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은 겸재의 '인왕제색도', 살아있네

[겨울여행]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인왕산

등록 2013.02.26 13:24수정 2013.02.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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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 정선이 살던 동네 뒷산을 그린 <인왕제색도>, 국보이기도 하다.
겸재 정선이 살던 동네 뒷산을 그린 <인왕제색도>, 국보이기도 하다. 겸재 정선

당신에게 가장 좋았던 혹은 좋은 산은 어느 산이냐고 묻는 질문에 소설가 김훈은 '집에서 가까운 산인 정발산'이라고 한 내용을 그의 수필집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거추장스러운 등산장비들을 갖추고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겨울 산과 달리 사시사철 부담없이 오를 수 있는 동네 뒷산은 요즘 같은 날씨엔 정말 제격이다 싶다. 

서울에 있는 해발 338.2m의 나즈막한 산 인왕산은 내가 사는 집에서 가까운 대표적인 동네 뒷산이다. 얼마 전 어느 미술관에 들렀다가 옛 선조의 그림으로 이 산을 마주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 (仁旺霽色圖)>가 그것. 인왕산 자락의 종로구 수성동 계곡 부근에 살았다는 그 또한 인왕산이 동네 뒷산이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림이 무척 새롭게 보였다.


지난 주말 (23일) 눈 내린 인왕산길을 무심히 오르다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떠올랐고 문득 정선의 마음으로 그의 그림을 떠올리며 인왕산을 사진에 오롯이 담아 보고 싶어졌다.

겸재 정선이 살았던 정다운 수성동 계곡

 동네 주민들이 노닐고 산책하는 인왕산 기슭의 정다운 계곡, 수성동 계곡
동네 주민들이 노닐고 산책하는 인왕산 기슭의 정다운 계곡, 수성동 계곡 김종성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나와있는 수성동 계곡, 하단의 작은 다리가 현재도 남아있는 '기린교'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나와있는 수성동 계곡, 하단의 작은 다리가 현재도 남아있는 '기린교'다.겸재 정선

인왕산도 다른 산들처럼 오르는 들머리가 여러 길이 있는데 이 날 산행은 종로구 옥인동 혹은 수성동에 있는 수성동 계곡을 들머리로 삼았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나와 있는 이 계곡은 박정희 정권 때 지은 옥인 아파트로 인해 오랜시간 파묻혀 지내다가 지난해에 비로소 복원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곳이다.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09번 마을버스를 타면 수성동 계곡 바로 앞이 종점이다. 필자는 애마 자전거를 타고 곧바로 수성동 계곡까지 찾아갔다. 인왕산 기슭의 계곡이라고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파트가 있었던 곳이라 험한 산길도 없고 찾아가기 쉬웠다. 인왕산 기슭에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는 동네에 도착하니 계곡 바로 앞에 낡고 오래된 단층주택, 연립, 빌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보기드문 풍경이 여행자를 반긴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 아래 첫 계곡으로, 조선시대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 이라 하여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으며, 수성동의 '동(洞)'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골짜기 또는 계곡'이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수성동은 겸재 작품뿐 아니라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 등 많은 문헌에 명승지로 소개돼 있다.


 수성동 계곡 뒤로 인왕산이 아름다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수성동 계곡 뒤로 인왕산이 아름다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김종성

오랜시간 막혀있었던 숨통을 터트리기라도 하듯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참 맑고 청아하다. 그 속에서 더불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같은 소리는 바로 아이들의 웃음소리. 계곡 앞에 있는 어린이 집에서 나온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며 얼어붙은 경사진 계곡에서 지칠 줄 모르고 미끄럼타기 놀이를 하고 있다. 더 위쪽 계곡에서는 얼음 위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이 보인다. 얼어붙은 한겨울 계곡이지만 포근하고 정다운 기분이 드는 계곡이다.      

특히 지난해에 이곳에 위치했던 아파트가 철거되고 이 지역을 원형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정선의 그림에 그려진 수성동의 계곡과 다리 '기린교'의 모습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곳이기도 하다. 그림 속의 기린교 인근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세조의 반정으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안평대군(1418~1453)의 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종로구청에서는 이 부근을 세종마을로 이름 짓기도 했다.


그 옛날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玉流洞)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물줄기가 기린교에서 합수되어 청계천으로 흘렀다. 뒤로는 눈이 소복히 쌓인 인왕산이 아름다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계곡에서 쉬이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수성동 계곡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 인왕산길이 이어진다.

