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노무현 차명계좌' 출처 공개... 당사자들은 부인

등록 2013.04.23 11:43수정 2013.04.2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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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임주영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23일 '차명계좌 발언'의 출처를 전격 공개했으나 당사자들은 조 전 청장의 주장을 전면 부인해 의혹이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조 전 청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전주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발언 출처로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과 '당시 대검 중수부 최고 책임자' 등 2명을 지목했다.

그는 "2010년 3월 31일 강연하기 일주일쯤 전에 임경묵 전 이사장을 H 호텔 일식당에서 단둘이 만났다. 2시간 동안 밥을 먹으면서 잠깐 차명계좌 얘기를 했고 그것을 가감 없이 강연에서 그대로 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대검 중수부 최고책임자로부터 '이상한 돈의 흐름이 발견됐었다'는 내용을 전화 통화로 들었고 12월에는 경찰 정보관에게서 대검 중수부 수사관의 말을 간접적으로 자세히 전해들었다는 게 조 전 총장의 진술 요지이다.

1심 재판 때 조 전 청장이 차명계좌 얘기를 들은 출처로 지칭했던 '유명인사'가 바로 임경묵 전 이사장이고 다른 출처인 `대검 중수부의 핵심 수사라인'은 이인규 전 중수수장이라는 것이다.

조 전 청장의 2심 재판 진술로 차명계좌 발언 출처가 공개됐지만 의문은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일단 지목된 당사자들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한결같이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임 전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조 전 청장이 거짓말을 한다"며 고소를 검토하겠다고 말했고 이 전 중수부장은 "조 전 청장과 전혀 친분이 없다. 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당시 수사기획관이던 홍만표 변호사는 "임경묵이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며 "조 전 청장이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 차명계좌는 없다고 확실히 얘기도 했다. 조 전 청장은 법정에서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언을 둘러싼 의문과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조 전 청장의 발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이다.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강연으로 논란이 불거진 이후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가 기소된 뒤 입장을 밝혀왔지만 발언은 조금씩 달랐다.

그는 지난해 6월26일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언론 인터뷰에서 "차명계좌는 검찰 관계자 2명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들은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후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다 최근 들어 검찰 외의 다른 관계자를 언급했다.

그는 지난 2월 1심 결심공판에서 "2010년 3월께 나보다 정보력이 훨씬 뛰어나고 믿을만한 '유력인사'에게 우연히 차명계좌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2010년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이후 같은 해 12월 검찰 관계자 2명에게서 차명계좌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를 각각 전해들었다"고 설명했다.

임 전 이사장이나 이 전 중수부장이 실제로 관련 발언을 했는지, 조 전 청장의 진술이 왜 조금씩 바뀌었는지 등은 재판부가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다른 쟁점은 조 전 청장의 발언이 타인의 말을 전해들었다는 '전문(傳聞)'이라는 점이다.

만일 조 전 청장의 주장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수사 관계자가 아니었던 임 전 이사장이 어떻게 그런 내용을 알았는지 의문이다.

수사팀 관계자들이 관련 내용을 발설했다면 피의사실 공표죄가 적용될 수 있다. 피의사실 공표를 인정할 경우 처벌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형사소송법상 전문(傳聞)증거는 원칙적으로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고 예외적으로 이번처럼 공판준비기일이나 공판기일에 피고인의 진술을 적은 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이번 진술을 법원이 증거로 채택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재판부는 임 전 이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해 진술을 듣기로 했다.

만일 발언이 증거로 쓰인다고 해도 법원에서 실질적으로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법원이 증거의 '증명력'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전 청장은 항소심에서 감형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언 출처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목된 당사자들 역시 조 전 청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피의사실 공표 등 추가 고소·고발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양측이 한 치도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정반대 입장인 상황에서 재판부는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조 전 청장의 발언 출처 공개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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