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그리파 흉상
루브르 박물관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로마 제정을 연 일등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이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사에서 길이 남은 것은 그가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것에 있지 않다. 제국을 안정화시켜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의 기초를 만든 황제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아그리파는 바로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충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건설부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맡아 제국을 누비며 곳곳에 인프라를 깔았다. 그는 240명의 노예출신 건축기사단을 만들어 이를 진두지휘해 도로와 수도 그리고 신전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식민화된 지역과 민족을 로마로 동화시켰다. 이것이 로마가 아우구스투수 이후 200년 동안 확고한 팍스 로마나를 만들었던 원동력이었다.
아그리파는 로마 역사에서 이런 인물이었다. 장군으로, 정치가로 최고 직위인 집정관을 세 번씩이나 지내면서 아우구스투스를 황제로 탄생시킨 인물, 제정 이후에는 로마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제국의 인프라인 도로와 수도를 건설한 공로자, 그가 바로 아그리파였다. 이런 아그리파가 세운 판테온이었기에, 하드리아누스가 완전히 새롭게 재건축을 했음에도 판테온의 건축주는 여전히 아그리파가 되었던 것이다.
판테온의 전면 기둥 위에 이런 말이 라틴어로 쓰여 있다. "M·AGRIPPA·L·F·COS·TERTIUM·FECIT" 해석한 즉, "루시우스(Lucius)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 세 번째 집정관 시절, 이것을 세우다"라는 뜻이다.
건축사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판테온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원형이 보존된 건물이다. 로마제국 시절, 그것도 이른바 팍스 로마나 시절의 건축물이 이렇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것은 '경이적이다'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로마시대 공공 건축물이 대부분 석조 건물이고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보수 유지만 제대로 한다면 몇 백 년 정도 버티는 것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900여 년을 버텨온 건물은 판테온 이외에는 없다. 어떤 건축물도 인간의 지속적인 관리 없이 몇 백 년을 버틸 수 없고, 설혹 철저한 관리 보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1천 년 이상을 버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목조 건물의 경우 관리만 잘하면 천 년을 가는 경우가 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호오류지(법륭사)의 5층 목탑이다. 조사에 의하면 그 건축 연대가 서기 594년이니 대략 1400년을 버텨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