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 집무실에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미 대표단를 접견하며 미소짓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박근혜 대선 후보자가 '당선인'이 된 지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흐른 지금, 벌써부터 박 당선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원칙·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자 시절 내걸었던 '기초노령연금 확대 지급, 4대 중증질환 진료비 국가 부담, 군복무 단축' 등의 공약을 뒤집으려는 흐름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개별 공약들의 수준이 서로 다른지, 중복되지 않는지, 지나치게 포괄적이지 않은지에 대해 분석·진단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공약 수정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친 것이다. 그동안 인수위는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재원 대책에 대해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으나 여기서 한 발 물러난 것이다.
여기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나오는 "공약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문도 한몫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선거 때 내놓은 공약을 한꺼번에 지키려면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국민에게 약속한 방향으로 어떻게 나라를 이끌 것인가 하는 큰 방향에서 봤으면 한다,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새누리당은 대선 기간 약속했던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역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1월 임시국회 세부 일정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큰 방향'을 앞세우며 공약(公約)이 빌 공의 공약(空約)화 되는 걸 당연시 하는 흐름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기초노령연금 확대 지급... 한 달 만에 입장 선회?박 당선인의 공약 중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65살 이상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항목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10일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확대해 65살 (이상) 모든 어르신한테 내년부터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드리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으로부터 '당장 올해'부터 '65세 이상 노인 전부'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장 '말 바꾸기'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에 휩싸이자 16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자처한 나 부의장은 "비판의 핵심은 당장 올해부터 65세 이상 노인 전부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한다고 해놓고 말을 바꾸냐는 건데, 우리 당의 공약은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에 편입해 기초연금화 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에 편입하려면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2013년부터 추진한다는 의미지, 당장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을 지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나 부의장은 "제도가 완비되고 재원이 마련되면 내년부터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 항목에 대해서도 그는 "부동산도 있고 재산도 있는 분들에까지 국민연금에 편입시킬까는 앞으로 고민해야 하고, 직업 연금을 받는 4.3%도 (국민연금 편입에) 포함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여지를 남겼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 역시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기초노령연금을 모든 사람한테 지원한다는 건 이건희 회장에게도 매달 노령연금을 준다는 것"이라며 "여야 모두 표를 얻기 위해 이거 저거 다 해준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초노령연금 실현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표 먹고 튀기'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역대 정부가 공약을 다 지키고 퇴임한 정부는 단 하나도 없다"며 "국민에게 공약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모른척 하고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어물쩍 넘어가는 것보다 훨씬 정직한 태도"라고 강변했다.
4대 중증질환치료비 전액 국가 부담과 사병 군복무 단축에 대해서도 이견이 제기되긴 마찬가지다.
심 최고위원은 4대 중증질환치료비에 대해서 "조 단위 돈이 들어 갈 수밖에 없다"며 "이게 완전히 공짜가 되면 환자들이 더 많이 치료하고 더 많이 검사해달라고 요청해 돈이 훨씬 많이들 것이다, 결국 돈 때문에 허덕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병 군복무 단축에 대해서도 "공약 이행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형 예산은 출구 전략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방부 역시 군 복무기간을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는 공약에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입장 선회에 대해 우원식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6일 오전 원내현안대책회의 "기초노령 연금 확대 공약은 사실상 폐기 일보 직전이고 4대 중증 의료비 공약 등 대표적인 복지 공약이 맥없이 흔들리고 있다"며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말하면 되나, 복지투자를 소모성 지출로 몰아붙이는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려는 것이냐"고 힐난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박근혜 당선인은 스스로 신뢰와 원칙을 강조했고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국민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왔다, 관료들의 재정타령보다 중요한 것은 당선인의 정책의지와 국민과의 약속실천의지"라며 "대통령으로 취임도 하기 전에 한 달 전 국민과의 약속을 수위 조절이라는 이름으로 용도폐기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쌍용차 국조, 여야 이견으로 1월 임시국회 합의 난항쌍용자동차 국정조사도 '말 바꾸기'의 대표적 예로 떠오르고 있다. 대선 전, 새누리당 역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모두 나서 국조 수용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후,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쌍용차 무급휴직자가 복직되는 등 상황이 변했다는 것이 이유다.
쌍용차 국조 실시 여부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여야는 1월 임시국회 일정 합의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지금은 (무급휴직자) 455명을 복직시켰고 (사측에서) 재투자도 하겠다고 하니 상황이 달라졌다"며 "(쌍용차 국조는) 선거 때 한 얘기"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대선 이후 실효성 있는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건 새누리당 차원의 약속으로 지금 달라진 건 없다"고 밝혔으나, 이 원내대변인은 "당에서 특별한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이 대변인은 '쌍용자동차는 23명이 자살하고 고공농성하는 분들의 문제'라는 지적에 "현재 30여 명이 문제가 되는데, 이게 개인 회사에 대해 국조를 시작하면 모든 회사를 국회에서 다 해결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발끈한 우 원내수석부대표는 16일 "쌍용차 국정조사는 새누리당 대표, 선대위 총괄본부장, 환노위 간사까지 요청한 사항인데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쌍용차 국조 실시에 대해) 협상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며 "이한구 대표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제 2의 명박산성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불통"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야당과 협조하지 않고 서민들의 요구를 손톱만큼도 수용할 의사가 없는 새누리당을 확인했다, 절망이다"라며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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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한 달 만에 흔들린 박근혜의 '원칙·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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