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해단식에서 울먹이는 캠프 관계자들을 다독이며 위로하고 있다.
남소연
어느덧 대선 후 20일이 지났다. 박근혜 당선자는 인수위를 출범시켰고, 민주당도 원내대표를 선출했고, 비대위원장을 합의 추대하기로 했다. 대선 패배의 '멘붕'에 시달렸던 야권 지지자들도 점차 마음을 추슬러가고 있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높은 지지율을 생각할 때, 처음부터 어려운 선거였기에 선거에 진다고 '멘붕'이 올 것으로 생각지 못했다. 그랬는데 선거 며칠 전부터 희망이 보였다. 3차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잘 해내고, 여론조사가 앞선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주변의 야권표가 결집하는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 선거 당일 투표율이 높아지자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랬는데 졌다.
뚜껑을 열어보니 야권표의 결집은 사실이었다. 1470만 표를 얻었다. 역대 최다인 노무현 후보의 1200만 표보다 270만 표를 더 얻었다. 할 만큼 다 했는데도 실패할 때의 무력감, 앞으로 진보집권이란 불가능한가 하는 낭패감에 고통스럽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겨우 견뎠는데,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또 견디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일이 지났다. 그동안 야권 패배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것이 대선평가의 정론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으로 고통스러운 글쓰기지만, 대선 패배에 대한 다른 분석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이글을 쓴다.
지금 대체적인 대선평가는 야권 패배의 원인을 다음의 4가지로 분석한다. 첫째는 '진보필패, 중도필승론'이다. 즉, 문재인 후보가 너무 진보에 치중하고, 중도·보수정책이 없어서 졌다는 것이다. 너무 복지와 경제민주화만 주장했지 성장정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50대 보수화론'이다. 50대가 보수화되었는데, 이들을 잡지 못해서 졌다는 것이다. 나아가 고령화로 인한 유권자구도의 변화로 진보는 앞으로 집권이 불가능한 만큼 중도보수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태욱 교수는 안철수 정당, 중도보수 정당의 필요성을 '50대 보수화론'에서 찾는다.
셋째는 '친노필패론'이다. 문재인 후보는 친노이므로 애초에 대선승리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김영환 의원은 "민주당은 이제라도 친노의 잔도(棧道)를 불태우라"고 주장했다.
넷째는 '안철수 필승론'이다. 안철수로 단일화가 되었더라면 이겼다는 것이다. 법륜 스님은 "한국은 보수가 진보보다 다수인데 진보·보수의 대결로 갔기 때문에 질 수밖에 없었다"며, "이기려면 중도층을 확보해야 하는데 안철수 후보가 중도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철수로 단일화가 되었으면 이기고도 남았다"고 주장했다.
자학적 대선평가는 민주진보 해체의 길이다
이들의 분석을 정리하면 '진보·친노 필패론'과 '중도·안철수 필승론'이다. 모든 분석의 바탕에는 '진보필패, 중도필승론'이 깔려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과연 야권이 이들의 분석대로 했더라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했더라면 문재인 후보가 얻은 1470만 표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진보필패, 중도필승론'에 대해 살펴보고, 나머지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다.
'진보필패, 중도필승론'은 참으로 오래된 주장이다. 민주·진보·개혁적 유권자들은 어차피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관심을 두기보다는 중도 내지 보수적 유권자층에게 관심을 둬야 하고, 중도·보수 유권자를 대변하는 중도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대단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논리 같지만, 이미 그 허구성이 많이 증명되었다.
우선 우리나라 대선에서, 또 대부분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중도후보가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 일이 얼마나 있는지 보자.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민주정부 10년을 이끈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민주당 후보 중에 가장 진보적인 지도자였고, 보수정부를 이끈 대통령들도 대부분 보수정당에서 보수적인 지도자였다. 중도후보 필승론은 사실과 다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중도필승론은 선거는 간절함이 큰 쪽이 이긴다는 선거의 기본원리를 무시한다. 중도필승론의 결정적인 오류가 여기에 있다. 중도에는 간절함이 없다. 중도는 결코 지지자의 간절함을 동원할 수 없다.
