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신선처럼 놀 수 있을까"

[선유도 여행기①] 걷기 좋은 코스로 바다와 어우러진 비경 펼쳐져

등록 2013.03.21 16:47수정 2013.03.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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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맑은 모랫길 십리 이게 그 길이다. 적당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바닷가. '빈 도화지'처럼 푸른 물과 파도, 모래 외에는 배도, 사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맑은 모랫길 십리 이게 그 길이다. 적당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바닷가. '빈 도화지'처럼 푸른 물과 파도, 모래 외에는 배도, 사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임준연


선유도. 잠이 오질 않았다. 장가가는 날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랜만의 여행. 애인이랑 가는 여행인가. 그럴 수도. 사랑하는 남자들끼리의 여행이다. 60대, 50대와 40대의 조합. 끈끈하지도 않으며 엉성한 관계이나 서로에겐 꽤 흥미롭다. 갓 마흔 살이 된 막내가, 어른을 늦었다며 놀려가며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중년 다섯은 마냥 들뜨기만 했다.

나는 아니었다. 갓 낳은 아이를 포함, 애 셋과 마누라를 내버려두고 떠나는 '발칙한' 여행이었다. 주변에서 온갖 험담과 불안함을 토로해도 흔들리지 않고 과감히 선택했던 여정이었다. 같이 가는 일행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가고 싶은데 포기하면 또 얼마나 이런 기회를 기다려야 할까 고심하다가 한 선택이었다. 여럿과 어울려 가는 여행도 좋지만 서넛이 함께하며 이야기 나누는 여행이 더 좋을 것이라 여겼던 탓도 컸다.


선유도. 신선이 노닌다는 그 섬의 백사장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맑고 넓은 원고지를 생각했다. 햇볕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모래들은 빛났고 파도소리들은 푸르렀다. - <곽재구의 포구기행> 중

배는 군산여객터미널을 떠나 선유도 선착장에 닿을 때까지 나란히 육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아갔다. 고군산열도. 정말 줄지어서 크고 작은 섬이 보였다. 섬(산)이 많아 군산(群山)이라 불린 지역. 조선시대에 군산이라는 항구도시가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도 '고군산'이 아니라 그냥 군산이라 불렸겠다.

지금은 각 섬이 마을 단위로 분리되어 불리고 있으나 천년전만해도 꽤 높은 관리가 거주하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고려시대 즈음의 왕족의 무덤이 선유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추정하는 어느 사학자의 인터뷰 기사도 장소에 대한 궁금함을 낳았다.

a 군산여객터미널 떠나는 길은 언제나 흥분으로 가득하다. 공항 비행기탑승로를 걷는 기분과 비교될까.

군산여객터미널 떠나는 길은 언제나 흥분으로 가득하다. 공항 비행기탑승로를 걷는 기분과 비교될까. ⓒ 임준연


바다 위 줄자를 펼쳐놓은 듯 반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따라 나란히 나아간다. 정지된 풍경사진을 여러 장 겹쳐놓고 배경만 움직이는 것처럼 선박의 창 너머로 비현실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공장, 부두, 굴뚝과 박스의 구조물들. 도무지 바닷가의 낭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회색빛. 바닷물까지 흑색처럼 느껴졌다.

빨리 그 섬에 닿거라.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힘들 정도의 소음과 어디서 들어오는지 경유 타는 냄새가 여객선의 객실을 가득 메우고 있어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가면 신선이 노닐던 섬이 나오지 않는가. 기다려보자.


그렇게 기나긴 한 시간 중 십오 분을 맥주 한 캔으로 보내고 멍하니 심심해서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여객선의 좁다란 갑판에는 한 가족이 갈매기에 새우깡 주기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흔들리고 바람은 찬데다가 시끄럽기까지 해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들어가는 것이 낳겠다. 한 시간이 왜이리 긴지. 잠도 안 왔다.

오랜만에 배에서 내리는 경험이다. 이런! 역시. 선착장에서부터 '삐끼' 등장이다. 기대와는 조금 어긋나기 시작했다. 관광지라면 당연한 풍경일수도 있는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2월 말이라 늦겨울. 그것도 평일이라 여행객이 많으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군산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당일로도 산책하고 돌아가는 여행객들이 있다고 했다.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전동차의 행렬.

'좀, 꾸미지.'

닦지도 않고 먼지와 때가 그대로, 비닐도 너덜한 채로 가득 정차된 카트와 허름하고 지저분한 차림의 운전자들. 각자의 숙박지와 음식점으로 관광객을 데리고 가려는 의도를 보였다. 슬리퍼에 작업복차림 운전자들의 차림도 깔끔 떠는 요즘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어보였다.

a  선유도에서 바라본 장자도 풍경. 앞쪽에 다리로 이어진 곳이 장자도, 오른쪽이 대장도. 뒤쪽에 떨어진 섬이 서쪽의 관리도다.

