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철탑농성자 천의봉천의봉은 2004년 11월에 입사해서 2011년 2월에 해고되었다. 그의 손을 보자. 전문 시위꾼의 손이 아니라 노동자의 손이다.
천의봉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미용의 목적이라기 보단 실용성을 위한 것이었다는 대답. 이렇게 되면 그의 패션에 대한 지금까지의 평가가 겸연쩍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천의봉씨가 옷차림에 있어 멋보단 실용성을 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은 높이 50미터, 154KV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 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기가 얼어 비닐 천막 안에 서리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비닐 천막이 흔들려 춤을 춘다는 그곳. 그곳에서 천의봉씨는 최병승씨와 함께 100여 일 째 살고 있다. 천의봉씨가 철탑 위에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지난 10년에 걸친 현대차 사측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싸움을 매듭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해서 여기를 택하게 됐죠."
2004년 노동부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127개 업체 9234개 공정이 불법 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불법 파견이란 파견직을 사용해선 안 되는 직무에 파견근로자를 고용하거나 사실상 근로자를 직접 채용하였으나 마치 타 회사의 파견 직원인 것처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2005년 검찰이 '현대차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을 내려 노동부의 결정을 파기했으나 그 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안기호와 최병승이 현대차에 대해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과 2012년 '최병승씨의 고용이 불법파견에 해당하여 현대차가 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두 번에 걸친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그리고 지난 1월 9일 현대차에서 최병승씨에게 정규직으로 출근하라는 인사 명령을 내렸다. 최병승씨는 정규직을 원했고 정규직이 되었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지킨 셈이고 잘 된 일 아닌가?
"그 소송이 처음에 지방 노동 위원회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89명으로 출발해서 대법까지 가는 길에 예산 문제도 있었고, 그렇게 해서 두 명만 대표 소송을 한 겁니다. 안기호 씨는 2년 미만 근무자였기 때문에 대법 판결을 못 받은 거구요, 최병승씨는 정규직으로 고용을 하라는 판결을 받은 거지요. 그러니까 대법은 컨베이어 직접 생산공정 근무에는 도급(하청)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불법 파견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거지, 최병승씨 개인에 대한 판결이 아니었던 거죠."최병승씨는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현대차에 의해 불법 파견 근로를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소송에 임한 것이라는 설명. 그렇다면 최병승씨와 같은 근로 조건에서 일하고 있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병승씨 한 사람만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사측의 대응에 분노하였던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면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측의 다른 대응은 없었을까?
현대차 사측은 지난해 12월 27일, 사내 하청 노동자를 6743명으로 보고 그 중 3500명을 2016년까지 신규 채용하겠다는 잠정 합의안을 내놓으려 하였으나 이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조는 대법원 판결에 해당하는 생산하도급 노동자를 해고자 포함 8500명으로 보고 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천의봉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법적으로 2년이 경과한 후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달라는 거예요. 사측이 말하는 신규채용은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 학력이나 나이, 건강 같은 걸 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가겠다는 거고요." 신규채용을 한다는 것은 사측이 그간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천의봉씨는 말했다. 또 신규채용을 하면 그간 오랫동안 불법파견 근무를 했음에도 학력이나 나이 등의 조건으로 걸러져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며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사람들의 고용 역시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비정규직 노조에서 사측의 신규채용안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차 사측에서도 8500명의 비정규직을 일시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이에 대해 천의봉씨는 간단하고 확고하게 대답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고요, 그간 사측이 불법파견 고용을 통해 노동자를 착취하며 얻어왔던 부당한 이익을 돌려받겠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 자체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를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요구만 많은 귀족노조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병승씨는 현대차 비정규직이 7~8년 근속 근무하면 평균 3400에서 3500만 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타 직종 노동자에 비해 부족한 연봉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문제는 고용의 안정성에 있다고 했다.
"한 차종이 나오고 3년에서 4년 정도 되면 모델이 바뀌어요. 모델이 바뀌면 새로 모듈협상을 하는데요, 그때 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소리 소문 없이 잘려나가는 노동자들이요, 그거는 뭐 숫자도 다 파악이 안 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된 후 다른 일을 찾지 않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해 보았다. 어째서 남들 하는 것처럼 장사를 하거나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최병승씨는 장사를 하려해도 밑천이 있어야 할 수 있는데 비정규직은 언제 해고될지 몰라 안정적으로 돈을 모으기 쉽지 않다고 했다. 또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한 조합원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번 해고되면 현대차는 물론 외부 부속 업체 어디에도 취직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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