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읍내에 있는 부잣집. 가까이 넓은 논과 채소를 키우느 밭이 있고, 물고기를 키우는 연못을 두고 각종 과일나무들을 주변에 심어 거의 울타리 안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집을 짓는 게 라오스 전통의 주거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영란
이상한 '라오스 엽서' 한 장 탓에 어딘지 모를 시공간을 떠돌던 내 시선이 이제 여기 발밑으로 잡아 묶인다. 당장 다섯 달을 살 집으로 짐을 옮겨야하기 때문이다. 노트북과 사진기, 전화기 두 대(하나는 한국에 쓰던 것 그대로 로밍해온 전화기, 다른 하나는 2007년 파견됐을 때 처음 사서 쓰던 라오스 전화기), 라오스어 사전 두 권을 넣은 묵직한 배낭을 빼고 화물로 부쳤던 큰 가방만 무려 19.8kg이다. 한 달을 넘게 그걸 이리저리 끌고 다녔더니 이젠 손잡이 부분까지 뜯어져나가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휴우, 이 무거운 짐들을 내일 그 뜨거운 햇볕 속에서 또 어떻게 옮겨야 하나!
3월 한 달은 지금까지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5개 산골학교와 앞으로 일을 함께 해야 할 라오스국립대학교(NUL), 라오스재생에너지연구소(LIRE)가 있는 수도 위양짠을 오가느라 집을 구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틈틈이 싸이냐부리 읍내에 있을 동안 아짠(본래 강사나 교수를 뜻하나, 보통 교사들을 부를 때도 존경의 의미를 담아 많이 쓴다)들에게 미리 부탁을 해 두었다. 싸이냐부리 같은 시골 읍내에서는 집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서 월세 방 구하기는 이번이 두 번째. 2007년 해외봉사단원(KOICA)으로 처음 라오스에 왔을 때도 2년을 살 방을 구해야 했다.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임대방식이니 당연히 월세로. 그런데 그때 이 시골 싸이냐부리에서는 방을 임대하는 집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저택같이 큰 집 한 채를 통째로 임대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몇 건 있을 뿐이었다. 별 수 없이 침실 4개, 화장실 2개, 거실 2칸, 바깥 부엌, 안 부엌에 멋진 현관 계단까지 갖춘 집을 얻어 살았다.
이곳은 땅은 넓고 사람은 적어서 그런지(면적은 한반도보다 크면서 인구는 1/10정도니 말이다) 열 명 가까이 되는 대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 사는 게 보통이어서 그런지, 대나무와 갈대로 짓는 집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라오스 집들은 아주 널찍널찍하다. 좀 심하게는 거실에서 배드민턴을 칠 수 있을 정도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책에 실은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라오스에서 고된 '봉사'는 안 하고 호사스럽게만 지낸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했다. 또 그런 거래가 거의 없다보니 대략 정해진 가격도 없어서, KOICA에서 라오스 단원 주거비로 정한 250달러를 주기로 해서 월세 가격을 그렇게 정했다. 집이 좀 크긴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건 좀 과한 가격이긴 했다. 2007년 공무원 초봉이 50달러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때 싸이냐부리 같은 시골에서는.
라오스 '줄방'에 살림 차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