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없는 방>표지
보리
삼성이 보인 이 졸렬한 태도를 우리는 익히 듣고 보아서 잘 알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거짓말로 둘러대고, 그것이 탄로 나면 광고로 위협해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그래도 안 풀리면 막대한 돈을 들여 송사를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를. 이래 가지고서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지 못한다. 아니 평소엔 잘 해주다가 수가 틀리면 가정폭력범으로 변하는 무서운 가족이 되는 것이다.
김성희의 <먼지 없는 방>은 '클린 룸'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생산공장의 내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반도체 생산과정에 대한 교과서로 쓰여도 무방할 정도의 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반도체 생산과정은 너무 복잡하고, 단계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클린 룸'은 사람에게 깨끗한 방이 아니라 반도체와 그것을 만드는 기계에게 깨끗한 방이다. 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는 방독면을 써야 마땅한데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만약 알게 된다 해도 방독면을 쓰고 일하면 작업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왕따'가 됐어야 한다. 제대로 된 보호장비는 바이어나 VIP만 썼다고 하니, 도대체 노동자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는 것 아닌가.
<먼지 없는 방>의 주인공 정애정 씨 역시 1995년 고3 때 직업훈련생으로 삼성에 입사해서 청춘을 보내고 같은 공장에 근무하던 황민웅 씨를 만나 2001년에 결혼한다. 2003년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행복하던 이 가족에 청천벽력이 떨어진다. 황민웅씨가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정애정씨는 남편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 이미 뱃속에 아이가 또 있었다. 정애정씨는 남편이 고통스럽게 투병하는 와중에 딸을 출산한다. 이식할 골수가 있다 해서 희망에 부풀었지만 황민웅씨는 결국 2005년 7월 23일 부인과 어린 아들딸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겪었던 일을 정애정씨 역시 겪었다. 그 이후 정애정씨 역시 삼성과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삼성이 이들의 한(恨)을 풀려면황상기씨와 정애정씨는 삼성을 뭐라고 할까. 딸을 잃고 남편을 잃은 이들은 삼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들은 삼성을 '한(恨)'이라고 한다. 황상기 씨는 삼성 다니는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애정 씨는 애사심이 누구보다 많은 사원이었고, 그녀의 남편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금 삼성은 한이다. 이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주어야만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거짓말 하지 말고, 진신을 은폐하지 말고, 위험을 알리고, 안전장치 마련에 최우선의 노력을 기해야 한다.
반도체를 위한 '먼지 없는 방'보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노동자를 위한 '안전한 방'이 먼저다. 그렇다. 사람이 먼저다. 그렇게 되면 삼성에도 '피 묻은 돈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날 것이다.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김수박 지음,
보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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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씁니다. 문피아에 '천재 아기는 전생을 다 기억함'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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