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제 파마코스키(왼쪽 기타 연주자)는 국적과 인종, 나이를 넘어 나와 친구가 된 마케도니아 사나이다. 록 뮤지션인 그는 여름이 되면 동료들과 함께 자주 야외 공연을 벌인다.
홍성식
헌데, 선입견은 라제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국 젊은이들이 주다스 프리스트, AC/DC, 메가데스의 연주와 노래를 듣는다는 걸 신기해했다. 마케도니아에서 보자면 한국이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아시아의 소국(小國)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몇몇의 유럽 청년들에겐 "한국은 중국어를 쓰냐 일본어를 쓰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국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무지와 인식의 색맹 중간에 위치한 것이 보통의 인간이다. 세상일을 다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어쨌건 술과 함께 록음악으로도 죽이 맞은 나와 라제는 한 달 내내 어울려 다니며 벨기에에서 캠핑 온 여고생들과 아일랜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한다는 발랄한 스물여섯 아가씨 앞에서 번갈아가며 마케도니아와 한국 노래를 불러주는 주접(?)을 떨곤 했다.
어떤 날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독일에서 은행원으로 일한다는 여성 여행자의 노래를 들었다. 아마추어를 뛰어넘는 실력을 갖춘 그녀는 앨라니스 모리셋의 노래를 앨라니스 모리셋보다 더 맛깔나게 불렀다. 라제에게 빌린 기타까지 멋들어지게 연주하며. 그런 날은 라제의 단골 재즈바로 몰려가 그 옛날 프랑스의 표상주의 시인 랭보와 베를렌이 즐겼다는 초록빛 화주(火酒) '압생트'를 꼭지가 돌아갈 때까지 마시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나처럼 오리드에 매혹돼 열흘 이상을 그곳에서 머물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두 소녀 알리나 알리베르티와 미리엄 소피를 태우고 나갔던 뱃놀이도 흥겨웠다. 수백 만 년 전 생성된 투명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는 작은 배 위에서 미리엄은 짙은 금빛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로렐라이처럼 노래를 불렀다. 라제 아버지가 배를 가졌다는 사실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