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캐기김정리(72세) 할머니가 집앞 갯가에서 반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조개를 캐고 있다.
정도길
- 방에 들어오니 공기도 차고 방도 차갑습니다. 다른 어머니처럼, 아마도 돈 아낀다고 보일러도 꺼 놓은 거 같은데, 적지 않은 돈을 복지재단에 기부하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돈이 없어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티브이에 나오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많이 아팠죠. 그래서 집 전화로 번호를 눌리면 돈이 빠져 나간다고 해서(<사랑의 리퀘스트>), 평소에도 1000원이고 2000원이고 보태고 했죠. 그러다가 자식들과 의논 끝에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 평생을 모아도 이런 큰돈을 만지기가 힘든데, 어떻게 기부를 하게 됐는지요?"아들의 교통사고 사망보험금을 타게 되었죠. 그런데 보험금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직장 다닐 때, 넣어 둔 다른 보험금 모두를 보태서 기부를 한 것입니다."
- 아들이 죽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죽은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나죠. 그런데 그 돈을 어떻게 먹고, 쓰는데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자식들도 그 돈을 생활비나 이런데 쓰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러다가 불우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 같은 것을 만들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재단 같은 것을 만들려면, 3억 원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몇 년간 그런 고민을 하게 됐고,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 기부한 총 액수가 얼마이며, 어디에 기부를 하게 됐죠?"총 금액은 2억5500만 원인데, 제가 살고 있는 이 섬에 있는 창호초등학교에 500만 원, 바로 인근에 있는 성포중학교에 1500만 원, 적십자사 사랑의 열매에 1억 원, KBS복지재단에 1억35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학교·복지재단에 2억5500만 원 기부... 자식들도 반대 안해- 아들은 어떻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는지, 그 당시의 상황을 좀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그러니까 2001년 1월 어느 날(13일)이네요. 오전 2시 경 사고가 났다고 했어요. 전화연락을 받은 것은 오전 6시께였어요.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려 일하러 가지 않고 집에 있는데, 뭐, 다쳤다는 것도 아니고, 바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참으로 하늘이 내려앉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죠."
-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네요. 자식을 생각할 때면 마음이 많이 아프겠습니다. 먼저 떠난 아들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이 있다면?"죽고 나서 화장을 하고 어느 절에 안치를 했죠. 그리고 살았을 때 해 주지 못한 자식의 결혼식이라도 해주고 싶어, 영혼결혼식도 시켰지요. 그리고 4년이 지난 뒤, 지금은 이쪽으로 데리고 와서 제사를 지내 주고 있어요."
- 어릴 적, 아들의 모습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참 착했죠. 말썽 한번 부리지도 않았고요. 형이 해야 할 일도 자기가 챙겨서 하곤 했습니다. 집에서 특별히 공부도 안했는데 좋은 점수를 받았고, 활기찬 아이로 자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기억을 더듬는 할머니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 남편이 돌아가시고 바로 얼마 뒤, 아들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내 나이 59살 때,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뒤 2년이 채 안 돼서, 아들을 잃게 됐어요. 이런 게 모두 세상사는 일 아니겠어요."
- 건강은 어떠세요. 그리고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해서 지내고 있으며, 정부에서 연금 같은 것은 나오는지?"평소 유자차를 자주 마시는데 어느 날 턱 밑이 많이 떨려 병원에 갔는데, 부산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하더군요. 풍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동안 네 번이나 갔고, 내일도 병원에서 오라 해서 가려고요. 뭐, 사는 게 별겁니까. 밭에 심은 작물과 조개 같은 거 캐서 반찬하고, 남편 살았을 때 넣은 국민연금(18만 원 정도)으로 살고 있죠. 국민연금 외에 받는 것은 없습니다."
밭떼기에서 키운 채소와 조개잡이로 반찬거리... 국민연금으로 살아- 남은 자식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돈으로 자식들 사는데 보태줬으면..."딸 셋, 큰 아들 모두 결혼해서 그리 넉넉하지 못하게, 모두 어렵게 살고 있어요.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죽은 아들 보험금으로 어떻게 다른 자식들 나눠주고 그럽니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식들이 돈 욕심 내지 않고 어려운 결정을 해 준 게 무엇보다 감사하죠."
- 기부한 돈으로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과 이 사회에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이 훌륭하게 커서, 이 사회에 든든한 기둥이 됐으면 좋겠어요.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고통을 안다고 하잖아요. 내 것을 조금 양보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