선유도에서 바라본 장자도 풍경. 앞쪽에 다리로 이어진 곳이 장자도, 오른쪽이 대장도. 뒤쪽에 떨어진 섬이 서쪽의 관리도다. ⓒ 임준연


최근 몇 년간 '카트' 안전문제로 시와 경찰서, 주민 간의 갈등이 있었다는 보도도 접했다. 안전뿐만 아니라 미관도 좀 신경을 써서 주민회에서 통일된 보조 장치나 색깔, 로고 등을 등록하면 훨씬 보기 좋을 듯했다. 듣자 하니 2007년부터 몇 주민이 전동카트를 대여해주는 사업을 시작했고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해 지금은 섬 내에 200대 가까운 숫자의 전동차가 있다고 한다. 그전에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차량이 섬을 오가느라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전동차와 자전거로 섬이 조용해졌다고.

감히, 여행을 와서, 그것도 반나절 만에, '1박 2일은 좀 길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은 사전 준비가 부족한 탓이기도 했다. 5명의 사내들은 '회비 10만 원'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심지어 갈아입을 옷조차 가져오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출발하던 당시 도시락과 먹거리를 잔뜩 싸가지고 오신 분을 향해 한 말도 그랬다.

"뭐 하러 가져와. 짐만 되게."
"여행을 처음 다니시니까 이것저것 짐이 많지."

젊은 놈이 나이 든 이에게 퉁을 주는 것까지. 동행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분위기는 곧 달라졌다. 섬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돈은 넉넉하게 가져오든가 아니면 먹을 것을 싸와서 숙소에서 해먹어야 한다는 것을.

비수기에도 음식 값은 별로 변하지 않았고 섬 지역의 음식이란 대부분 해물을 테마로 하는 것들에 회가 주류라서 일인당 2~3만 원 정도 생각하지 않으면 식사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세 끼 내내 바지락칼국수만 시켜먹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칼국수도 7000원에, 다른 메뉴는 인당 1만5000원이 넘는 메뉴라 우리 회비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저녁에 회 들어오니까 오세요."

건성으로 "네" 하고는 숙소에서 짐 풀어놓고 나갈 채비를 했다. 한 명은 어제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며 자리를 깔고 누웠다. 나머지도 밥 먹고 따뜻한 데서 몸 좀 녹이며 가겠다고 하는 사이에 '걷기 위해 온 남자'는 배낭 메고 선글라스 끼고 등산화 끈을 조이며 재촉했다. 셋은 한창 이야기에 물이 올라 이불 밑에 다리만 넣고 앉아 떠들었다. 결국 그는 "먼저 가요" 하고 떠났다.

a  선유도 북쪽의 포구. 고깃배들을 위한 항구로 등대모양이 마치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태여서 눈길을 끌었다.

선유도 북쪽의 포구. 고깃배들을 위한 항구로 등대모양이 마치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태여서 눈길을 끌었다. ⓒ 임준연


숙소는 선유도 선착장에서 1킬로미터가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해수욕장 들머리에 위치한 2층 낡은 건물. 손님은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방은 비어 있는 상황에 복도는 어둡고 길었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무녀도, 서쪽으로 장자도와 대장도는 걸어서 건널 수 있게 이어져 있었다. 명사십리를 끼고 위쪽까지 하루에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선유도 중학교를 지나 작은 언덕길을 넘었다. 금방 몸이 더워져 겉옷을 벗어 들었다. 언덕너머는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로가 난다고 했다. 그것도 2차선 도로가.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섬을 반으로 가르는 도로는 수십 년 된 숲을 헤치고 있었다.

장자도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위해 큰 교각이 생기고 일부 바위를 깎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옥돌해변으로 내렸다가 선유봉을 향해 산을 올랐다. 이십여 분 오르자 정상이 나왔다. 그곳에서 내려오는 이들과 마주쳤지만 7부쯤에서 한 번뿐이었다. 쌍봉 형태로 가위 모양의 봉우리 둘이다. '동생봉'에서 '형봉'으로 옮기자 장자도 쪽으로 또 다른 풍경이 '선유'의 경지를 느끼게 했다.

a  선유봉에서 장자도 동남쪽을 바라본 풍경. 무녀도 옆에 달린 장구도가 수줍게 눈에 들어온다.

선유봉에서 장자도 동남쪽을 바라본 풍경. 무녀도 옆에 달린 장구도가 수줍게 눈에 들어온다. ⓒ 임준연


#선유도 #군산여객터미널 #서해 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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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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