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투쟁' 마다않던 현대차 노조, 비정규직 살릴 수 있다

[주장] 비난 여론 일 때마다 지원해준 시민사회 응원 기억해야

등록 2013.01.12 17:30수정 2013.01.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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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여름, 비정규직법안에 반대해 울산시청 앞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 중인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현대차노조. 보수층의 비난에도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현대차노조를 응원했다
2006년 여름, 비정규직법안에 반대해 울산시청 앞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 중인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현대차노조. 보수층의 비난에도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현대차노조를 응원했다박석철

3년 전 이맘때다. 현대차 노조(정규직 노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와 관련된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게재되고 포털사이트에 송고되자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수백 개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관련기사 : 모두 욕하는 현대차 노조를 왜 옹호하냐고?)

비난 댓글의 요지는 "왜 '귀족노조'인 현대차 노조를 옹호하냐"는 것이었다. 수 년간 지속된 보수언론의 매서운 공격은 사회 분위기를 바꿔놓았던 것이다. 노조 측의 "세계 최장 노동시간" 이라는 항변은 묻혀버렸다. 누리꾼들은 열이면 열 비슷한 비난을 쏟아냈다. 2010년 1월 2일이었으니, 정초부터 1년에 먹을 욕을 한꺼번에 먹은 셈이었다.

해당기사는 지난 수 년간 현대차 노조가 벌여온 정치파업에 대해 적은 것인데, 2006년 비정규직법안 통과를 앞둔 저지 총파업, 2007년 한미FTA 반대 총파업,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잔업거부 촛불집회 참석 등에서 현대차 노조가 앞장선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보수언론은 물론 대다수 언론은 잇따라 '귀족노조', '배부른 노조' 등 비난기사를 실었고, 여론은 악화됐다. 유명 보수정치인과 보수단체는 서울에서 울산 현대차 공장 앞으로 몰려와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보수언론과 보수층의 비난의 핵심은 "왜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고 정치파업을 하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부른 노조라는 것이다.

당시 현대차 노조 집행부와 민주노총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서 정치투쟁은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요구하고 사회적 모순에 맞선 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정치투쟁 중 하나"라고 맞섰다.

각종 사회 현안과 노동계 투쟁에 앞장선 현대차 노조

오래 지속된 부정적인 여론몰이에 현대차 노조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받은 고통은 심했다. 보수언론의 끊임없는 공격에 조합원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곤혹스러워 했다. 저녁 9시 뉴스를 본 시골의 아버지가 현대차 노조 조합원인 아들을 걱정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기억에 남는 것은, 보수언론과 보수층의 잇딴 공격이 있을 때마다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노조의 정치파업은 정당하다"고 지원하고 나선 것이었다. 힘을 얻은 현대차 노조는 이 모든 비난여론에도 굳건히 나섰다. 왜곡보도를 하는 보수언론을 재소해 승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차 노조에 모든 시선이 집중돼 있을 때였다. 상대적으로 소홀했거나 혹은 외면된 문제가 있었다. 2004년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다 수없이 해고되고 구속된 현대차 비정규직들이었다. 그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차별받는 모순에 항변하고 있었지만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그사이 전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이 시나브로 늘었다.


2013년 1월,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싸워온 10년 투쟁이 이제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수많은 전국의 비정규직들이 그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제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이 내린 "불법파견에 따른 정규직화" 확정판결을 최후 보루로, 지난 3개월간 철탑 고공농성으로 맞서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지난 수 년간 정규직 노조에 비해 사회적으로 외면받은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이제 우리 사회 최대 이슈로 부각됐다. 당시 정규직 노조가 궁지에 몰렸던 것처럼 비정규직들이 생사를 건 마지막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 살리는 데 앞장서야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3개월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1월 14일까지 농성을 해제하지 않으면 각각 매일 30만원씩 내야 한다는 울산지법 판결이 나왔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3개월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1월 14일까지 농성을 해제하지 않으면 각각 매일 30만원씩 내야 한다는 울산지법 판결이 나왔다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그동안 각종 사회 현안이나 노동문제에서 현대차 노조가 앞장선 것은 필연적이었다. 민주노총의 핵심인 금속노조 15만여 조합원 중 3분의 1인 4만5000여 조합원을 보유한 현대차노조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금속노조 내 쌍두마차는 현대자동차 노조와 현대중공업 노조였지만 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2004년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후 현대자동차 노조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제명은 오늘의 문제와 무관치 않다. 지난 2004년 2월 14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하청노동자도 사람이다. 노동법을 지켜라"고 절규하며 분신했지만 결국 현대중공업 노조는 하청노동자들을 외면했던 것.

그때처럼, 지금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절규하고 있다. 해고되고 구속되고 179억 원의 손배소를 당하고서도 "불법파견이며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판결한 대법 판결을 이행하라"고 외치며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조합원 4만5000명의 막강 현대차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를 살릴 수 있다. 지난 시절 수많은 비난과 왜곡에도 꿋꿋이 투쟁에 앞장서온 경험이 있다. 형 정규직 노조에게, 오랫동안 한 공장에서 왼쪽 바퀴와 오른쪽 바퀴를 나누어 달며 부대껴온 아우 비정규직들이 절실한 구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비록 최근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회사 측 신규채용안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도 있으나, 대다수 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 박진철 후생복지실장은 "대다수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제 거의 오십대로 들어서고 있어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며 "정규직 조합원 자녀들이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들이 하루빨리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노조 집행부가 망설이면 조합원들이 나서야 한다. 오랜 시간, 모두 외면하고 비난해도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현대차노조를 응원하고 지원했듯이, 이제 정규직 노조가 아우 비정규직들을 보살펴야 할 순간이 왔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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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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