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1953년 7월 27일 효력을 발생한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은 남과 북, 우리민족을 거대한 가스레인지 위 금속 물통 속에 가뒀다. 법률적으로는 북과 미국·중국이 맺은 협정이나 현실적으로 우리도 포함돼 있다. 이 정전협정에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수립한다"는 말이 없다. 대신 "적대 쌍방은 하나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각각 2킬로미터씩 후퇴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과 북이 적대쌍방, 즉 교전당사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어느 일방이 전쟁중지를 중단하고 전면전으로 전환해도 국제법적으로 합법이다. 바로 이 정전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가스레인지의 손잡이는 미국과 북이 각각 하나씩 쥐고 있다. 그럼, 둘의 입장은 무엇인가. 미국은 당연히 손잡이를 잡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중적이다. 그들은 가스레인지 위 금속물통 속에 몸을 담근 채 동시에 손잡이를 잡고 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이러한 처지에서 둘의 입장은 갈린다. 북은 불을 아예 끄자는 쪽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북은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여기서 문제 하나. "미국은 이라크를 왜 공격했습니까? ①대량살상무기가 있기 때문에 ②(대량살상무기가) 없기 때문에?" 답은 2번이다. 미국은 두 가지 경우가 맞아떨어지면 전쟁을 한다. 하나는 자기의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 둘은 100% 이긴다는 계산이 나오는 나라.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는 한, 북이 미국에 무릎 꿇지 않으면서도 살아남는 길은 오직 하나,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등해지는 길뿐이다. 바로 여기서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북과 미국의 20년 대결이 세계사에 삐져나오는 것이다.
북과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다섯 번이나 '합의'를 한다.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①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고 ②북과 미국이 사이좋게 지내며 ③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왜 똑같은 합의를 다섯 번이나 했을까. 미국이 가스레인지 손잡이에 무한 집착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설명하면 쉽다. 2009년 5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다. 미국이 평화협정으로 나오지 않고, 계속 교전국가로 남겨 적대시하면 자기들은 살아남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1994년 이후의 그 방법론의 연장이면서 핵실험 2회 차라는, 매우 강력한 압력이었다. 이에 미국은 즉각 온도를 낮춘다.
그 해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보내고, 12월에는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를 평양에 파견, 담판을 짓는다. 방북 이후 서울 기자회견에서 보즈워스는 "북과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다"고 발표해 미국의 '온도 하향조정'을 입증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해빙을 기대하며 맞이한 2010년은 천안함 사건으로 완전히 얼어붙는다.
2010년 5월 20일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미국은 "조사결과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는 백악관 성명을 통해 뒤를 받쳐줬다. 나중에 미국의 입김을 토해내는 유엔 안보리에서조차 신뢰성을 완전히 부정당하는 엉터리 조사결과를 미국은 왜 '압도적으로 지지'했을까. "북한이 천암함을 폭침했다"고 해야 한반도의 온도는 올라가고 미국의 이익도 커진다.
미국은 첫째, 한미FTA 재협상, 천문학적인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 등 이명박 정부에게 많은 것을 얻었다. 둘째, 일본 하토야마 정부의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균형자 정책과 그 연장선인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깨뜨렸다. 셋째, 명분을 얻은 김에 조지워싱턴 항모전단을 서해상에서 진입시켜 북한을 협박하는 동시에 중국을 겁박했다. 넷째,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아시아 회귀 전략'을 한층 강화했다. 값지고 화려한 전리품을 챙긴 다음, 미국은 또 온도를 낮춘다. 북이 연평도 포격으로 응수하자, 2011년 내내 세 차례의 북미 직접대화를 갖고, 2012년 2·29합의에 서명하는 것이다.
2·29합의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미국이 '따듯한 한반도'를 결코 길게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입증한다. 2·29합의가 북에게 부과한 의무는 '로켓기술을 이용한 모든 종류의 미사일 발사 중단'이 아니라 '미사일 발사의 중단'이다. 북한은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인공위성을 발사, 실패하고 12월 12일 다시 발사해 성공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한반도의 '이상 고온'을 적극적으로 회피해야만 했던 지난해, 미국은 4월과 8월 두 번이나 비밀특사를 파견, 인공위성 발사시기를 조율한다. 온도를 다시 내린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북은 인공위성을 발사한다. 그러자 미국은 유엔에 제소, 제재를 강화한다. 이에 대해 북은 왜 '날강도 같은 짓'이라고 했을까? 우리 한국이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에 지급한 나로호 발사비용은 1회에 2억 달러 이상, 즉 2000억 원 이상이다. 미국도 성공을 공식 인정했으니 지난해 12월 이후 북한은 국제 인공위성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미국이 막은 것이다. 북한에게 미국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빼앗아 간 '날강도'인 것이다. 북의 강력한 반발, 3차 핵실험 강행을 예상하고도 미국은 대북제재를 강화했다. 온도 상승이 또 필요했던 것이다.
북한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