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이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
그리고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감추리
검은 철을 깎아 만든
고궁의 흰 지댓돌 위의
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
잃어버린 애아(愛兒)를 찾은 듯이
너의 거룩한 머리를 만지면서
우는 날이 오더라도
철망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그림자보다도 훨씬 급하게
스쳐가는 나의 고독을
누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잡을 수 있겠느냐
향로인가 보다
나는 너와 같이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인가 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원인을
네가 지니고 있는 긴 역사였다고 생각한 것은 과오였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여 보는
향로가 이러하고
내가 그 향로와 같이 있을 때
살아 있는 향로
소생하는 나
덧없는 나
이 길로 마냥 가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티끌도 아까운
더러운 것일수록 더한층 아까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더러운 것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으면서
비로소 마음 취하여 보는
이 더러운 길.
(1954)
<김수영 전집>에서 창작년도가 '1954'로 적혀 있는 작품은 아홉 편 정도입니다. 이들 작품에서 수영은 되풀이하여 설움과 부끄러움을 이야기합니다. 그 정도로 이 시기 수영을 감싸고 있던 것은 온통 자기 자신을 향한 모멸감*뿐이었습니다.
특히 총 3연 5행의 단편인, 이 작품의 전작 <거미>는 그런 자기 모멸의 한 극단을 잘 보여줍니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3연)가 그 뚜렷한 증거입니다. '가을바람' 속의 "늙어가는 거미"는 그 이미지가 얼마나 처연한지요.
그런데 이 시에 오면서 그런 자기 모멸의 정서나 태도는 미묘하게 변화합니다. 시에서 화자는 자기 자신을 "고궁의 흰 지댓돌 위의 / 더러운 향로"(2연 2, 3행)에 빗댑니다. "긴 역사"(5연 2행)를 지니고 있는 그 '향로'를 생각하면서 화자는 살아 있음과 소생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문득 "덧없는 나"를 돌아보지요.
이때 화자는 어떤 '길'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다짐하지요.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1연 1, 2행)겠다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화자는 "모든 것에서부터 / 나를 감추"(1연 6, 7행)겠다고 말합니다. 이 다짐은 사뭇 단호하여 그야말로 끝장을 보겠다는 투입니다.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가 7, 8연에서 살짝 변주되면서 반복되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화자가 가(려)는 길은 "더러운 길"(9연 4행)입니다. 화자는 그("더러운 길") 위에서 "더러운 것 중에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으"(9연 1, 2행)려 하고 있지요. 그런데 화자 '나'는 그 탐색의 과정에서 "비로소 마음 취하여 보"(9연 3행)겠다고 말합니다. 더러운 길을 가면서 자신의 진실하고 순수한 속내를 찾아보겠다는 것이지요.
이는 마치 세속의 수도자가 행하는 역설의 수행법과 같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연꽃은 더러운 진흙에서 피어나지요. 진짜 도통한 수도자에게는 더러운 홍진(紅塵)에서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첩경이 됩니다. 이런 곳에서는 이를테면 자기 모멸이 참된 자기애를 감추는 수단이 되기도 하겠지요.
김수영이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고궁 유물 중에서 '향로'를 택했겠습니까. 그것도 '더러운' 향로를 말입니다. '향로'는 향을 피우는 데 쓰입니다. 분향(焚香) 말이지요. 분향은 구마(驅魔), 곧 악귀를 쫓아내는 동시에 방향(芳香)의 기능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성스러운 물건이지요.
그런데 고궁의 향로는 이제 그런 구실을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더러온 몰골을 하고 있는 채로 말이지요. 향로는 지금 아무런 존재의 의의를 갖지 못한 채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4연 2행)을 뿐입니다. 화자는 그런 향로를 자신과 일체화하고 있습니다. 처절한 고독을 삼키며, 그 본질을 찾으려는 자신의 모습을 그 향로에게서 보았던 게지요.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은 자기 갱신과 새 삶으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됩니다. 그 부정과 모멸이 극단적일수록 우리 인생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지평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첫머리에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1연 1, 2행)겠다고 다짐했던 수영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테지요. 이 시를 지을 때, 저는 수영이 분명 설움과 좌절,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한 발짝 벗어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이 모멸은 친구의 동거녀가 된 아내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에 '너'로 지칭된 시적 대상을 아내 '김현경'으로 보고, 이 시 전체를 그녀를 향한 애증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수영의 무망한 다짐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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