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지부의 한 조합원은 경찰의 양해를 받아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그는 불에 탄 지갑을 들고 나왔다.
박점규
평소 장난기가 많았던 젊은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김정우 지부장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지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농성장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오전 5시 30분 무렵 발생한 화재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폐허가 된 농성장 주위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천막 안에서 화마를 피해 목숨을 건진 쌍용차 조합원들을 찾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병원에 갔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려고 했더니 천막에서 미처 휴대전화를 챙기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병원에 함께 간 선배에게 "그냥 취객이 담뱃불을 던져서 불이 일어난 거라면 모르겠지만, 계획된 방화라면 앞으로 무서워서 어떻게 분향소에서 잘 수 있겠냐"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먼저 잠에서 깨어 불이 일어난 것을 알았던 다른 조합원은 수사 중이라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의 양해를 받아 화재 현장에 들어가더니 불에 탄 지갑을 들고 나왔습니다. 타다 만 만 원짜리 몇 장과 녹아버린 카드를 꺼내는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그는 3분의 1쯤 타버린 지폐를 은행에서 교환해주는지 물으며 조심조심 비닐 봉투에 담았습니다. 다행히 그가 깊이 잠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850만원 재산피해? 그 이상이다 어느 종편 방송사는 아침 일찍부터 카메라를 화재 현장에 들이댔습니다. 한 보수신문의 기자는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의 인터뷰 거부에도 끈질기게 주위를 맴돌며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계 조작으로 하루아침에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었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 24명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렸던 지난해 4월 5일부터 이날까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견뎌내며 지켜낸 333일이었습니다.
더 이상 동료들을 잃지 않겠다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과 절규와 땀방울이 스며있는 농성장은 그 자체로 보물입니다.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발걸음을 보냈던 노동자·시민·학생·종교인·문화예술인 등 수많은 이들이 건넨 농성 물품 하나하나는 문화재였습니다.
쌍용차 농성장 화재에 관련해 850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850만 원의 재산 피해라니요? 8500만 원, 아니 8억5000만 원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마음들이 담긴 물품들이 있었고, 333일 동안의 가슴 아픈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한 예술가의 작품도, 어느 스님의 법회 소품도, 어린 학생들의 편지도 화마와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몇 달을 모아 감춰뒀던 딱지가 아궁이에 던져져 재로 변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의 편지를 모아둔 박스가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분향소를 지켰던 이들의 마음의 집이 불타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잿더미로 변한 농성장과 불타버린 영정을 바라보는 해고자들의 슬픔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불법천막 방치 문화재까지 훼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