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땅은 장동건"... 콩깍지 씌어서 귀농했어요

[인터뷰] 사진기자에서 농사꾼으로 변신한 원유헌씨

등록 2013.04.05 11:23수정 2013.04.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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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유헌 씨가 자신의 귀농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원씨는 중앙 일간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8월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했다.
원유헌 씨가 자신의 귀농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원씨는 중앙 일간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8월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했다.이돈삼

"새를 무지 좋아했어요. 꽃과 야생화도 좋아하고요. 자연 사진을 많이 찍었죠. 그런데 농사지으면서 보니까 새들이 골칫거리였어요. 세상에 길조(吉鳥)는 없더라구요. 지금은 새들에게 빌어요. 제발 한 쪽만 먹고 한 쪽은 남겨주라구요. 벌레들한테도 애원합니다. 여기저기 건드리지 말고 몰아서 뜯어 먹으라고."


지리산 자락 구례로 귀농, 2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원유헌(46·전남 구례군 용방면)씨의 말이다. 그는 "밭에서 새 수십 마리가 파다닥 날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새들이 미워지더라"며 웃음 지었다.

원씨는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이 보이는 마을에서 논 900평과 밭 1000여 평을 일구고 있다. 밭에는 갖가지 콩과 마늘, 생강, 양파, 시금치 등을 심고 있다. 지난달 하순엔 하지감자를 심었다. 고사리와 나물도 채취한다.

 겨울과 가을의 힘겨루기. 원유헌 씨가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던 2010년 지리산 천왕봉 부근 중봉의 모습이다.
겨울과 가을의 힘겨루기. 원유헌 씨가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던 2010년 지리산 천왕봉 부근 중봉의 모습이다.이돈삼

 구례에 둥지를 튼 원유헌 씨가 지난 3월 하순 심은 감자밭에서 풀을 메고 있다. 뒤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지리산 왕시루봉이다.
구례에 둥지를 튼 원유헌 씨가 지난 3월 하순 심은 감자밭에서 풀을 메고 있다. 뒤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지리산 왕시루봉이다.이돈삼

서울에서 나고 자란 원씨는 신문사 사진기자였다. 19년 동안 서울에 있는 중앙 일간지에서 일했다. 퇴직 전까지 국회를 출입하며 정치인들의 활동을 카메라에 담았다. 귀농은 10여 년 전부터 생각했다. 진솔하게 살고 싶었다. 믿을 건 땅밖에 없다고 여겼다. 쌀이 천대받는 것도 안타까웠다.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고 싶었다.

"누구를 만나 취재한다는 게 불편했어요. 특히 정치인들을 만날 때면…. 가면 하나씩 쓰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허울과 가식으로 사람을 대하구요. 이건 핑계일 뿐이구요. 도시와 조직생활 부적응자라고 봐야죠. 제가."

막상 귀농을 하려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경제적인 문제와 자녀교육이 걸렸다. 하지만 부인(김희정·44)과 공감대가 쉽게 형성이 됐다. 경제적인 문제는 '버는 만큼만 쓰자'로 결론지었다.


자녀문제는 '서울포기'가 결코 '교육포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이가 자신의 나이쯤 되어 귀농을 고민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다.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게 최상의 교육이라는 확신도 섰다.

 원유헌 씨의 감나무 밭. 이웃주민이 직접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원유헌 씨의 감나무 밭. 이웃주민이 직접 가지치기를 해주었다.이돈삼

쉬는 날이면 부인과 함께 새 둥지 찾기에 나섰다. 최상의 귀농지로 염두에 둔 곳은 구례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구례는 장동건이었어요. 모두가 좋아하는.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결혼할 수 없잖아요. 인연이 서로 닿아야죠. 땅값도 그렇고. 구례가 저희와 맞지 않더라구요. 할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다녔죠."

원씨 부부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강원도 산골에서부터 충청도, 경상도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다시 구례를 찾았다. 한 번 씌워진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았다.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2011년 8월이었다.

