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깎으시던 어머니의 한마디 "다긴나?"

사과 껍질 하나에도 담아내는 배려의 정신

등록 2013.02.04 15:52수정 2013.02.04 15:5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 사과를 깍으시다가 내게 물으셨다.
어머니사과를 깍으시다가 내게 물으셨다. 전희식

이른 아침이었다. 사과를 깍으시던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다긴나?"

다긴나? 무슨 말일까. 잠시 기다렸다. 내 마음귀가 열리자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아뇨. 닭 없어요. 왜요?"
"닥 있으믄 두껍끼 깎고 엄쓰믄 얄께 깎을락꼬 카지."
(닭 있으면 두껍게 깎고 없으면 얇게 깎으려고 그러지)

아흔 둘. 노망들었다고 손가락질 받는 치매 할머니의 말일 수 있을까?

나도 그러지 못하는데. 사과 벗겨진 껍질은 누굴 줘야 할지 생각도 없이 깎는데. 두껍게 깎을 때 얇게 깎을 때를 가리지 않는데. 먹기 바빠서 허둥지둥 입에 넣는데. 사과 껍질 하나도 어머니는 '그냥'일 수가 없구나.


오늘 하루 눈을 뜨면서 했던 내 생각 하나 누구에게 가 닿을지. 오늘 내가 할 말 한마디가 누구 가슴에 안길지. 새삼 숙연하다.

혼자서 되뇌인다. "다긴나?"라고.


어머니 얇게 사과를 깍으신다
어머니얇게 사과를 깍으신다전희식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과 #치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4. 4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5. 5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