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농성 현장 잇는 '섬섬 프로젝트', 첫발 뗐다

르포·만화 작가 16명 쌍용차·강정마을 등 8곳 기록... 오는 11월 출간 예정

등록 2013.04.19 12:19수정 2013.04.1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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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홍모 작가 (제주 강정마을·만화)

이번에는 바다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내가 살던 용산> 등 주로 쫓겨나는 철거민을 그려왔던 김홍모 작가가 제주 강정마을을 그린다. 2007년 이후 6년째 해군과 제주도를 상대로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 점점 사람들의 주목에서 멀어지는 이곳이 어떻게 해야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 그는 고민이다.

"제주 강정마을은 많이 소개됐죠. 단행본만 9권이에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대중의 뇌리에 박히게 하고 싶어요. 르포를 바탕으로 마무리는 판타지를 접목할 생각이에요."

그는 지난 3월 말 제주도로 이사했다. 강정마을도 몇 차례 다녀왔다. 그는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달라진 강정마을 앞바다가 실감난다"며 "제 마음도 점점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답답한 그의 마음이 15매의 그림에 담길 예정이다.

#2. 조성봉 감독(제주 강정마을·르포)

1990년대 후반, 4·3 제주항쟁을 담은 <레드헌트>라는 다큐멘터리로 화제가 됐던 조성봉 감독. 그는 지난 2011년 4월, 강정마을에 이 영화를 보여주러 갔다가 외면할 수 없는 그들의 눈물겨운 싸움에 눌러앉았다. 강정마을 거주 2년째인 그가 이번에는 강정마을을 소재로 르포를 쓴다.

"2년 넘게 살았으니까 짬밥으로 밀어붙여야죠."


영상과 사진이 전공인 그에게 글은 익숙지 않다. 다만 2년의 '강정살이'를 바탕으로 마을 주민의 긴 투쟁을 그려낼 생각이다. 그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혀 가는 걸 안타까워했다. 그는 "끝난 싸움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도 구속돼 있는 사람이 둘이고 어제도 한 명이 연행됐다"며 "강정마을 주민이 왜 싸우고, 왜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안 되는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장기 투쟁 사업장 기록하는 '섬섬 프로젝트'... 11월, 책으로 엮는다


 김홍모 작가와 조성봉 감독. 조 감독은 르포를 김 작가는 만화로 강정마을의 장기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낼 예정이다.
김홍모 작가와 조성봉 감독. 조 감독은 르포를 김 작가는 만화로 강정마을의 장기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낼 예정이다.강민수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김홍모 작가와 조성봉 감독은 18일 오후 7시 경기도 평택시에 자리 잡은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첫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 모두 까무잡잡한 얼굴에 코와 턱에 난 수염에서 반골의 기풍이 느껴졌다. '와락'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상담을 맡아온 곳이다.

서울과 경기도 안양, 고양을 비롯해 울산, 경북 구미 등 전국에서 사람들도 '와락'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르포·만화작가들. 예외로 정리해고 노동자와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모두 16명이다.

이들이 '와락'에 '집결'한 이유는 '섬섬 프로젝트'의 첫발을 떼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는 '섬과 섬을 잇다'는 모티브로 시작됐다. '섬'이란 쌍용차 평택 공장 앞 철탑 위의 해고노동자와 밀양의 산속에서 농성중인 할머니들과 그리고 '콜트·콜텍'의 기타 노동자와 강정마을을 지키는 주민 등 전국 곳곳에서 장기 투쟁 중인 이들을 뜻한다. 프로젝트는 이들이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목적을 둔다.

이들은 제주 강정마을을 비롯해 밀양송전탑·쌍용자동차·재능교육·전북고속·코오롱·'콜트·콜텍'·현대차 비정규직 사업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게 된다. 여덟 곳의 현장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 오는 11월에 출간할 예정이다. 여러 장기 투쟁사업장의 기록이 하나로 묶여 책으로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르포와 만화로 동시에 현장을 기록한다. 김홍모 작가와 조성모 감독이 한 팀이 이뤄 제주 강정마을 맡은 것처럼 하나의 현장에 르포, 만화 작가 1명씩 2명이 짝을 이루는 것이다. 르포는 심층취재를 바탕으로 전체 이야기를 담고 만화는 한 인물을 통해 장기 투쟁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낸다.

