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맑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령(全靈)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書冊)은
위대한 고대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所在)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1954)
1954년 11월 27일입니다. 이날 수영의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며칠 전 이야기다. 시인 P(기자 주-'시인 P'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를 만나고 그의 말의 불쾌한 쇼크를 받고 들어온 날 밤 나는 또 참을성 없이 어머니한테 "나는 총선거가 되면 일본으로 가야겠어요." 이런 말을 하였다. 그때도 어머니는 "너는 외국에 가야지 출세를 한다더라." 하고 내가 떠나가는 것을 찬성하는 것 같은 빛을 보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항상 집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터이다. 있으라고 해도 있고 싶지 않은 집이지만 그렇다고 막상 이런 말을 듣고 보니 기분이 서운하기 짝이 없고 한없이 서글프고 불안해지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김수영 전집 2 산문>(484쪽)
그런데 이들 문장 바로 앞에 수영은 그날(11월 27일) 아침 어머니와 함께 아침 밥상머리에서 나눈 대화 정경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까 아침을 먹을 때 어머니가 밥상머리에서 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얘! 총선거가 되면, 수강이나 수경이 만나볼 수 있으까!" 6·25 후에 없어진 아우에 대한 염려다. 이것도 한두 번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알 수 있나요. 돼보아야지 알지요." 나는 이렇게 시무룩하게 대답하여 두었지만, 이것도 나에게는 적이 불쾌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쭉 참고 내 방으로 쫓기듯이 건너가 버렸던 것이다. (483, 484쪽)
아마도 이때 수영의 마음 속에는 불퉁거리는 느낌만 가득차 있었겠지요. 오죽하면 '불쾌한 일'이라고 적었을런지요. 하지만 수영의 어머니는, 총선거에 즈음해 실시할 투표권자 조사를 통해서 잃어버린 두 아들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한번 보시지요. 첫머리에 인용한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수영의 어머니는 수영이 외국에 나가는 것을 적극 찬성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수영의 모친은 수영에게 다시 '총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 그러니 "외국에 가야 출세한다더라"라는 어머니의 말이 수영에게 빈소리로 들리지 않았겠는지요.
그 며칠 전에 나온, "있으라고 해도 있고 싶지 않은 집"이라는 말 또한 그냥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수영의 머릿속은 그렇게 온통 집에 대한 극심한 염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어머니의 '외국에 가야 출세한다더라'는 말을 듣고 서운함과 서글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아주 모순적이지요. 두 아우에 대한 어머니의 염려를 듣고도 "알 수 있나요. (기자 주-총선거가) 돼 보아야지 알지요"라고 차갑게 대답한 앞뒤 정황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는 '가족'을 향한 시인의 전혀 다른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화자의 집은 지금 "신선한 기운"(1연 3행)으로 차 있습니다. '식구들'이 밖에서 "묻혀가지고 들어온"(2연 4행)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3연 3행)은 "나의 눈을 밝게"(4연 4행) 하지요. 지금 화자의 집을 밝히는 불빛은 "조용하고 늠름"(5연 1행)하기만 합니다.
화자는 "그들에게 전령(全靈)을 맡긴"(5연 4행) 채 "순한 고개를 숙"(5연 5행)입니다. 화자의 가족은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7연 1, 2행) "조화와 통일"(7연 3행)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의 집을 감싸드는 "아득한 바람과 물결"(9연 2행)을 '사랑'으로 여기며 기꺼워합니다.
이 시 속의 '가족'은 분명 위에서 말한 "있으라고 해도 있고 싶지 않은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일 겁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곳에서는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일까요. 혹시 김수영 시인이 서로 다른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저는 수영이 이 시를 통해 '가족'에게 끝까지 기대고 싶어했던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8연 4행) 자신의 힘든 일상을 내려놓고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게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가족 사이의 그 끈끈한 '사랑'은 "낡아도 좋은 것"(9연 4행), 그래서 그것이 언제나 자신에게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집안 분위기가 아무리 넌덜머리가 나더라도 평범한 일상 인이 기댈 곳은 그 안에서 복작이듯 살아가는 가족밖에 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가 전쟁 통에 친구의 그늘 아래로 들어간 수영에게는 오히려 그 가족만이 자신을 일상에 붙잡아두는 유일한 끈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영의 가족은 그가 위태로운 현실의 끈을 놔버리고 싶어할 때마다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는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현실을 버텨내야 했던 수영의 애처로운 모습이 이 시에는 또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시 전체의 분위기가 따뜻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문득 차가운 자조(自嘲)가 느껴지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겠지요.
[기자 주] 1953년의 <부탁>외 3작품과 1954년의 <시골 선물>외 3작품 등에 대한 시평은 제 블로그 '불온시인 김수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