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닫을 수 없는 이유, 간단합니다

[주장] 공공의료기관 없이 의료공공성 달성 가능할까?

등록 2013.04.17 15:28수정 2013.04.1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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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의 운명이 18일 경남도의회의 본회의에 달려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의 폐쇄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의 강력한 입장은 공공의료기관 무용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쉽게 말해 '낡은 공공병원의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서 국민의 세금을 쓸 필요는 없다, 저소득층 진료 등 필요한 서비스가 있다면 민간병원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공공의료기관은 돈 먹는 하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불신

a  진주의료원. 사진은 휴업 예고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3월 30일 오후 의료원의 한 병실의 모습.

진주의료원. 사진은 휴업 예고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3월 30일 오후 의료원의 한 병실의 모습. ⓒ 윤성효


실제로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시설이 낡고 서비스가 취약하다. 그래서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기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수익면에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의료 질을 저하시키는 동시에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민간병원이 이미 시장에 꽉 차 있는 상태에서 공공병원의 설 자리는 더욱 적어지고 있다.

때문에 한국사회의 의료가 지금보다 더 공익적 성격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기관으로서의 공공병원을 강조하기보다는 기능으로서의 공공의료에 방점을 찍어왔다. 공공의료기관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료의 공공성이 달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이 없어도 의료 공공성이 달성될 수 있을까.

공공의료란 좁은 의미에서는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보건의료로 이해되나 넓은 의미에서는 '공공성을 위한 보건의료'를 의미한다.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보건의료란 서비스 공급주체를 기준으로 한 분류로 현행 공공보건의료법에 의거해 '국가·지자체·공공단체가 설립, 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을 의미한다.

광의의 공공(public interest)을 위한 보건의료란 사적이익(private interest)에 대비, 공익을 달성하기 위한 서비스를 의미하며 공공보건의료법에 따르면 '국가·지자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 계층 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 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외국에는 없는 의료공공성의 개념


외국에는 의료 공공성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의료는 기본적으로 시장 영역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제통계에서는 재원에서 공적자금 비중과 소유구조에서 공공병원을 따로 규정하는 것 외에 의료 공공성을 따로 다루지 않는다.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의료 공공성의 개념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 표현한다면 보건의료체계의 목표·성과지표·의료 질 정도가 될 것이다. 보건의료체계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료체계의 목표가 지나치게 공익과는 떨어져 있다는 반증이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지나치게 사적 이익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병의원은 치료를 위한 공간이고, 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서비스이며, 의료인은 소명의식에 기초한 전문가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병의원은 이윤을 내는 사기업(자영업)이며, 의료는 산업이고, 의료인은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표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료체계 개혁 노력이 의료 공공성이라는 개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최소한의 의료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매우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다.

외국의 경우, 사익추구에 대비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공공성이라는 개념으로 의료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의료의 공익적 성격은 당연하며 건강수명연장·형평성·효율성의 달성·의료 질 개선 등의 'Health care Reform'은 신자유주의 정부이든 사회민주주의 정부든 동일하게 추진한다. 미국은 심각한 예외이긴 하지만 소유와 기능 측면에서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사적 이익 확대나 수익추구를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 시장주의 의료의 대표라 불리는 미국마저도 공공병원이 35%, 비영리기관이 35%로 영리적 성격의 병원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1차의료 강화 추구해야

a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오후 창원에서 '진주의료원 휴·폐업 철회, 공공의료 사수,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거리행진하는 모습.

민주노총은 지난 13일 오후 창원에서 '진주의료원 휴·폐업 철회, 공공의료 사수,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거리행진하는 모습. ⓒ 윤성효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한국사회에서 논의되는 의료공공성이란 의료체계가 갖춰야 할 본질적인 목표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목표가 돼야 하는가. 건강 수준의 달성·형평성·효율성의 추구 등을 포괄하지만 세부적 내용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근대 초기 의료공공성이 기본적인 위생문제의 해결이었다면, 점차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늘리고 질을 담보하며 표준적 진료모형을 구축하는 것으로 확장돼 지금은 건강수준의 형평성까지를 포함한다.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미국같이 의료 접근성이 취약하고 의료비가 비싼 나라에서는 의료비를 절감하면서도 보편적 의료보장서비스를 달성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사회 의료체계의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하나. 가장 시급한 것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예방과 건강증진 등 1차 의료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논의되는 의료 공공성이다.

의료공공성 확보는 정부 전체의 정국운영 기조가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정책방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변화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공의료 강화는 수사적 언어에 불과할 뿐, 복지부를 비롯한 관련 정부부처의 입장은 지금까지의 기조와 전혀 차이가 없다. 특히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화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보다 훨씬 더 재정절감·수익중심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를 보더라도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에서 공공병원에 투자하는 것은 제일 낮은 순위로 밀리고 있다.

