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위의 눈은 녹았지만 갈대늪의 얼음은 살얼음으로 남았습니다.
이안수
식물이나 사람이나 어찌 그 사는 이치가 이렇게 같을까요. 부족함이 없으면 의욕이 떨어지고, 경쟁이 없으면 나태해지는 식물, 이 식물이나 사람이나 그 본능과 속성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독일의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악성(樂聖)으로 추앙되는 그는 그가 살았던 18세기와 19세기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음악사의 성인(聖人)임이 흔들릴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땅딸막한 키에 유난히 큰 두상, 사팔뜨기에 귀머거리였습니다. 음악사의 뛰어난 이 위인은 한 번도 연애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전기 작가들은 그가 동정인 채로 죽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우리를 위안하는 그의 '영웅, 운명, 전원, 합창'의 교향곡과 '비창, 월광, 열정'의 피아노 소나타들은 그의 고독한 체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쟝 자크 루소(Rousseau)의 교육론인 '에밀(Emile)'은 자신이 태어나고 9일 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14살에 재혼한 아버지로 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었던 자신의 방황이 바탕이 됐습니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칸트와 니체. 철학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체계를 구축한 이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실패했으며 독신으로 평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좌절이 이들을 위대한 철학자로 세웠습니다.
경칩날 저는 봄의 들머리를 걸었습니다. 석양은 불과 일주일 전보다 10여m나 오른쪽으로 옮겨가서 땅 밑으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회색빛 정원에도 곧 난만(爛漫)한 봄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올해는 어떤 식물이 척박한 토양에서 경쟁을 뚫고 두드러질지 자못 궁금합니다.
경칩날 저를 깨운 것은 결핍이나 경쟁의 스트레스를 탓할 일이 아니라 묵정밭으로 남은 마음 밭부터 서둘러 일궈야겠다는 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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