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9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고소 기자회견. 삼성일반노조는 서울중앙지검에 이건희 회장 등 9명을 고발했다.
삼성일반노조
삼성SDI 노동자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노조설립 시도했지만...
군부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전두환이 1987년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 후 노태우는 잠실체육관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1987년 6월 10일이다. 하지만 이날 참다못한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왔다. 6.10 민주항쟁이다.
6.10 민주항쟁은 급기야 노태우의 6.29선언이라는 항복을 받아냈고, 이후 억눌렸던 국민들의 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분출은 그동안 업종에 관계없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전국의 노동자들이었다. 1987년 8월부터 3년간 지속된 노동자 대투쟁의 시발점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진원지는 울산이었다. 수만 명의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대투쟁의 선두에 섰다. 그들은 차량을 앞세워 시가지를 행진하고 꽹과리를 치며 노동의 자유를 외쳤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같은 시간,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라는 거대 사업장 뿐 아니라 울산에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 내에서도 민주노조설립을 외친 노동자들이 있었다. 사세가 급속히 확장되던 삼성전관 양산공장(현 삼성SDI 부산공장, 이하 삼성SDI)노동자들이다. 당시 수백 명의 삼성 노동자들이 공장내에서 회사측과 대치하며 노조설립을 요구했던 것.
당시 삼성SDI는 전 세계적인 컬러TV시장 호황에 힘입어 브라운관 생산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었다. 회사는 저임금을 발판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직원을 대거 채용하면서 한때 삼성전관 양산공장에서만 직원이 9000여 명에 달했다. 전국 각지에서 고졸 생산직이 우후죽순 모여들던 때였다. 이들이 노조설립 자유를 외쳤던 것,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어느 사업장이든 회사측의 노조설립 방해가 극심했다. 어용노조를 앞세워 노조설립 신고를 선점하는가 하면 노조설립에 앞장섰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구속되고 폭행당했다.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지금, 결론적으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는 수만 명의 노조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노조가 되어 우리나라 노동계의 흐름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SDI는 여전히 노조가 없다. 여기다 더해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보다 노동자의 수가 5분의 1로 줄었다. 하지만 이에 저항하는 파업은 물론 세상의 주목을 끄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삼성SDI의 노무관리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삼성SDI는 어떻게 노무관리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