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또 하나의 가족'은 싫다

[서평] 김수박의 <사람 냄새>와 김성희의 <먼지 없는 방>

등록 2013.02.28 18:15수정 2013.02.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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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8일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에서는 외부로 불산이 누출되지는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지난 27일 민관합동조사단은 불산의 외부 누출이 의심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고가 난 것도 문제지만, 세계 초일류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이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다시 한 번 삼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삼성은 영원한 거짓말쟁이로, 무책임한 또 하나의 가족으로 남을 셈인가.

삼성전자 화성공장도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삼성전자 하면 반도체요, 반도체 하면 삼성전자라고 할 정도로 반도체는 삼성의 황금알 낳는 거위라 할 수 있다. 반도체를 수출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해외에라도 나가면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뿌듯한 기분마저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지라도 반도체 생산 공장이 사람을 병들고 죽게 만든다면 단호하게 그 공장의 가동을 중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물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은 다른 곳이 정전일 때도 전기를 공급받을 만큼 최우선적으로 보호되는 산업현장이다. 하루 생산을 멈추면 엄청난 액수의 손실이 생긴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산 누출 사고를 보아 알 수 있듯이 노후된 시설이 언제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고 그 사고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른다. 더구나 이런 '사고'가 아니라 생산 과정 중에 화학물질에 노출돼 백혈병 같은 암에 걸린다면, 아니 백번 양보해서 그런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선 철저한 안전 조사를 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예전에도 그렇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

반도체공장의 위험을 알리는 만화 두 편

<사람 냄새> 표지
<사람 냄새>표지보리
반도체 산업을 흔히 청정산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수박의 만화 <사람 냄새>와 김성희의 만화 <먼지 없는 방>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이 청정산업이고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두 작품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씨와 황민웅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두 만화에 나타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근로 환경은 대단히 위험하다.

고 황유미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2003년에 삼성전자에 직업훈련생으로 들어와 일하다 2005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고작 스물세 살에 세상을 떠났다.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고 취업을 한 착한 딸이었고, 휴일이면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했던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다. 이 기특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런데 <사람 냄새>에 나오는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증언에 따르면 삼성의 대응은 정말 너무 졸렬한 것이었다. 삼성은 황유미 씨가 투병중일 때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여러 차례 치료비 때문에 경제적 곤궁에 빠진 가족을 돈으로 회유하려고 했다. 삼성은 치료비를 대주겠다고 속여 사직서를 받아내는가 하면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고 거액을 제시하기도 했다.


황상기씨는 삼성의 거짓말에 진저리가 나서 삼성과 싸우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노동자를 도와야 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신청을 기각하고, 이에 불복한 황상기 씨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에 공문을 보내 행정소송에 도움을 달라고 한다. 세칭 '일류' 변호사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위해, 아니 그 뒤에 있는 삼성을 위해 변론을 맡았다. 그러나 2011년 6월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행정소송 1심 선고에서 법원은 고 황유미 씨의 백혈병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황상기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 황상기 씨는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 위해 싸우고 있다.

이래서야 또 하나의 가족이 되겠는가?


<먼지 없는 방> 표지
<먼지 없는 방>표지보리
삼성이 보인 이 졸렬한 태도를 우리는 익히 듣고 보아서 잘 알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거짓말로 둘러대고, 그것이 탄로 나면 광고로 위협해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그래도 안 풀리면 막대한 돈을 들여 송사를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를. 이래 가지고서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지 못한다. 아니 평소엔 잘 해주다가 수가 틀리면 가정폭력범으로 변하는 무서운 가족이 되는 것이다.

김성희의 <먼지 없는 방>은 '클린 룸'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생산공장의 내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반도체 생산과정에 대한 교과서로 쓰여도 무방할 정도의 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반도체 생산과정은 너무 복잡하고, 단계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클린 룸'은 사람에게 깨끗한 방이 아니라 반도체와 그것을 만드는 기계에게 깨끗한 방이다. 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는 방독면을 써야 마땅한데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만약 알게 된다 해도 방독면을 쓰고 일하면 작업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왕따'가 됐어야 한다. 제대로 된 보호장비는 바이어나 VIP만 썼다고 하니, 도대체 노동자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는 것 아닌가.

<먼지 없는 방>의 주인공 정애정 씨 역시 1995년 고3 때 직업훈련생으로 삼성에 입사해서 청춘을 보내고 같은 공장에 근무하던 황민웅 씨를 만나 2001년에 결혼한다. 2003년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행복하던 이 가족에 청천벽력이 떨어진다. 황민웅씨가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정애정씨는 남편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 이미 뱃속에 아이가 또 있었다. 정애정씨는 남편이 고통스럽게 투병하는 와중에 딸을 출산한다. 이식할 골수가 있다 해서 희망에 부풀었지만 황민웅씨는 결국 2005년 7월 23일 부인과 어린 아들딸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겪었던 일을 정애정씨 역시 겪었다. 그 이후 정애정씨 역시 삼성과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삼성이 이들의 한(恨)을 풀려면

황상기씨와 정애정씨는 삼성을 뭐라고 할까. 딸을 잃고 남편을 잃은 이들은 삼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들은 삼성을 '한(恨)'이라고 한다. 황상기 씨는 삼성 다니는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애정 씨는 애사심이 누구보다 많은 사원이었고, 그녀의 남편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금 삼성은 한이다. 이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주어야만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거짓말 하지 말고, 진신을 은폐하지 말고, 위험을 알리고, 안전장치 마련에 최우선의 노력을 기해야 한다.  

반도체를 위한 '먼지 없는 방'보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노동자를 위한 '안전한 방'이 먼저다. 그렇다. 사람이 먼저다. 그렇게 되면 삼성에도 '피 묻은 돈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수박, <사람 냄새>, 보리, 2012. 값 12,000원.
김성희, <먼지 없는 방>, 보리, 2012. 값 12,000원.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김수박 지음,
보리, 2012


#사람 냄새 #먼지 없는 방 #김수박 #김성희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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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씁니다. 문피아에 '천재 아기는 전생을 다 기억함'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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