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흔적이 남은 우라카미 천주당 앞 성인상. 가장 왼쪽의 것은 머리가 잘려나갔으며, 나머지 것들도 뜨거운 열선에 그을린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원폭의 역사를 말해준다.
전은옥
아버지를 돌려다오/ 어머니를 돌려다오/ 나이든 이들을 돌려다오/ 어린 아이들을 돌려다오/ 나를 돌려다오/ 나와 맺어진 사람들을 돌려다오// 인간이,/ 인간이 세상에 있는 한/ 무너지지 않는 평화를,/ 평화를 돌려다오(히로시마 피폭 시인 도게 산키치의 시 <서(序)>)
"분노의 히로시마, 기도의 나가사키"라는 말이 있다. 원자폭탄을 마주하는 두 도시의 다른 관점과 태도의 특성을 비교하는 말로,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왔다. 그리고 '분노의 히로시마'에는 도게 산키치와 하라 다미키와 같이 원폭의 잔악함을 고발한 시인들이 있다면, '기도의 나가사키'에는 가톨릭 신자이며 의학자이자 <나가사키의 종> <로사리오의 구슬> 등을 저술한 작가 나가이 다카시가 있다.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 낙하 중심이 된 곳은 마쓰야마마치 171번지, 바로 우라카미 지역의 정중이다. 현재는 이 원폭낙하중심지에 '그라운드 제로' 즉, 폭심을 표시하는 '중심비'가 세워져 있고 인근이 원폭낙하중심지공원과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등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원래 이 지역은 유서깊은 그리스도교인들의 마을이자, 피차별부락이기도 했다.
우라카미에서는 일찍이 기독교 금지령으로 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부터 메이지유신 초기까지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 유형, 고문과 순교를 당하였고, 특히 3400여 명의 전 주민에게 총 유배령이 떨어진 역사가 있다.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7대 250년의 신앙을 지켜온 기독교인의 마을이 곧 우라카미 지역이다. 뿐만 아니다. 기독교 금지가 철폐된 이후에도, 일본 제국주의는 침략과 전쟁을 확대하면서 민중을 억압하고 전쟁에 동원하기 시작하였고, 그 와중에 기독교인을 차별하고 '비국민', '스파이' 등으로 매도하며 핍박했다.
"신사(神社)의 신 믿지 않고 서양 신 믿어서 벌 받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