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한반도 평화의 길'을 주제로 한반도평화포럼 월례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운영위원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홍익표 민주통합당 의원.
이주영
박근혜 대통령은 3.1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도발을 중지해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대로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1월 1일 신년사에서 "(한국이)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전진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근본전제"라고 강조했다. 양쪽 모두 상대의 '변화'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 정상의 공식 연설을 예로 들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된 상황에서 남북한 신뢰 구축은 순서상 맞지 않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학자로 유명한 김 교수는 13일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한반도 평화의 길'을 주제로 한 한반도평화포럼 월례토론회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고 꼬집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남북은 각각 상대가 진정성을 갖고 먼저 (호의적으로) 나오면 잘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서로 말하는 신뢰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남북은 적대적 의존관계이므로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남북 간 신뢰 구축이 가능하다면 일찍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5년 임기동안 신뢰 프로세스를 만들어내겠다? 욕심을 내도 너무 많이 냈다."토론 참석자들, 안보·대화 병행추진 강조... "6자회담 보완해 유지해야"김 교수가 박 대통령에게 조언한 남북관계 개선 해법은 '순서'다. 그는 "지금 남북이 입을 옷에는 첫 단추를 끼울 단춧구멍도 없으므로 구멍부터 낸 다음 단추를 달아서 꿰어야 한다"며 "우선 평화 프로세스부터 구축한 다음, 상황에 맞춰서 남북이 서로 성의를 보이는 식으로 한반도 내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남북관계 개선 순서 중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이다. 김 교수는 "유엔 동시가입·6.15 공동선언 등으로 사실상 서로 인정했으니 이제는 국교급의 정상회담을 하며 (남북 간) 징검다리를 둬야 한다"며 "보수 쪽에서는 '웃기는 이야기'라 할 테지만,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는 제도화 단계를 거치면서 신뢰가 쌓이면 평화협정까지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의 틀로서 6자회담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밝혔다. 김 교수는 "이미 경험을 축적해 온 6자회담 틀을 폐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만 6자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이 어려우니 4자회담, 양자회담 등 다양한 형식의 대화 틀을 더 마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김창수 한반도 평화포럼 기획운영위원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 홍익표 민주통합당 의원 등 이념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지닌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평소 밝혀온 진보·보수적인 입장과 상관없이 박근혜 정부를 향한 김 교수의 뼈아픈 조언에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북핵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해 대북정책을 병행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6자회담 틀은 유지하되 기존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고유환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선 핵 폐기, 후 남북교류'를 앞장세웠지만 북의 핵능력 향상을 막지 못했다"며 "이제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수정해 새로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핵화회담은 안 하고 평화회담을 하겠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라며 "그동안 우리는 북에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평화협정은 용인하지 못했다, 평화협정에 대해 정치적 용기가 있는지가 새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길정우 의원은 "6자회담이 북핵문제를 그동안 끌어온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며 "'6자회담 죽었다'며 대안 찾는 것보다는 6자회담을 유지하며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진단했다. 김창수 위원장은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대화에 참여하거나 민간끼리의 대화를 주선하는 등 6자회담을 보완할 다양한 대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캠프 출신 길정우 "박, 남북대화 방침 고집스럽게 유지할 것"박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좀 더 적극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홍익표 의원은 "한반도 평화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지도자는 김대중 대통령뿐"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수많은 시간을 '빨갱이'라는 허울을 덮어쓰면서도 일관되게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 "저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지성인·정치인들은 '빨갱이'라는 굴레에 걸려 들까봐 평화를 적극 이야기하지 못해온 게 사실"이라며 "박 대통령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라는 불편한 진실을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길 의원은 박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임기 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당시 캠프에서 대북정책 수립에 관여한 바 있다.
길 의원은 "박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넘어 동북아 다자 안보 틀로서도 작동할 '6자회담 +α'을 머릿속에 두고 있다"며 "임기 동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대화라는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는 방침을 고집스럽게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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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학자 "대북 억지하면서 신뢰 구축? 한번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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