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나

[서평]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우화 <액스 THE AX>

등록 2013.04.18 10:03수정 2013.04.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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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액스> 누가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나

<액스> 누가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나 ⓒ 김아나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180도 바뀌어버린 한 남자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부인과 두 아이를 둔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제지회사에서 "영업부장으로 사 년, 제품 담당 책임자로 십육 년." 20년 넘게 충실히 일을 해왔다. 그는 세일즈맨으로 일할 당시 모든 종류의 산업 용지를 다뤄가며 종이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고, 그의 능력은 회사에서도 인정받았다. 그의 월급은 가족들에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만족할 만한 생활을 누리게 해줬으며, 그는 중산층의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캐나다의 제지회사와 합병되면서 그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다.

"지난 일이년간 대폭적 인원 삭감에 대한 소문이 돌았었다. 실제로 두 차례에 걸쳐 소수의 직원들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전 준비에 불과했고,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95년 10월, 급료 지불 수표와 함께 노란색 용지가 도착했을 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한동안은 비참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게 사무적이고 직업적으로 느껴졌다. 버려진 게 아니라, 양육되고 있다는 느낌. 하지만 나는 버려진 게 틀림없었다."
- page 28

a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의 한 장면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 의해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박찬욱 감독이 리메이크를 고려중이다.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의 한 장면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 의해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박찬욱 감독이 리메이크를 고려중이다. ⓒ 네이버 영화


회사에서 잘린 데보레는 그래도 자신의 경험과 능력이라면 곧 재취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열심히 이력서를 준비하고 회사에 지원하지만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해고된 직원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처지를 그저 예기치 못했던 휴가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즉시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해고 자체가 거의 모든 산업에서 너무 광범위하게 그리고 일률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채용하는 회사의 수가 해고하는 회사의 수를 압도할 수밖에 없다. 실직자는 매일 수천 명씩 늘어나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만 간다." - page 29

점점 바닥나는 돈, 커가는 아이들, 서먹해진 아내와의 관계까지…. 점점 그의 목을 조여온다. 데보레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뿐이다. 그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린다. 그것은 바로 경쟁자들을 죽이는 것. 그는 잡지에 가짜 구인모집 광고를 내고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모은다. 그리곤 자신보다 더 나은 스펙을 가진 경쟁자 여섯 명을 고른다.


"이 바닥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적이 누구인지. 하지만 적을 안다고 해결될 건 없다. 당장 주주 천 명을 죽인다고 내가 뭘 얻을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이천 명의 쓸 만한 직원을 해고한 임원 일곱 명을 죽인다 한들 내가 뭘 얻어낼 수 있겠나? 내게 득 될 건 아무것도 없다. CEO들과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힌 주주들이야말로 내 진정한 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이 사회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문제일 뿐 내가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일이 아니다. 여기 이 여섯 통의 이력서. 내가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건 이것들뿐이다. - page76

그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처음엔 권총을 사용하여 쉽고(?) 간단하게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때까지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그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시키려고 노력한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의 강요에 따른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
"대안을 알려주면 살인을 멈출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벌이는 짓은 끔찍하고, 까다롭고, 섬뜩하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 page 192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며 목표가 눈앞에 다가올수록 그는 점점 더 잔인해져 간다. 거기다 사랑하는 아내의 외도와 아들의 도둑질은 그를 점점 더 목적지향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살인의 도구는 권총에서 도끼와 가스폭팔로 점점 더 잔인해지고, 죄책감이 있던 자리에는 이로써 취직에 한 발 다가갔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이 대신한다.

회사가 그들의 목적을 위해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 것처럼 데보레 역시 자신의 삶을 위해 "살인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이 끔찍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익창출을 위해서는 부당한 해고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기업의 논리, 다시 말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를 한 개인이 그대로 따른다는 것.

"한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게 부적절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기까지 한다. 우리 정부의 지도자들도 항상 자신들의 목적을 앞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변호한다. 미국을 휩쓸고 있는 대폭적 인원 삭감의 폭풍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모든 CEO들도 같은 아이디어를 내세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고."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내 목적과 목표는 간단하다. 나는 내 가족을 잘 돌보고 싶다. 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기술을 유용하게 써먹고 싶다.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떳떳하게 생활 하고 싶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결승점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CEO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미안한 마음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 - page 386

그렇게 그는 눈물도 없는 살인자가 된다. 아니, 그렇게 한 기업의 탐욕은 그를 잔인한 살인자로 만든다.

"내가 얼마나 더 이 짓을 해대야 공정한 기회가 주어질까?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필사적으로 그만두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게 일자리가 주어질 때까지. 이제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이제부터는 내 인생에 장애가 되는 모든 이를 내 방식대로 처리할 것이다. 공과 사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다 쓸어버릴 것이다." - page 387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회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된 것은 1998년,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만 같다.

