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혹이 생겼어요"

[잊을 수 없는 수술이야기] 이비인후과 앞 지날 때마다 움찔

등록 2013.02.04 10:53수정 2013.02.0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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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먼지가 많이 나는 곳에서 일하세요?"
"아뇨."
"집안에 먼지가 많이 나세요?"
"아이들이 많으니까. 먼지가 많이 날 수밖에 없어요."
"코 안에 혹이 생겼어요."
"네 혹이 생겨요?"
"걱정은 하지 마세요. 종양은 아니에요."


오뉴월 감기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난 2011년 6월 콧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훌쩍훌쩍'거렸고, 설교 시간에도 훌쩍거림은 계속되었습니다. 한여름인데도 흐르는 콧물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코안을 살핀 의사가 한 말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종양은 아니라고 했지만 혹이 생겼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파 병원에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사람 심리입니다. 개도 걸리지 않는 오뉴월 감기에 자존심이 상했는데 혹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담대함'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종양이 아니더라도 혹이잖아요.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오늘 수술을 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수술을 한다고요?"
"네. 수술이라고 해도 큰 수술이 아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간단하다고 했지만 수술기구가 코 안으로 들어갈 때 금속재질의 차가움은 두려움을 자극했습니다. 더구나 마취도 하지 않았습니다. '슥슥'하는 순간 몸은 움찔하면서 통증은 온몸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것 보이시죠."
"무엇인데요?"

"먼저가 쌓여 굳어진 거예요."
"먼지가 쌓여 이렇게 굳어질 수 있나요."
"오랫동안 조금씩 조금씩 쌓인 거예요."


의사는 끊임없이 먼지가 쌓여 굳은 살점을 떼어냈습니다. 20분 동안 수술기구는 운동장 마냥 코 안을 휘집고 다녔습니다. 뇌는 이미 통증을 포기한 듯했습니다. '슥슥' 소리만 들릴 뿐, 감각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코에는 피가 주루룩 흘러내렸고, 거즈가 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쉬었다 할게요."
"아직 멀었나요."

"생각보다 심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두었어요."


옆자리에 앉았는데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릴적 싸움하다가 코피나면 무조건 졌습니다. 저는 코피를 잘 흘리지 않았는데 그만 먼지때문에 코피가 터져도 너무 많이 터져버렸습니다. 조금 지나자 코는 얼얼해졌습니다. 이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작하죠. 덩어리가 자꾸만 나오네요."
"이제 코 안에 감각도 없어요."
"비염도 먼지 때문이에요. 생각보다 더 굳었고, 더 안쪽까지 혹이 있어요.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의사는 쉽게 말했지만 먼지 덩어리는 끝이 없었습니다. 붉게 물든 살점을 보니 또 다시 통증이 온몸을 휘감아 돌았습니다. 40분 정도 지나자 의사도 지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 끝을 보겠다는 마음인지 또 다시 코 안을 휘집고 다녔습니다. 괜히 병원에서 와서 이 고생한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옛날에 친구가 축농증 수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데 그래도 그 때는 마취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취도 하지 않고, 가위로 코 안에를 휘집고, 먼지 덩어리를 떼어냈습니다.

"다 끝났어요. 보이시죠. 굳어진 먼저 덩어리가 이렇게 많아요."
"....."
"먼저 덩어리가 이렇게 많으니 비염이 발병하고,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사는 거예요."
"재발할 수 있나요?"
"또 먼지가 많은 곳에 일하면 생길 수 있어요."
"코 안이 얼얼해요."
"조금 시원하죠?"
"힘들었지만 시원해요. 코가 뻥 뚫린 기분이에요."

먼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서서히 굳어져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 코 안이 자기 방인양 자리잡고 앉아 오뉴월 감기를 선물했습니다. 이후 감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비인후과를 지날 때마다 그때 그 통증이 몸을 휘감아 돕니다. 먼지 무시하면 큰코 다칩니다.
덧붙이는 글 '잊을 수 없는 수술이야기' 응모 기사입니다.
#나의수술이야기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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