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과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김종욱 YTN 노조위원장 등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해직언론인의 복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지난 5년간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며 온갖 핍박을 감내해온 해직언론인들의 복직이야말로 박 당선인의 국민 대통합 출발점이자 정권의 성패를 결정짓는 길이다"고 주장했다.
유성호
신태섭 교수. KBS 이사를 지내다가 이명박 정권 들어 KBS 이사직은 물론 교단에서도 쫓겨났다. 박래부 새언론포럼 회장. 언론재단 이사장을 지내다가 역시 이명박 정권 들어 10개월 만에 쫓겨났다. 이들에겐 해직이란 남의 일이 아니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다.
그런 점에서는 나도 마찬가지다. 1989년 12월 <경향신문>은 노동조합 1기 집행부 5명을, 임기가 끝난 지 1년이나 지난 뒤에 강제 해직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전날 오후 11시께 동료들에 의해, 말 그대로 '번쩍 들려' 나왔다. 당시 경향은 한화로의 인수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재벌이 신문사를 인수하는데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강경한 세력을 그대로 놔두면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우리를 몰아낸 것이다. 진눈깨비 쏟아지는 밤거리에서 철문을 굳게 닫은 회사를 향해 울부짖던 그때의 모습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해고를 단행한 장본인들이야 당시 경영진이었지만, 배후 조종자가 누구였는지는 구태여 묻지 않아도 자명했다. 재벌이 노조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이야 당연한 것. 하지만 우리의 해직은 <경향신문>이란 하나의 신문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노조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언론 민주화운동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무언가 경고음을 내야만 했다. 그 시범 사례로 선택된 것이 인수 합병을 앞둔 취약한 <경향신문>이었던 것이다.
쫓겨난 우리 해직 5인은 그 추운 겨울날 언론노조 시멘트 바닥에 침구를 깔고 자고 먹으며 100일 동안 매일 출근투쟁을 했다. 신문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다 보면 수염에 얼음꽃이 피곤 했다. 그런다고 경영진이 각성해서 해고 결정을 번복하리라고 믿었던 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쫓겨나가는 과정에서 눈을 질끈 감았던 동료들에게 '참언론'의 꿈을 잃지 말라고 촉구하면서 우리의 복귀 의지를 다지고 싶었을 뿐이다.
시범 사례로 쫓겨난 <경향신문> 노조 5인
그 뒤 우리는 해직문제를 법의 판단에 맡긴 채 나를 비롯한 3명은 평화방송으로, 박인규(현 <프레시안> 대표)는 기자협회 편집국장으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 갔다.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냈던 고 이성수만이 취업하지 않고 대의의 깃발을 계속 들고 법정 투쟁에 몰두하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경향신문사는 한화그룹에 인수됐고, 정권은 바뀌었다.
말이 정권교체지 실은 3당 야합으로 노태우 정권이 김영삼 정권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간절히 바랐던 우리는 절망했다. 1심에서 이겼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