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노순택 제공
제가 사는 마을은 영일만 작은 포구랍니다. 파도가 병포리, 하정리, 장길리 붉고 파란 지붕들을 들추면 사람들은 광명호, 장성호, 멋쟁이호 힘차게 띄우며 하루를 열지요. 한결같이 희망을 붙인 이름으로 바다에 나가 그물 걷어 올리는 동안, 굽은 해송은 갯바위를 깨우고요. 따개비는 부챗살 같은 촉수 세워 아침을 사냥하지요. 등 굽은 노모는 마당 가장 양지바른 곳에 비스듬히 발을 치고 온갖 피데기를 널어요. 봄 햇살은 종일 미주구리며 미역초며 구석구석 살뜰히도 핥아 줍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시절입니다만 저 바다 너머 섬, 제주는 어떠신지요? 그 섬 깊이 표류하는 강정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작년 봄, 제주4·3문학기행에 참가했습니다. 영남 마을을 비롯하여 제주 전역을 휩쓸었던 4·3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동안 제주 작가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말씀 덕분에 제주가 지나온 시대와 아픔을 깊게 만났지요. 4·3문학기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강정이었습니다.
강정 마을에 닿았을 때 사거리 모퉁이에는 난전을 편 바다가 있었습니다. 나무 도마 위에 백조기 한 마리 떠억 벌린 입으로 햇살이 들고요. 손마디 굵은 사내가 스윽스윽 비늘을 긁고 아가미 벌려 내장을 빼내면 붉게 따라 나오는 물컹한 생 위로 벚꽃잎 흩날렸지요. 상점에서 물 한 병을 사들고 나오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꼭 5년째라고, 이 지독한 싸움이 시작된 지 5년이나 되었다고.
지난해 1월, 작가들의 '글발글발 평화릴레이'를 기억합니다. 해군기지 반대와 강정의 평화를 위해 임진각에서 강정까지 1번 국도를 걸으며 몸으로 쓴 글이었지요. 저도 완주에서 정읍에 이르는 구간을 걸었습니다. 한겨울 추위를 벗 삼아 걷는 길 위에서 물빛에 빛나는 검은 바위와 붉은발말똥게와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 떼를 떠올리며 모두들 강정의 평화를 얼마나 외쳤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