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종관계, 출석도 불렀다"
노동부도 눈감은 '이마트 전문판매사'

[인터뷰] 성수점 전 '나이키' 전문판매사원 허심근씨

등록 2013.03.19 18:02수정 2013.03.2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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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이마트 매장 입구에 구입한 상품을 담는 카트가 세워져 있다.
서울의 한 이마트 매장 입구에 구입한 상품을 담는 카트가 세워져 있다.권우성

"전문판매사원 제도가 정상적인 판매위탁으로 인정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판매사원의 종속성을 표시하는 요인들이 다수 파악되고, 그에 따라 전문판매사원 및 판매보조사원 모두 귀사와 직접 고용관계에 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지난 2011년 10월 6일 국내 유수로펌인 '태평양'이 이마트에 보낸 법률 의견서의 일부다. 신세계 그룹 이마트는 '전문판매사원'(SE) 제도를 가전분야로 확대하기 전 법률 검토를 거쳤다. 결과는 위탁판매계약이 아닌 '직접 고용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오마이뉴스> 이 법률 의견서와 함께 내부자료를 입수해 이마트의 신종 불법고용 형태인 SE제도의 문제점을 지적 한 바 있다.(관련기사 : 이마트, 신종 불법 고용 '가전 SE' 운영)

당시 이마트는 "정말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한두 개밖에 없었고, 그것은 수정을 했다"고 해명했다. 최종적으로는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시행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보도 이후 전문판매사원제도에 대한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기사에서 지적했던 가전부분 SE뿐 아니라 패션, 스포츠 상표인 나이키, 골프, 와인, 아웃도어 등 다양한 분야의 SE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SE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일 전혀 없었다"

지난 18일 경기도 수원역 인근에서 만난 허심근(38)씨는 바로 얼마 전까지 이마트 본점인 서울 성수점에서 나이키 전문판매사원으로 일했다. 매년 3월 1일로 재계약을 맺게 돼 있지만 그는 올해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2010년 일을 시작하고 3년만이었다. 부인과 아이가 있고, 새로운 일을 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에게 있었다.

전문판매사원은 이마트와 상품판매 위탁계약서를 체결하고 매장에서 해당 분야의 제품을 판매하는 인력이다. 월별 총매출액에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다. 매출액이 높으면 수입도 늘어나는 일이다. 전문판매사원은 또 자신이 급여를 주는 '판매보조사원'을 고용할 수 있다. 별도 직원을 고용해 매출을 늘려 더 많은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전문판매사원은 매출을 높이는 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이마트 또한 매출 상승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제도다.

허씨 또한 성과를 낸 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이 일을 시작했다. 독립적인 매장을 운영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다음은 허심근씨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

 얼마 전까지 이마트 본점인 서울 성수점에서 나이키 전문판매사원으로 일했던 허심근씨는 "매출을 아무리 높여도 회사에서 수수료율을 낮춰서 월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고정적인 월급을 받았다"면서 "얼마를 팔아도, 몇 년을 일해도 계속 같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이마트 본점인 서울 성수점에서 나이키 전문판매사원으로 일했던 허심근씨는 "매출을 아무리 높여도 회사에서 수수료율을 낮춰서 월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고정적인 월급을 받았다"면서 "얼마를 팔아도, 몇 년을 일해도 계속 같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이미지

- 이마트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0년 1월에 인터넷으로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처음에는 죽전점에 지원을 했는데 내가 경험도 많고, 나이도 있으니까 본점으로 오면 좋겠다고 해서 서울 성수점에서 일하게 됐다. 나이키 일반매장에서 7~8년 정도 판매 매니저(점장)를 한 경험이 있다. 열심히 일해서 매출을 높여도 월급은 항상 같았다. 매장 운영을 독립적으로 할 수도 없었다. 이마트가 제시한 전문판매사원은 매출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많이 팔면 그만큼 벌 수 있고 매장 운영에도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실제로 일 해보니 기대와 달랐나?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매출을 아무리 높여도 회사에서 수수료율을 낮춰서 월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고정적인 월급을 받았다. 얼마를 팔아도, 몇 년을 일해도 계속 같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매장에 판매보조사원도 이마트가 정해놓은 인원을 뽑아야 하고, 매장에 있는 이마트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판매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마트 직원들은 우리 판매사원을 불러다가 창고정리를 시켰다. 상품위탁판매라고 하지만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스케줄 표 작성하고 출석확인까지... 독립성 없는 종속 관계

허씨가 가져나온 나이키 부분의 '상품판매관리 위탁계약서'는 앞서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가전부분 전문판매사원의 계약서와 거의 일치했다. 이들 계약서에는 이마트가 지정한 점포로만 판매장소가 한정돼 있고, 이마트가 정한 정찰가로만 판매가 허용되며, 이마트 측의 허락 없이 할인이나 인상이 금지돼 있다. 이런 요소들은 위탁판매자가 독립성이 없는 사실상 고용의 형태라는 증거가 된다.