중도필승론은 민주·진보·개혁적 유권자의 간절함을 무시한다. 진보·개혁 유권자는 어차피 찍을 정당이 정해져 있으니 중도만 잡으면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진보·개혁 유권자는 무조건 투표하지 않는다. 노무현 후보는 1200만 표를 얻었지만 정동영 후보는 620만 표밖에 얻지 못했다. 반 토막이 났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1470만 표를 얻었다. 정동영 후보보다 850만 표를 더 얻었다. 이처럼 국민의 절반인 48%가 투표로써 진보적 성향을 드러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정치는 보수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역사였다. 민주정부 10년도 모두 소수파 정부였고, 집권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보수 다수파 사회에서 진보 소수파 정부였다. 반면, 이번 대선에서는 진보가 보수와 대등한 승부를 만들어냈다. 진보만의 집권가능성을 생각할 만큼 진보의 성장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이번 선거는 보여줬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후보조차 진보정책을 내걸었던 선거였다. 박 후보도 당색을 빨간색으로 바꾸고,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주장해서 정책의 차별성이 사라진 선거였다. 그런 선거를 두고 '진보필패, 중도필승론'을 주장하는 것은 '자학적 평가'다. 진보정책을 내걸은 박근혜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가 더 보수적인 정책을 내세워야 이길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민주진보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1470만 표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며, 민주진보세력을 자기해체의 길로 이끄는 논리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진보 일변도의 공약과 정책이 내세웠던 것도 결코 아니었다. 4대 성장이라는 성장공약을 내걸었고, 50대를 위한 5가지 정책도 공약했다. 고원 교수는 "중도·보수 정책이 없어서 실패했다는 분석이 있는데, 그건 위험하다. 야권의 자기해체 담론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은 오히려 서민 대중에게 다가서는 진보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대선 때 공약한 진보적인 정책을 국회를 통해 철저히 관철하고 박근혜 정부를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견인하여 한국사회가 보다 진보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추동하고 감시하는 일이다. 민주당이 중도·보수 타령을 하는 것은 대선국면에서 표출된 진보정책을 무효화하려는 새누리당, 재벌, 보수언론에게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빌미를 줄 뿐이다.
자학적 평가에서 벗어나 박근혜에게 배울 용기를 가져야정치권에는 이런 우스갯말이 있다.
"선거에서 이기면 백 명의 일등공신이 나타나고, 선거에서 지면 백 개의 패인이 나온다."대선 이후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 그렇다. 그러다가 보니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넘었는데도 아직 패인을 정확히 모르겠다. 여러 패인 분석이 나왔지만 어느 하나 맞아떨어지는 게 없다"는 말도 나온다.
왜 그런가? 그것은 지금까지 나온 야권의 대선평가가 모두 '왜 문재인이 졌나'만 분석하지, '왜 박근혜가 이겼나'는 분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문재인 후보가 진 측면보다 박근혜 후보가 이긴 측면이 크다. 문 후보는 역대 진보 최다표인 1200만 표(노무현)보다 270만 표를 더 얻었다. 반면, 박 후보는 역대 보수 최다표인 1150만 표(이명박)보다 430만 표를 더 얻었다.
지금까지의 대선 평가는 "문재인 후보가 어떻게 잘못해서 박근혜 후보가 1580만 표를 얻었나"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가 그렇게 잘못했다면 1470만 표를 얻을 수도 없었다. 진보·개혁 지지자의 간절함을 불러낼 수 없는 '중도필승론'으로는 결코 1470만 표를 얻을 수 없었다.
박근혜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1580만 표를 얻은 것은 '문재인의 잘못'보다 '박근혜의 힘'에서 기인했다.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후보다. 이번 대선은 시대정신과 유권자구도 모두에서 야권에 유리했다. 그것을 돌파해낸 것이 박근혜 후보 개인의 힘이었다. 새누리당 후보가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박근혜 후보는 역대 대선 후보 중 가장 센 후보였다. 그 다음이 1992년 대선의 김영삼 후보일 것이다. 왜 박근혜 후보가 센 후보인가? 그것은 첫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보수 세력과 영남, 5060세대라는 한국의 주류세력에게 거의 육친(肉親)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의 간절함을 동원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둘째인데, 그가 지난 15년 동안 해온 정치를 통해 나름의 국민적 신뢰를 쌓았다는 점이다.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에 반대하여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2007년 대선 때는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근혜 후보는 독재자의 딸이기는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의회를 부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역대 대통령 중에서 YS와 DJ 다음으로 국회 경험도 많고, 정당지도자 경력도 길다. 그 정도면 의회지도자 출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당대표를 여러 차례 맡아 대체로 성공했다. 민주당에서 당대표는 독배와 같은 자리였다. 그 자리를 맡아 성공한 지도자는 거의 없고, 대부분 중도하차했다. 반면 박근혜 당대표는 거의 언제나 성공했다.