지난 2009년 4월 8일, 쌍용차는 2646명의 노동자(전체 노동자의 37%)에 대한 정리해고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날,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 오창석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리해고 통보 이후 쌍용차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돌입했고, 해고 노동자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처참해져 갔다. 가족들과의 대화는 줄어갔고, 집안은 늘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주변 사람들은 회사의 책임을 해고당한 개인에게 돌렸다. 회사에 남아있는 '아직' 잘리지 않은 남아있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어갔다. 10번째, 11번째, 12번째…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 시민들은 눈을 돌렸고, TV에서는 제대로 된 보도조차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들 기업의 '어쩔 수 없는 해고'를 침묵으로 용인했고, 2013년 지금까지 총 24명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함께 해고된 노동자들은 수천명이었지만 쏟아지는 청구서와 가족들의 생계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몫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힘을 모았지만, 막상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철저히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

a 쌍용차 해고노동자 추모 행사 이익창출이라는 회사의 목적을 위해 24명의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생명이 아스라이 스러져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추모 행사 이익창출이라는 회사의 목적을 위해 24명의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생명이 아스라이 스러져갔다. ⓒ 김아나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찾아간 상담센터에서 데보레는 말한다.

"그들이 앗아간 건 내 인생입니다. 내가 아니고요. 그들은 내게서 융자를 갚을 능력, 아이들을 돌볼 능력,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여유를 앗아갔습니다. 직장은 직장일 뿐입니다. 직장은 내가 아니라고요. 퀸란씨, 지난 오 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한때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온 동료들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해고된 수백 명의 직원 말이죠. 우린 항상 그 신뢰를 앞세워 함게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 적이 됐습니다. 서로 경쟁해야 하는 관계가 돼버렸으니까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카운슬러들은 절대 이런 얘길 하지 않죠. 우리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것. 더 이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

절망적인 데보레의 말에 아내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버크. 당신에겐 내가 있잖아요"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하자 그는 답한다.

"그래서 날 위해 일자리를 찾아뒀어?" - Page 300

지금 이순간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수익 창출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해고를 감행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목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현실의 잔혹한 결말은 소설처럼 해고당한 한 개인의 광기 어린 살인으로 이어지지 대신 해고노동자들의 끊임없는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이 싸움이 끝이 날까? 기업과 노동자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결코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

지난 2월 11일 <프레시안>에는 "불황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해고로 인해 자살하지 않는 나라 영국'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2008년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영국에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불황이 찾아왔고, 국가와 시장의 혼란과 정리해고로 인해 실업자 수가 1년 만에 160만 명에서 250만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해고를 당했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이유는 복지가 있는 신자유주의 때문이었다고 한다. 프레시안은 "그 복지의 정도는 용돈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두 명의 아이를 낳으면 부모 모두 일하지 않아도 살림을 꾸릴 수 있으며, 실업수당 뿐 아니라 집세를 낼 수 있는 주택보조금과 아이들과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보조금 등이 있다. 바로 이 다양한 국가 보조금이 영국식 신자유주의의 버팀목이 되었고, 해고를 당해도 그 누구도 자살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준 것이다.

또 지난 4월 14일 한겨레 신문에 <'해고없는 위기극복'…강한 독일 뒤엔 '강소기업'있다>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기사가 실렸다. 강철선 가공설비 생산분야의 세계 1위인 독일기업 '바피오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에도 노동자 해고 없이 살아남아 2010년 이후 매출을 증가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회사는 '노동자를 감원하는 대신에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하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득'이라고 봤다. 결국 그 생각은 맞았고 극심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2010년부터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었으며 노동 시간도 정상화 되었다고 한다.

한겨레는 "바피오스는 독일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빠른 경제회복을 이루는데 히든 챔피언들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말하며, "히든 챔피언들은 경영위기에서도 감원을 자제함으로써 '경기 불황→대량 감원→내수 위축→회복 지연→불황 장기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고 밝혔다.

위의 두 사례를 보면, 기업과 노동자가 상생하는 방안 혹은 해고노동자의 자살을 막는 방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독일처럼 노동자와 상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도, 영국처럼 해고노동자의 자살을 막아줄 국가도 없다.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이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기업의 이윤이라는 목적을 위해 무차별적인 정리해고를 감행하는 한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계속 될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을 "어쩔 수 없는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선 어떠한 목적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a 쌍용차 해고노동자 추모 행사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한 외침

쌍용차 해고노동자 추모 행사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한 외침 ⓒ 김아나


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오픈하우스, 2017


#액스 #해고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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