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허망한 장이었어, 지금은..."

어물전으로 널리 알려진 '땅끝 해남'의 남창오일장

등록 2013.04.06 18:57수정 2013.04.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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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육지 끝 해남에 있는 남창장. 완도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 육지 끝 해남에 있는 남창장. 완도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이돈삼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는 거여. 모내기가 끝나면 북적북적할 것이구먼. 그래도 이 정도면 오늘 장사 좀 되겄어."


지난 2일 아침 무렵 도착한 해남 남창장이다. 장터가 한층 고무돼 있다. 농사철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손수레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장터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그 장단에 맞춰 얼굴이 불그스레한 할아버지가 몸을 흔들어 댄다.

장은 매달 2일과 7일에 열린다. 전남 해남과 완도의 경계지점인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완도대교 입구에 선다. 남도 끝자락 바닷가 자그마한 마을에 서는 시골 장터지만 아담하면서도 알차다.

 남창장의 어물전. 인근 바다에서 잡은 갯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남창장의 어물전. 인근 바다에서 잡은 갯것들이 주종을 이룬다.이돈삼

 남창장에서 만난 돔바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다.
남창장에서 만난 돔바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다.이돈삼

남창장은 어물전으로 유명하다. 예부터 어물전이 걸었다. 그 위세는 지금도 만만치 않다. 바닷가에 자리한 덕이다. 장터에는 활어, 해조류, 어패류 등 싱싱한 해산물과 현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가득 찬다.

"팽야 바다에서 잡히는 것이 나오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재미가 엄청 많았는디, 요즘은 숭어가 많이 나오제. 쬐끔만 더 있으면 돔의 세상이제."

아들이 잡아온 활어를 가지고 나온 윤미자 할머니의 말이다. 윤 할머니의 말처럼 이맘때 남창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숭어다. 숭어를 앞세워 개불과 우럭, 상어, 간자미, 주꾸미 등 횟감용 갯것이 즐비하다. 모두 살아있는 것들이다.


"이게 뭐야?"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아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아이뿐 아니다. 지나가는 이들마다 한 마디씩 던진다. 자연스레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이 돌아간다. 좁은 함지박을 유유히 유영하는 것의 생김새가 상어 같다.

"돔바리여. 상어새끼하고 비슷한디, 종자가 틀려. 상어는 상어여. 이놈을 끓는 물에 데치믄 지가 알아서 (껍질이)벗어져 부러. 썰어서 먹으믄 기똥차제. 된장에 찍어 먹으믄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당께."


매번 설명해주는 것도 입이 아프다는 할머니가 돔바리 한 마리를 쓱쓱 썰어 초장에 찍어 권한다. 입안에 착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생선 파는 할머니. 직접 손질을 다 해주고 있다.
생선 파는 할머니. 직접 손질을 다 해주고 있다.이돈삼

 남창장을 지키는 할머니. 농산물과 수산물을 두루 펼쳐놓고 있다.
남창장을 지키는 할머니. 농산물과 수산물을 두루 펼쳐놓고 있다.이돈삼

해초 틈으로 정갈하게 다듬어 늘어놓은 푸성귀도 풋풋하다. 미나리, 파, 시금치, 쑥과 함께 시골에서도 구하기 어렵다는 엉겅퀴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민들레도 보인다. 뿌리가 통통한 게 한두 해 자란 것이 아닌 것 같다.

"유자밭에서 캐온 것인디 4~5년 다 됐어. 이런 놈은 귀해. 다려서 애들한테 먹이믄 그렇게 밥을 잘 먹어. 아는 사람은 다 알어."

달랑 민들레 대여섯 뿌리 캐서 장에 나온 조복자 할머니다. 할머니는 금세 민들레 뿌리를 팔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건어물을 팔던 할머니들도 한 명씩 짐을 싸기 시작한다. 북적거리던 장터가 조금은 한산해진다. 시간이 점심 때를 향하고 있다.

 남창장을 지키는 할머니. 벌써 4월이지만 장터의 바람은 아직 차갑다.
남창장을 지키는 할머니. 벌써 4월이지만 장터의 바람은 아직 차갑다.이돈삼

 남창장의 묘목시장. 식목일을 앞두고 묘목시장에도 사람들이 모였다.
남창장의 묘목시장. 식목일을 앞두고 묘목시장에도 사람들이 모였다.이돈삼

한때 남창장은 '허망한 장'으로 불렸다. 장이 일찍 서고 빨리 끝나버려서다. 장이 빨리 끝났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유는 서로 다르다. 장터에서 만난 두 할머니의 말이다.

"옛날 선창가에 있을 때는 장이 없다시피 했어. 잠깐 서고 바로 끝나 불었제. 어찌나 허망하던지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여."
"아니여! 어물이 하도 좋은께 금방 팔려부러. 그래서 장이 빨리 끝나불어서 생겨난 말이당께."

남창장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온전히 상인들 노력 덕이다. 상인들은 장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했다. 손님이 없어도 오후 4시까지 장터를 열었다. 생선도 싱싱한 것으로만 내놓았다. 원산지 표시도 꼼꼼히 했다.

그렇게 하길 수 개월. 싱싱한 해산물을 사려는 손님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금은 완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됐다. 덩달아 시장의 규모도 커졌다. 지난 2006년 장터를 옮겨 새로 지었다. 이후 북적거리는 장터가 됐다.

하지만 뜻하지 않던 악재(?)가 생겼다. 최근 시장 옆으로 완도-해남간 4차선 도로가 뚫려 개통된 것이다. 장터를 거쳐 가던 관광버스들이 새로 뚫린 도로를 타고 곧장 지나쳐 갔다. 방문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덩달아 매출도 급감했다.

관광객들을 불러들일 묘안이 필요했다. 상인들과 해남군이 다시 머리를 맞댔다. 장터 옆에 대형주차장을 만들고 회센터, 복지관, 소운동장도 만들기로 했다. 수려한 해안경관과 이진성 등 주변의 역사 자원과 연계한 재래장터로 꾸미기 위해서다. 남창장의 변신에 관심이 모아진다.

 남창장 풍경. 한 할머니가 농산물을 팔고 있다.
남창장 풍경. 한 할머니가 농산물을 팔고 있다.이돈삼

 남창장 풍경. 장옥 밖의 거리에도 장꾼들이 모여 있다.
남창장 풍경. 장옥 밖의 거리에도 장꾼들이 모여 있다.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도정 소식지인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창장 #재래시장 #해남 #남창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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