그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대표의 가장 큰 역할이 선거라는 것에 기인한다. 지지자들의 열정을 동원가능한 지도자만이 당대표로서 성공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는 그것을 할 수 있었다. 영남과 보수 세력, 5060세대라는 우리 사회 주류세력을 동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선거승리가 가능했고, 그렇기에 당대표로 성공했다.
셋째, 박근혜 후보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복지와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여 시대정신인 진보정책에 대한 물 타기에 성공했다. 민주정부 10년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의 시대를 돌파한 진보대통령이었다면, 박근혜 당선자는 진보의 시대를 돌파한 보수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박근혜 후보가 이전(以前)의 대선처럼 보수의 시대 대선후보였다면 이번 대선과 같은 접전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일방적인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결과 되었을 것이다.
민주당, 자신의 의지로 현실을 돌파해낼 차기 지도자 키워야반면, 야권의 후보는 어떠했나?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 경선을 통해 뽑혔고, 따라서 가장 나은 후보로 판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만 한 파괴력은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인 후보는 정치를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게다가 안철수 후보는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낮은 지지율에서 출발한 문재인 후보가 1470만 표, 48%의 득표를 한 것은 나름의 리더십이 작용한 결과였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문재인 후보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국민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넘어서는 문재인 후보의 독자적 리더십이 부각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보기에 이번 대선평가의 핵심은 이것이다. 왜 민주당은 박근혜 후보처럼 강력한 대선후보를 키우지 못했을까? 왜 민주당은 박근혜 후보와 같이 지지자와 육친(肉親)적으로 결합된 지도자를 키우지 못했을까? 왜 김대중, 노무현 이후에는 그런 지도자가 없어진 것일까?
민주정부 10년을 만든 두 지도자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지도자가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1971, 1987,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대선 4수 끝에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된 지도자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15년 동안 부산 출마와 낙선을 겪으며 영남민주화세력이라는 소수파의 고통을 돌파해내 결국 2002년 당선되었다. 이들은 모두 객관적 여건이 나빴던 보수의 시대를 주체적 리더십으로 돌파해낸 진보 대통령이었다.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역사에서 성공한 진보정치인들은 모두 패배를 거듭하며 스스로 단련한 지도자들이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오랜 정치 경력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 역시 나치에 저항하며 망명생활을 견디는 등 오랜 정치 역정 끝에 총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퇴임 후에도 여전히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1989, 1994, 1998년 세 차례의 대선 패배 후, 4수 끝에 2002년 당선되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역시 1965, 1974년 두 차례 대선 패배 후, 삼수 끝에 1981년 당선되었다. 이처럼 세계의 모든 성공한 진보정부 지도자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사람이 없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의 덕목으로 포르투나(fortuna, 자기 밖의 운명적 힘)와 비르투(virtu, 자신의 의지와 능력) 두 가지를 들고는, 포르투나의 힘은 절반을 넘지 못하며, 절반 이상은 비르투에 달려 있다고 역설한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진영이 얻어야 할 교훈은 결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훼손하는 '중도필승론'이 아니다. 오히려 리더십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은 시대정신과 유권자구도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민주당은 지금부터 비르투(virtu), 즉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현실을 돌파해낼 능력을 갖춘 차기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다시는 이번 대선처럼 대선후보가 본인의 권력의지 없이 '불려나오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본인이 적극적인 권력의지를 가지고 도전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후보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 실패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도 이번의 패배를 복기하고 적극적인 권력의지를 갖춰 다시 도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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