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 없을까요?

잡초란 녀석을 생각하면 잠시도 곁눈질을...할 수가 없습니다

등록 2013.04.22 16:39수정 2013.04.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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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풀 매기 작업 뒤의 깨끗한 교회 마당 풀과 한 판 붙어 깨끗이 몰아냈다고는 하지만 언제 군락을 이뤄 고개를 내밀고 도전해 올지 모른다.

풀 매기 작업 뒤의 깨끗한 교회 마당 풀과 한 판 붙어 깨끗이 몰아냈다고는 하지만 언제 군락을 이뤄 고개를 내밀고 도전해 올지 모른다. ⓒ 이명재


농촌 목회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의 연속입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제 만남의 대상자들입니다. 만나기 전, 상대를 가늠해 보고 준비하는 과정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결과를 염두에 두고 꼭 만난다기보다 만남 자체에 목적을 둡니다. 그러니까 큰 부담 없이 생각들을 주고받고 또 복음을 사랑의 마음으로 전하기도 합니다.


농촌 목회에서 만나야 할 대상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풀입니다. 잡초라고도 하는 이 녀석은 생명력이 무척 강합니다.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하지 않는 목회자이기 망정이기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잡초로 인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게 뻔합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연을 다스릴 권한을 사람에게 주었다지만 이 잡초란 녀석을 생각하면 잠시도 곁눈질을...할 수가 없습니다.

잡초와 저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과 같은 관계입니다. 주시하고 있으면 미동도 하지 않다가 눈을 거두면 훌쩍 커버리는 잡초, 눈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돌아보면 아이들이 성큼 다가와 있듯이 잡초의 성장 속도는 초고속입니다. 속도뿐만이 아닙니다. 잡초의 번식력은 그 무엇보다 강합니다.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마당과 텃밭이 금세 잡초 천국이 되어버립니다.

벼르다가 오늘 이 잡초란 녀석들과 한 판 붙었습니다. 겨울철에 꼼짝 못하고 웅크리고 있던 녀석들이 봄기운이 돌자 머리를 내 밀더니 며칠 전 비가 온 뒤엔 눈에 거스를 정도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텃밭은 어제(4월 21일) 저희 교회 권사님이 깨끗이 매서 정리가 된 상태인데 문제는 마당의 잔디밭이었습니다. 특히 새벽이(진돗개) 집 근처엔 오물이 잘 공급된 탓인지 잡초가 제법 무성하기까지 했습니다.

개 집 근처를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중간 중간 자리잡은 잡초를 매고 나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노동에 약한 체질이라 몸이 뻐근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놈들에게 제초제라도 뿌려 씨를 말려버릴까 하다가도 이것만은 피하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제초제가 아니면 '풀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부추깁니다만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경기에 편법을 쓰는 것같이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풀과 사람이 링에 올라 공정하게 게임에 임해야지 고등 동물이라는 이유로 제초제를 퍼붓는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 생활하는 것도 아닌데, 잡초뿐 아니라 땅을 죽게 만드는 제초제를 쓸 수는 없습니다. 마당에 서식하는 지렁이 달팽이 개미 등 미생 동물들을 볼 때마다 이 마음이 굳어집니다.


따라서 저희 교회 마당과 텃밭 등 교회 근처 땅들은 살아 있습니다. 벌레들의 천국과도 같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벌레들이 사람을 겁내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벌레와의 동서(同棲)'라고 표현하면 그들이 좋아할까요. 하지만 교회를 이웃하고 있는 사람들은 좀 싫어합니다. 풀들이 그들의 땅으로 쉽게 침투해 온다는 것이에요. 미안하긴 하지만 당분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풀을 매면서 소설 하나를 떠 올렸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960년대에 발표한 소설이지 싶습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로 잘 알려진 주요섭의 단편입니다. 제목이 '잡초'라고 알고 있어요. 1960년대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동반자 역할을 한 월간 <사상계>에 발표했던 작품입니다. 제가 그 책을 통해서 오래 전에 읽었었고 또 몇 년 전에 다시 한 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잡초와도 같이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내가 어느 집 정원 잡초 뽑는 일에 차출되어 갑니다. 며칠 그 일을 하다가 잡초와도 같은 자신이 잡초 뽑는 일을 한다는 것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여겨져 일을 중간에 포기하고 귀가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작가의 대단한 안목입니다. 밑바닥 인생의 사람을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잡초와 등치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착상이 기발합니다. 작가 고유의 혜안이 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잡초를 '전혀 쓸모없는 식물'이라고 했습니다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산으로 들로 자연 산 풀을 뜯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저희 교회 마당에까지 와서 민들레와 고들빼기 등을 캐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에 좋은 풀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가끔 이런 궁상을 떨어 봅니다. 과학과 문화가 발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반기를 드는 폭이 넓어진다고요.

오늘 풀과 한 판 붙었습니다만 승리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긴 것 같지만 훗날이 중요합니다. 제가 뽑은 것보다 휠씬 많은 잡초들이 군락을 지어 시위라도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풀과의 싸움에서 순간적으론 승리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패한 게 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승즉패(勝卽敗)'란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풀 매기 #잡초 #제초제 #교회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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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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