이처럼 이마트의 SE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립적인 판매위탁 계약을 맺고 있지만 사실상 점포 직원들의 관리를 받는 종속적인 고용관계가 형성 돼 있다는 점이다. 허씨는 "(이마트 직원들의) 업무지시는 수시로 있었다"며 "스케줄 표를 제출하고 조회에 참석하면 출석을 부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 업무지시를 내린다는 건 단순계약 관계가 아닌 고용관계로 해석된다. 구체적인 업무지시 사례가 있나?
"이번에 이마트 사태가 터지면서 고용노동부에서 특별근로감독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없어진 게 있다. 그 전까지는 매장 인력들의 스케줄 표를 작성했다. 나이키 매장에 나를 포함해 4명이 일하고 있다면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누가 일한다는 걸 보고해야 한다. 스케줄 표에 있는 사람이 그 시간에 매장에 없으면 이마트 직원들이 왜 없냐고 뭐라고 한다. 아침에 이마트에서 하는 조회에도 참석해야 한다. 거기서 출석을 부른다. 나에게 위탁판매를 맡기고 판매직원까지 내가 고용했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이마트 점포 직원들이 했다."

- 이마트 직원들의 업무지시는 정기적으로 있었나? 이마트 직원과 전문판매사원의 관계는 어땠나?
"업무지시는 수시로 있었다. 주로 판매가격을 지정해주거나 상품진열을 바꾸라는 식이었다. 직원들과의 관계는 주종관계다. 내가 있던 점포의 한 직원은 내가 계약을 파기하기 전 휴게실에서 나에게 '점주님 이번에 내가 살렸다, 내가 평가하는 부분이 큰데 1년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작성한 상품위탁판매 계약서에는 어떤 평가를 받는다는 부분이 없다. 말 그대로 일반 회사의 인사평가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판매사원은 판매보조사원을 고용하게 돼 있다. 판매 업무를 돕는 이 인원들의 임금은 전문판매사원이 수수료를 받아서 지불한다. 계약서상으로도 판매보조사원의 채용과 업무지시 등의 권한은 전문판매사원에게 있다. 그러나 그 인원은 이마트 측이 결정한다. 허씨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채용도 사실상 이마트 측이 최종결정하고 판매 보조 외 업무지시도 자주 있었다.

판매전문사원을 독립된 사업자로 인정한다면 이러한 형태의 판매보조사원 운영은 이번에 직접 고용명령이 내려진 하도급 인원과 유사한 '불법파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 판매보조사원의 채용은 어떻게 이뤄지나?
"내가 인터넷에 구인광고를 올려서 면접을 보고 급여를 책정한다. 그렇다고 바로 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마트에서 매주 목요일 면접을 본다. 이것도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전에는 '면접'이라고 불렀는데 감독이 나오니까 '상견례'라는 말로 바꿨다. 이 면접이 끝나고 이마트 직원의 사인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

- 최종적인 채용결정은 이마트 쪽이 한다는 얘긴가?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 직원은 인상이 안 좋다, 쓰지 말라'는 말도 한다. 판매보조사원은 이마트 직원들에게 훨씬 더 많이 욕을 먹는다. 서류상으로는 내가 채용해서 쓰는 친구들인데, 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물건 옮기는 거 도와달라고 하고, 아무 때나 한 명만 데려다 쓴다고 한다. 내가 물건 팔아야 하니까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보조 사원 중에는 이마트 직원들의 지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만 둔 친구들도 꽤 있다."

