있던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슬픔을 벗어나고, 이윽고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에 찾아가지만, 그녀는 범인이 이미 주님을 만나 모든 죄과를 참회하고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 평화를 누리고 있음을 목격하고 심한 충격에 빠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