 경운기를 끌고 있는 원유헌씨. 마을이장이 준 중고를 40만원 들여 고쳐 쓰고 있다.
경운기를 끌고 있는 원유헌씨. 마을이장이 준 중고를 40만원 들여 고쳐 쓰고 있다.이돈삼

 원유헌 씨가 전기톱을 들고 나뭇가지를 절단하고 있다. 원씨는 일간지 사진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8월 귀농했다.
원유헌 씨가 전기톱을 들고 나뭇가지를 절단하고 있다. 원씨는 일간지 사진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8월 귀농했다.이돈삼

"솔직히 내려오기 전에는 걱정을 했죠. 텃세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마을 어르신들한테 저희가 천 배, 만 배 받고 살아요. 보따리에 물건 싸주는 게 시골인심이라 생각했는데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학창시절 농촌봉사활동과 귀농학교 다닌 경험이 전부인 원씨에게 농촌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농사도 어려웠다. 마을 어르신들한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물어보면 말로만 가르쳐주는 게 아니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주시더라구요. 모든 걸 내 일처럼 챙겨주시는데. 여태까지 못해본 첫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원씨에게 마을 어르신들은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씨를 뿌려주고 수확도 도와주었다. 과수 가지치기도 틈 나는 대로 직접 와서 해주었다. 중고 경운기도 줬다. 고쳐서 지금도 쓰고 있다. 때로는 걱정스런 충고도 해주었다. 어느새 많이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동반자가 됐다.

가족들도 농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서울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던 부인은 텃밭을 가꾸며 중학교에 글쓰기 강사로 나가고 있다. 아들도 중학교에 다니며 생활에 만족해하고 있다.

 감나무밭 가운데에 들어서 있는 닭장. 원유헌 씨가 직접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감나무밭 가운데에 들어서 있는 닭장. 원유헌 씨가 직접 만들어 놓은 것이다.이돈삼

 원유헌 씨가 기르고 있는 강아지. 아직은 어리지만 밭과 과원을 지켜주는 동반자다.
원유헌 씨가 기르고 있는 강아지. 아직은 어리지만 밭과 과원을 지켜주는 동반자다. 이돈삼

원씨는 귀농을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농약과 비료, 비닐을 쓰지 않겠다는 게 첫 번째였다. 당장 수확이 적더라도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고 싶어서다. 연둣빛 풀이나 붉은 황토 대신 은색 비닐이 온 땅을 뒤덮고 있는 것도 싫었다. 작물을 습한 땅속에 가두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사람을 사서 쓰는 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에서다. 농사를 상업으로만 여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농사지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구조도 아니지만, 이윤만 쫒으면 자신도 모르게 무리수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먹을거리 갖고 절대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는 소신도 한몫했다. 농사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 도시민들에게 일정기간의 먹을거리를 공급해주는 꾸러미 사업을 해볼 계획이다.

"날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일합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살겠다고 다짐도 하구요. 군대로 보면 아직 이병 딱지도 못 뗀 초보잖아요. 어리바리한. 그래도 예비 귀농자들한테 이 한마디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을로 들어가라구요. 혼자 떨어져 살지 말고, 마을에 들어가서 살라고."

그의 말투에 힘이 들어간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서 농촌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배어난다.

 원유헌 씨가 준비해 놓은 농작물 씨앗들. 올 봄과 여름에 뿌릴 것들이다.
원유헌 씨가 준비해 놓은 농작물 씨앗들. 올 봄과 여름에 뿌릴 것들이다.이돈삼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한 원유헌씨. 서울에서 태어나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8월 누구나 원하는 '장동건' 같은 땅인 전남 구례로 귀농했다.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한 원유헌씨. 서울에서 태어나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1년 8월 누구나 원하는 '장동건' 같은 땅인 전남 구례로 귀농했다.이돈삼

#원유헌 #귀농 #지리산 #사진기자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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