민간병원도 공익성 있는 의료사업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민간부분의 반대는 더욱 완강하다. 의료계가 도시형 보건지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공공의료의 확충이 민간 의료기관의 운영을 위협한다는 민간 대 공공의 경쟁구도 인식에 기인한다. 시장논리가 지배적인 미국에서 지적 훈련을 받았던 정부관계자들과 보건학자들은 한국 의료발전 계획의 중심에 민간을 뒀고, 모든 경제적 지원은 민간병원을 양적으로 늘리는 데 집중됐다. 외국 차관이나 의료관련 예산은 민간병상을 짓는데 투자됐고, 공공병원과 합리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제는 뒷전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야심차게 공공의료 30% 확충 계획을 수립했으나 정책 아젠다에도 올라오지 못했다. 정권교체가 됐어도 민간 중심의 의료체계 활성화라는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공공의료확충을 목표로 했던 정부를 지나면서 오히려 목표가 선회된다. 공공의료 활성화는 공공기관 확충에서 민간의 공익적 역할 강제로 방향을 전환했다.

대표적 사례가 보건소의 진료기능 폐지와 민간병원을 활용한 지역거점 공공병원 활성화 등 민간과 공공 경쟁구조를 없애고 민간을 중심으로 한국 의료체계를 개혁하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공공의료의 역할을 소극적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에 국한하고 미충족 의료와 저소득층 의료 등 소극적 공익사업 정도는 민간이 수행할 수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이 발표한 '전국 지방의료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34개 지방의료원의 건강보험 입원환자와 의료급여 입원환자의 연간 진료비 차액은 162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의료급여 입원환자 진료비 차액을 건강보험 환자 수준으로 보전해 줄 경우 지방의료원의 적자 규모는 기관당 평균 13억 원 적자에서 6억 원 정도 줄어들어 수가차액 보전만으로도 흑자 의료원은 5곳에서 11곳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렇듯 민간을 활용해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자는 주장은 실질적으로는 공공기관을 축소시키는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공공기관을 늘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병상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2000년 전후로 단위 인구당 급성기 병상(외래와 장기요양병상을 제외한 모든 병상)이 OECD 평균을 넘어섰으며, 2009년에는 이미 4만 병상 공급과잉 상태이다(보건산업진흥원·2011). 하지만 민간부분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는 병상은 한국 의료의 무한경쟁을 야기한 원인이다. 민간부분 병상 초과가 공공기관 확대를 반대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민간중심 병상확대가 갖는 문제점을 공공기관이 해결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 한국 의료체계 개혁 주체될 수 있어

a  적극적 예산 배정과 거버넌스 구조 개편·운영과 진료 형식의 변화를 통한 멋진 공공병원 만들기와 이러한 공공병원의 의료체계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 한국 의료 개혁의 필수요소다.

적극적 예산 배정과 거버넌스 구조 개편·운영과 진료 형식의 변화를 통한 멋진 공공병원 만들기와 이러한 공공병원의 의료체계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 한국 의료 개혁의 필수요소다. ⓒ sxc


일반 의원과 대형병원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구조는 수도권 대형병원 집중을 야기한다. 선진국 어느 나라도 병원에서 외래환자를 보고 의원에서 입원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감기 등 경증질환을 대형병원에서 다루고, 의원에서 고가의 진단기기와 병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환자를 두고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경쟁력 있는 대형병원은 선진의료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전국의 환자를 끌어모으고 있으며 집중된 자본은 당연하게 대형병원 의료의 질을 올린다. 환자들은 몇 배에 달하는 진료비 부담을 져야 함에도 대형병원에 가는 게 질 좋은 진료를 받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미 의료기관의 질서가 수익 위주의 시장원리로 재편된 것이다. 하지만 그 비용을 담당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전체 의료가 비싼 기기와 과도한 진료로 재편돼 불필요한 진료를 강제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시장의 합리적 조율자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취약계층 진료와 미충족 의료 등 민간이 수행하지 못하는 영역에 국한해왔다. 이는 소극적 시장실패 보완의 수준으로 현 한국 사회 의료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의료전체가 시장화되고 있는 적극적 시장실패를 개혁해야 하며 공공의료기관이 의료체계의 적극적 역할자가 돼야 한다.

공공병원의 의료체계 지배력 향상 필요

구체적으로는 표준 진료를 선도해야 한다. 올바른 진단 및 치료기준과 적절한 진료비를 받아야 하고 상업적 진료를 지양해야 한다. 의료연구와 교육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며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병원이 돼야 한다.

현재 대형병원을 비롯한 상업화된 의료기관을 관리하는 비용이 점차 상승하고 있다. 의료비는 폭증하고 있으며 의료비 부담으로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계층이 증가하고 있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수준 높은 공공병원을 유지하는 비용에 비해서 상업적 의료기관 관리비용에 상업적 의료관행으로 낭비되는 의료비와 민간에서 제대로 치료되지 못해 악화되거나 미충족된 의료비를 합한 비용이 월등히 높을 것이다.

민간기관에서 수행할 수 있는 공익적 사업이란 재정지원을 받아 일부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그 경우 한국사회 시장적 의료질서 극복은 불가능하다. 보건의료전문가들은 한국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고 큰 틀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구조적 변화가 가능한 수준의 개혁조치들은 공공영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적극적 예산 배정과 거버넌스 구조 개편·운영과 진료 형식의 변화를 통한 멋진 공공병원 만들기와 이러한 공공병원의 의료체계 지배력을 높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한국사회 의료 개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은경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진주의료원 #공공의료 #의료 공공성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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