겨울에도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산

 바윗돌속에 자리한 작은 암자 석굴암을 향해 조금만 오르면 도시 서울이 발밑에 펼쳐진다.
바윗돌속에 자리한 작은 암자 석굴암을 향해 조금만 오르면 도시 서울이 발밑에 펼쳐진다.김종성

인왕산도 수성동 계곡처럼 한동안 긴 잠을 자야 했다. 1968년 발생한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출입이 전면 통제된 것. 간첩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25년 동안 평온한 잠을 잔 인왕산은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3년 3월 25일 다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수성동 계곡에서 오르는 코스의 산행은 인왕산을 두 번 오르게 한다. 산의 초입에 있는 안내 팻말에 정상으로 가는 산길과 산속에 있다는 석굴암으로 가는 산행길이 나뉘어져 있다. 덕분에 인왕산을 두 번 오르게 되었는데 이것도 산의 높이가 낮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눈이 쌓여 있지만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르다보면 바위와 소나무들 사이로 어느 새 도시 서울의 전경이 발밑에 펼쳐진다.

풍수적으로 한양의 우백호라고 여겨졌다는 산이라고 하더니 낮은 산임에도 전망은 으뜸으로 쳐줄 만하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답게 암자도 커다란 바위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시피 들어서 있다. '석굴암'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돌과 바위가 유난히 많은 지역이다보니 이웃의 백악산(현재의 북악산), 무악산(현재의 무악재)은 험한 산이라는 뜻의 악(岳)자가 붙었는데 유독 인왕산은 어질 인(仁)자가 붙었다. 왜일까? 인왕산을 몇 번 걸어 올라가보면 자연스레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예전에 산악인들이 등반 훈련을 했다는 기차바위, 뒤로 북한산이 펼쳐져 있다.
예전에 산악인들이 등반 훈련을 했다는 기차바위, 뒤로 북한산이 펼쳐져 있다.김종성

 커다란 돌과 바위들이 많아 늠름한 인상을 주는 산이기도 하다.
커다란 돌과 바위들이 많아 늠름한 인상을 주는 산이기도 하다.김종성

석굴암까지 오르느라 흘린 땀만큼 약수물을 실컷 마시고 산의 초입길로 내려와 다시 인왕산 정상을 향해 올랐다. 석굴암으로 오를 때와는 또 다른 길과 풍경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앳된 얼굴의 군인이 인사를 하기도 하고 복원된 서울 성곽을 마주치기도 해 산행길이 다채롭다. 쌓인 눈이 하얀 생크림을 올려 놓은 것 같은 성곽의 벽 너머로 보이는 장대한 겨울 북한산 풍경이 비현실적이고 그림같아 내내 시선을 머물게 한다.  

삶의 반세기를 인왕산 자락에서 살며 인왕산 곳곳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던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 <인왕제색도>는 그가 남긴 400여 점의 그림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국보(제 216호)로도 지정되었다. 그의 나이 76세 때 비 온 뒤의 인왕산 경치를 지금의 효자동 방면에서 보고 그린 것이라고 한다. 겸재 정선은 중국풍 일색의 풍경화에서 벗어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우리 고유의 화풍(畵風)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역시 예술이란 독창성에 더불어 정체성을 지녀야 하나보다.    

 인왕산에서는 복원한 서울 성곽길을 만나기도 한다.
인왕산에서는 복원한 서울 성곽길을 만나기도 한다.김종성

 조선초 정도전의 주장대로 경복궁이 들어선 북악산 자락이 인왕산 정상에서 훤히 보인다.
조선초 정도전의 주장대로 경복궁이 들어선 북악산 자락이 인왕산 정상에서 훤히 보인다.김종성

돌계단과 성곽길을 번갈아가며 오르다보면 남산 위 남산타워와 북악산이 손 앞에 잡힐 듯 나타난다. 정상에 서니 인근의 서대문은 물론 멀리 일산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대통령이 사는 집 청와대는 마당이 보일 정도.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이 산자락에 도성과 궁궐을 짓자고 한 이유가 실감나는 산이다. 결국 정도전에 밀려 경복궁은 이웃 백악산(현재의 북악산)에 짓게 되었지만.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主山)으로 궁궐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도전은 백악산 이 좋다며 반대했다. 그는 무학대사가 추천한 위치는 동쪽이고 터가 너무 좁아 경복궁 위치로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200년 후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저주 같은 예언으로 정도전을 압박했지만 결국 경복궁은 정도전의 고집대로 백악산을 등진 현재의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무학대사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인지 딱 200년 뒤에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일어났다.

동네 뒷산답게 한달음에 오르기에는 약간 벅차고, 등산복 제대로 갖춰 입고 오르기에는 낯간지러운 애매한 높이의 산이지만, 소나무와 화강암 바위들의 조화로 이뤄진 늠름한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다. 인왕산은 사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특히 눈 내리는 겨울에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국보 <인왕제색도>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었다. 평소 디카에 왜 아직도 흑백사진기능이 있나 의아해 했는데 아마 이런 멋진 겨울산을 담으라고 그런 기능을 남겨둔 것이 아닌가 싶다.
#인왕산 #인왕제색도 #수성동 계곡 #겸재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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