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집 최고의 즐거움 모래놀이.
정가람
"꽃 피는 봄에 놀러오너라~"간경화를 앓고 계셨지만 몇 년은 더 우리 곁에 계실 거라 믿었던 아빠였는데, 생신에서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나시고 말았다. 너무나 급작스런 이별에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우리 다섯 식구는 깊은 밤, 친정집도 병원도 아닌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그저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라며 상복을 입고 하얀 머리핀을 꽂고 장례기간을 보냈다. 풀썩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40개월, 22개월, 2개월 어린 것들의 엄마인 나는 조문을 받고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다가도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친척들 틈에서 재롱을 부리다가도 문득 내게 달려와 보채는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아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갓난쟁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자니……. 그동안 대본을 쓰며 죽음을 그린 적이 많았건만, 현실에서, 그도 내 아버지의 죽음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잡히지 않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아빠 없이 혼자 남게 되신 친정엄마 걱정에 남편과 상의해 한 달 정도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머물기로 했다. 그러나 다급히 내려간 걸음이라 준비 못한 게 많았다. 삼우제를 지내고 첫째를 외가에 남겨놓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엄마만 남겨놓고 오기 어려운 걸음이었는데 외할머니를 잘 따르는 첫째가 선뜻 외가에 남겠다고 했다.
태어나 아직 단 하룻밤도 엄마 곁을 떠나 자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몇 번을 물어도 외할머니와 있으면 괜찮다며 서울집에 가서 아빠 밥도 해놓고 제 장난감도 챙겨오라는 첫째. 아이가 할머니 품에서 잠든 것을 보고 무거운 밤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