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으로 허황된 상상하기

협동조합 절대 어렵지 않아요~

등록 2013.02.09 11:18수정 2013.02.09 11:18
0
원고료로 응원
협동조합이 붐입니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협동조합 설립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계약이 종료돼 실직한 청소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공기관과 계약하기도 했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모여서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고, 처우 개선을 고민하던 대리운전 기사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만 전국적으로 150건 정도의 설립신고가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협동조합은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적 대안으로 각광받으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설립.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상상해보자구요.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략 500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그 500세대가 한 집 당 100만 원이라는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5억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아파트 내 주민공동시설에 치과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쓸 만한 주민 공동시설이 없다면 아파트 근처에 저렴한 상가 하나 임대할 수도 있고요. 어쨌든 대략 2억 정도면 치과가 완성되겠지요.

치과의사는 페이닥터로 채용하면 됩니다.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주민들의 치아 건강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요. 이 치과는 100만 원을 출자한 당신에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이윤만 남깁니다. 특히 임플란트 같은 고가의 치료도 신뢰할 수 있는 가격에 이용할 수 있죠. 당신은 바가지 쓸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주치의나 마찬가지인 의사 눈치도 볼 필요 없습니다. 수익이 발생하면 일정액 배당을 받을 수도 있어요. 어떠세요? 출자금 100만 원, 금세 보상받을 수 있겠죠.

아, 아직 3억이 남았군요. 자 이번에는 공동육아 시설을 한 번 만들어 볼까요? 당신은 사설 어린이집을 그다지 신뢰하지 못 합니다. 또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육아가 마음은 편한데 가끔씩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만으로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또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사회활동이나 자기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옆집 아주머니는 생활형편 때문에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다니고 있습니다. 가끔씩 직장일로 늦을 때 시간 돌보미 아주머니에게 맡기는데 비용이 제법 비싸고 그 마저도 연결이 안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당신에게 간혹 전화를 하곤 합니다. 딱한 사정을 잘 아는지라 싫은 소리 않고 봐주긴 하지만 솔직히 좀 불편한 맘은 숨길 수 없겠죠.

아마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대다수 젊은 세대가 이런 상황 아닐까요? 육아 때문에 가사 일만 전담하고 있지만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가벼운 일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어린이집으로 학원으로 아이를 돌리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늘 아이 걱정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거나.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 놓았던 3억 중 화끈하게 2억 정도 쓰죠. 영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육아시설을 만드는 겁니다.


전문적인 선생님은 엄마들의 꼼꼼한 면접을 통해 채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며 그곳에서 보조교사로 일을 할 수도 있지요. 물론 시간은 최대한 자유롭게 교대로 하면 되고요. 교육과정이나 육아방식은 당연히 엄마들의 충분한 논의 끝에 결정됩니다. 적어도 아이들 교육환경에 대한 불안감은 많이 줄어들겠죠.

아, 공동육아 시설에 들어가는 음식도 직접 제공해 주면 되겠네요. 아파트에 음식 솜씨 좋은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잖아요. 한 5천 만 원 정도만 투자하면 자그마한 친환경 식당 하나 만들 수 있겠네요. 아이들 급식 뿐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식당 영업 외에도 식재료들을 이용해 반찬을 만들어 팔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맞벌이 하는 분들이 제법 있어서 많이들 이용할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니 믿을 수 있고, 게다가 시장 보다 저렴하니까요.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돈으로는 아파트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아파트 택배사를 하나 차려 드릴까요? 이건 돈이 거의 들지 않으니 또 다른 다양한 곳에 아이디어를 내봐도 되겠네요. 상자 텃밭 농장, 공동 부업 작업장 등등 맨날 모이면 하는 얘기 있잖아요. "우리 아파트에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다"했던 거요.

협동조합 교육자료 중 일부 기획재정부에서 지난해 12월 전국적으로 진행한 협동조합 설립 교육에서 사용된 교육자료 중 일부
협동조합 교육자료 중 일부기획재정부에서 지난해 12월 전국적으로 진행한 협동조합 설립 교육에서 사용된 교육자료 중 일부기획재정부

너무 허황된 이야기 같으신가요? 네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이미 이런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 지고 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외국사례는 무수히 많고요, 우리나라의 경우도 서울의 성미산 마을이나 원주같은 도시에 비슷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어려운 고비도 많았겠지요.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협동조합 정신입니다.

협동조합 정신이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호부조의 정신이죠. 다시 말해서 행동의 동기가 '나만을 위한' 이기심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이타심에서 출발한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런 마음들만 모이면 위의 이야기들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들이지요.

협동조합기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주요 골자는 5명 이상 모이면 누구나 쉽게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상당히 까다로웠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아주 쉬워졌습니다. 아파트 500세대가 모두 마음을 합치지 않아도 됩니다. 당장 필요한 다섯 명 만 의기투합해도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또 이런 작은 협동조합들이 모여서 협동조합 간에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기본법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협동조합의 시대가 열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주로 기존 회사가 운영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전환하는 경우와 자본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난립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좋은 협동조합'과 '나쁜 협동조합' 옥석은 가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조합원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나쁜 협동조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정부 지원이나 받겠다고(물론 직접적으로 지원되는 것도 아니지만) 시작하는 협동조합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듭니다. 비록 조합원의 이익을 목적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익은 주식회사의 이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협동조합은 한 사람이 큰돈을 벌거나 이익을 독점하기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기본법에 민주적인 운영이나 배당제한, 이익적립 등이 다 강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합원의 이익이라는 건 결국 물질적인 것이기 보다는 정신적인 것이 더 크다고 보는 게 온당합니다. 또 한편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개개인의 다양한 생활문제, 경제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는 곧 사회문제의 해결이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최근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바로 이런 의미 아닐까요.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기본법 시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 후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되었지요. 물론 이런 흐름에 대한 일부 비판은 충분히 수렴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상상이 이타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협동조합은 최근 불쑥 나온 것이 아닙니다. 길게는 서양 중세시대의 길드나 우리나라의 두레나 계처럼 오래된 상호부조 풍습에 따른 것이고, 짧게는 근대최초의 협동조합인 1800년대 영국의 로치데일처럼 숱한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협동조합의 7대원칙입니다. 자주적이고 개방적인 그리고 민주적인 조합운영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까지. 협동조합 정신은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당신의 상상이, 아니 우리의 허황된 상상이 협동조합 정신 안에서 멋지게 실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허황된 상상처럼 생각했던 일도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지금, 시작하세요.
#협동조합 #허황된 상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