"수수료 인상, 처우 개선 없을 바에는 직영으로 채용해야"

 가전 전문판매사원(SE) 제도를 2011년 전 매장으로 확대 실시했음을 보여주는 이마트 내부 문서. 이 자료에 따르면 SE 제도는 가전 분야뿐 아니라 패션, 스포츠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 실시됐다. 가전 분야의 불법성이 드러난만큼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가전 전문판매사원(SE) 제도를 2011년 전 매장으로 확대 실시했음을 보여주는 이마트 내부 문서. 이 자료에 따르면 SE 제도는 가전 분야뿐 아니라 패션, 스포츠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 실시됐다. 가전 분야의 불법성이 드러난만큼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오마이뉴스

무엇보다 허씨가 전문판매사원 일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수수료 문제였다. 허씨에 따르면 그의 매장은 이마트 내 23개 나이키 전문판매사원이 있는 매장 가운데 아주 높은 매출을 올리는 곳이었다. 그의 매장 상품 진열 모습을 다른 매장에서 참고하도록 찍어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매출은 올라갔지만 수수료율은 낮아졌다. 쉽게 말해 5000만 원을 팔았을 때 11%였던 수수료가 6000만 원을 팔게 되니 9%로 낮아 진 것이다. 일의 강도는 높아졌지만 그의 수입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 일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직장을 다니면 연차가 올라갈수록 임금도 올라간다. 일정 급여 상승을 기대하고 일을 하게 되는데 이마트에서는 매출을 아무리 올리고 올려도 수수료가 깎이다 보니 실질임금은 점점 마이너스가 되는 거다. 못 파는 매장이 있고 잘 파는 매장이 있는데, 그 형평성을 맞추려다 보니 상품위탁판매가 아닌 사실상 사업주가 고용한 형태가 된다. 비전이 안 보여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 그동안 수수료는 어떻게 조정이 됐나?
"처음 2010년 계약을 했을 때는 11.6%였다. 그러다 2011년에 재계약하면서 10.4%로 떨어졌다. 매출은 오르는데 수입은 일정하게 가는 거다. 그래도 2011년에는 수수료를 낮춘다는 말을 한 달 전쯤 알려주고 생각할 시간을 줬다. 얼마 전 재계약 때는 수수료를 9.2%로 낮춘다는 말을 재계약 며칠 전에 들었다. 2월 28일이 재계약 날짜였는데, 통보 받은 날짜가 25일이다. 그 사이에 고용해야 하는 판매보조사원은 3명에서 5명으로 늘었다. 수수료는 점점 낮아지고, 인건비는 더 써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어떻게 더 일 할 수 있겠나."

- 전문판매사원제도를 운영하면서 이마트가 얻는 이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자기들의 리스크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다. 직영 사원을 고용하면 손실비용이 발생하면 그대로 손실이 된다. 하지만 전문판매사원 손실에 일정 부분을 변상하게 된다. 판매직원 채용도 완전히 우리에게 떠넘기는 거다. 직접 고용을 하게 되면 자르는 게 쉽지가 않다. 매출 대비 수수료로 지급한다고 하니까 전문판매사원들은 매출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받는 돈도 늘어나니까. 이마트 입장에서 보면 매출은 올라가고 손실비용도 부담을 덜고 직원 채용에 대한 책임도 떠넘길 수 있는 거다. 게다가 전문판매사원에게 주는 수수료율을 낮추면 더 많은 이익을 보게 되는 구조다."

- <오마이뉴스>가 가전분야 전문판매사원 관련 보도를 한 걸 보고 연락을 해오셨는데, 가전이나 나이키나 비슷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다른 분야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다들 굉장히 힘들어 한다. 패션 부분이나 골프, 다른 분야도 나이키랑 똑같다. 패션 전문판매사원은 매장마다 6명 정도씩 있는데 다들 나이가 좀 있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이마트 직원들이 막 다루는데 누가 힘들지 않겠나. 나는 비록 이제 이 일을 안 하지만 전문판매사원 제도가 정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고 남아 이는 분들이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일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전문판매사원제도를 계속 유지할 거면 그에 맞는 처우를 해줘야 한다. 판매의 독립권을 부여하고 간섭하면 안 된다. 실적이 안 좋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지금은 재계약을 빌미로 너무 많은 간섭을 한다. 매출이 오른다면 수수료를 낮춰서도 안 된다. 수수료를 낮추면 그걸 메우기 위해 전문판매사원들은 더 힘들게 일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판매 분야에도 직영사원을 써야 한다. 지금도 직영 사원과 다를 바가 없다."

한편,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고용노동부의 발표에는 이 문제가 쏙 빠졌다.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24개 매장 사내하도급 1987명의 불법파견을 적발하고 직접 고용명령을 내렸지만, SE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직접 고용명령에 따라 이마트가 1만여 명 정규직화를 발표한 것은 고용노동부 감독의 성과라 할 수 있으나, 불법성이 농후한 SE 인력을 파악하지 못한 것에 부실 감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 #신세계 #SE #전문판매사원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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