정리해고 노동자인 이창근 전국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이번 작업을 통해 고고학자가 흙 속에서 붓질을 해가며 수천 년 된 뼈를 찾듯이, 희미하게 연결된 연대의 끈들을 하나씩 찾아가겠다"며 "오랜 투쟁으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프로젝트 배경을 설명했다.

잇따른 연대로 이어진 프로젝트..."장기 투쟁사업장에 큰 힘 될 것"

 18일 저녁, 경기도 평택시 통북동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르포, 만화작가 16명이 섬섬프로젝트 첫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오는 11월까지 장기 투쟁 사업장 8곳을 생생하게 그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다.
18일 저녁, 경기도 평택시 통북동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르포, 만화작가 16명이 섬섬프로젝트 첫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오는 11월까지 장기 투쟁 사업장 8곳을 생생하게 그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다.강민수

프로젝트 참가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뼈아픈 상처의 현장을 그려낸 민중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다룬 <사람 냄새>의 김수박 작가와 <먼지없는 방>의 김성희 작가 등이 포함됐다. 전업 작가가 아닌 예외로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재능교육 투쟁사업장을, 이창근 실장은 코오롱 정리해고 문제를 다룬다.

프로젝트는 '와락'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다. '와락'은 작가들의 취재비와 작업비용으로 2000만 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그동안 다른 투쟁 사업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온 '와락'이 이번에는 다른 곳을 향해 손길을 내미게 된 것이다. 이날 권지영 와락 대표는 작가들에게 "서로 돕는 연대는 장기간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11월에 출간하게 될 책이 성공해 작가들의 노력이 온전하게 보상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와락'에 모인 작가들은 서로의 파트너를 확인하고 자신이 어떻게 작업을 진행할지, 진행과정에 고민은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어느 출판사와 책을 만들 것인지 등 실무적인 부분도 의견을 모았다. 이창근 실장은 "9년째 접어드는 코오롱 투쟁 과정에서 해고노동자들의 정서적인 변화를 다뤄 볼 예정"이라며 "자기 존엄성 놓지 않고 꿋꿋이 투쟁하는 해고자들의 투쟁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코오롱의 만화를 맡은 박해성 작가는 "9년의 시간을 해고 노동자들이 어떻게 보냈는지를 그리겠다"며 "사람이 그냥 흘려보는 게 아니라 자기한테 와 닿게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에게 듣는 노동 특강도...밤새 이어진 이야기꽃

 18일 저녁, 경기도 평택시 통북동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르포, 만화작가 16명이 섬섬프로젝트 첫 모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은 특강을 열고 한국사회의 노동운동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
18일 저녁, 경기도 평택시 통북동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르포, 만화작가 16명이 섬섬프로젝트 첫 모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은 특강을 열고 한국사회의 노동운동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강민수

모임은 저녁 식사 후, 하종강 교수의 특강으로 이어졌다.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을 제외하고는 여섯 현장이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한국사회 노동문제의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강연이 이어졌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강의에서 하 교수는 한국 노동자의 조건이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연간 노동시간 1위, 인구 10만 명당 산재사망자수 1위, 노동조합 조직률 OECD 최하위라는 현실을 보여줬다. 하 교수는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50년 지켜본 대한민국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점차 실현되는 방향으로 이어졌어요. 20년 전에는 전교조가, 10년 전에는 전공노가 엄청나게 탄압받았잖아요. 우리의 역사는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확대되는 과정이에요."

강의 후, 작가들은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종강 교수는 "이번에 빠진 한진중공업, 삼성반도체 등의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시즌2'로 담아내고 싶다"며 "첫 스타트를 잘 끊어서 머리가 다 하얘질 때까지 전국의 현장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 교수의 말에 나머지 작가들도 맞장구를 쳤다.

김홍모 작가와 조성봉 감독은 이날 처음 만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친형제처럼 지냈다. 김 작가는 "헤어진 친형제를 만난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이들의 웃음은 이날 자정을 지나 다음날 새벽까지 '와락'을 채웠다.

#섬섬프로젝트 #장기투쟁사업장 #와락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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