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전→성당→국립묘지...판테온의 거침없는 변신

[세계문명기행 V : 로마문명 이야기③] 로마 판테온 이야기(1)

등록 2013.04.25 12:05수정 2013.09.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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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이 세계 문명사에 남긴 큰 족적 중 하나가 건축이라 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무엇으로 이 이야기의 문을 열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로마의 건축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로마 건축물 중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적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중해 연안 곳곳에 로마인들이 만든 도로, 다리, 수도교, 개선문, 극장, 신전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유적들이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개중 상당수는 아직도 현대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2천 년 전에 만든 건축물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니! 상상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실이다.


로마 건축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로마사와 건축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해야 한다. 사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있어 교양적 수준을 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 앞에서 로마의 건축을 설명하려고 하니 만용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고심 끝에 로마건축 이야기의 첫 번째 주인공을 로마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판테온(Pantheon)으로 정했다. 누군가 내게 로마에 가서 꼭 보아야 할 건축물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이것부터 추천할 것이다. 이 건축물을 보지 않고 로마를 떠났다면 로마를 여행했다고 인정받긴 힘들 것이다. 그만큼 이 건축물이 로마에서 갖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이 걸작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판테온'의 의미부터 알고 가자. 판테온은 라틴어 Pan(all, 모든)과 Theon(god, 신)의 합성어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말로 옮기면 만신전(萬神殿)이란 뜻이다. 로마시대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다신교 사회였다. 도시 이곳저곳에 그리스의 로마판 신들(주피터, 유노, 넵튠, 미네르바 …등등)의 신전을 두었는데, 이곳 판테온은 이런 신들을 모두 모아 놓은 곳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중해 연안에서 신전은 이 지역 사람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따라서 그 모든 신을 한 곳에 모신 것이라면, 판테온은 우리 식으로 보면 조선시대 왕들의 신주를 한꺼번에 모신 종묘 정도에 가까운 매우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판테온은 로마제국의 종묘인 것이다.

자, 이제 판테온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자.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몇 년 전 내가 찍은 사진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 시내 한 가운데 있는 판테온이다.


 로마 시내 한 가운데 있는 판테온
로마 시내 한 가운데 있는 판테온박찬운

세계 건축사의 기적, 판테온

언뜻 보면 그저 조금 오래된 건물 같다. 그렇다고 뭐 그렇게 깜짝 놀랄 만한 정도의 역사를 가졌을까.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이 건물의 나이는 올해로 무려 1888세다. 이 건물은 오현제 시대의 세 번째 황제 하드리아누스 때인 기원 후 125년께에 세워졌다. 그러니 대체로 19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건물이라 생각하면 된다.


원래 이 자리엔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오른 팔이었던 마르쿠스 아그리파(BC 63~12)가 세운 신전, 이른바 오리지널 판테온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기원 후 80년께 불에 타서 없어졌다. 현재의 판테온은 그 후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원래의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하드리아누스는 평소 아우구스투스의 심복이었던 아그리파를 존경했던 모양이다. 단순한 심복이 아니라 로마 제정의 기초를 쌓은 충신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로마 제정을 연 아우구스투스는 정치력은 있었지만 그의 양부 카이사르와 달리 군사적 식견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간파한 카이사르는 자신의 후계자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를 정하면서 군단병 출신의 아그리파를 심복으로 붙여준다. 아그리파가 없었다면 카이사르 사후 일어난 내전에서 아우구스투스가 이미 경륜에 있어서 절정의 상태에 있었던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그리파 흉상
마르쿠스 아그리파 흉상루브르 박물관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로마 제정을 연 일등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이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사에서 길이 남은 것은 그가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것에 있지 않다. 제국을 안정화시켜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의 기초를 만든 황제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아그리파는 바로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충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건설부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맡아 제국을 누비며 곳곳에 인프라를 깔았다. 그는 240명의 노예출신 건축기사단을 만들어 이를 진두지휘해 도로와 수도 그리고 신전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식민화된 지역과 민족을 로마로 동화시켰다. 이것이 로마가 아우구스투수 이후 200년 동안 확고한 팍스 로마나를 만들었던 원동력이었다.

아그리파는 로마 역사에서 이런 인물이었다. 장군으로, 정치가로 최고 직위인 집정관을 세 번씩이나 지내면서 아우구스투스를 황제로 탄생시킨 인물, 제정 이후에는 로마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제국의 인프라인 도로와 수도를 건설한 공로자, 그가 바로 아그리파였다. 이런 아그리파가 세운 판테온이었기에, 하드리아누스가 완전히 새롭게 재건축을 했음에도 판테온의 건축주는 여전히 아그리파가 되었던 것이다.

판테온의 전면 기둥 위에 이런 말이 라틴어로 쓰여 있다. "M·AGRIPPA·L·F·COS·TERTIUM·FECIT" 해석한 즉, "루시우스(Lucius)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 세 번째 집정관 시절, 이것을 세우다"라는 뜻이다.

건축사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판테온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원형이 보존된 건물이다. 로마제국 시절, 그것도 이른바 팍스 로마나 시절의 건축물이 이렇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것은 '경이적이다'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로마시대 공공 건축물이 대부분 석조 건물이고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보수 유지만 제대로 한다면 몇 백 년 정도 버티는 것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900여 년을 버텨온 건물은 판테온 이외에는 없다. 어떤 건축물도 인간의 지속적인 관리 없이 몇 백 년을 버틸 수 없고, 설혹 철저한 관리 보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1천 년 이상을 버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목조 건물의 경우 관리만 잘하면 천 년을 가는 경우가 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호오류지(법륭사)의 5층 목탑이다. 조사에 의하면 그 건축 연대가 서기 594년이니 대략 1400년을 버텨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단한 일이다.

 일본 호오류지의 5층 목탑,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일본 호오류지의 5층 목탑,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박찬운

여하튼 1900년을 원형 그대로 버텨 온 판테온은 세계 건축사의 기적 중 기적이다. 이 건물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 인류사에 길이 남는 건축물이 될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판테온의 이런 생명력은 말 그대로 만신전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거기에 있는 신들이야말로 우주의 모든 조화를 가능케 하는 신들이었으니 자신들이 사는 집을 이렇게 수천년 동안 온전히 보전하지 않았을까.

기독교 성당으로의 변신, 판테온을 살리다

역사를 추적해 보면 판테온이 이렇게 잘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세 시절 기독교 성당으로 용도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7세기 초, 당시는 동로마 제국이 로마에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던 시절인데, 이때 황제 포카스가 교황 보니파시우스 4세에게 이 판테온을 선물한다. 그리고 교황은 이 건물을 성당으로 개조하여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 성당'으로 명명한다. 그렇게 해서 중세의 엄혹한 시절에도 이교도의 신전, 판테온은 살아남는다.

사실 서양사에 이런 예는 많다. 4세기 이후 서양 사회는 기독교 사회가 되는데 이때 로마의 많은 공공 건축물은 파괴된다. 이교도가 지었고 거기엔 이교신들이 모셔졌기 때문이다. 일신교인 기독교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판테온처럼 운이 좋은 예가 더러 있다. 그것은 기독교도가 보아도 건물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아까운 나머지 선뜻 때려 부수지 못하고 용도 변경을 통해 살려 놓은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에 세워졌던 성소피아(아야 소피아) 성당도 마찬가지다. 6세기에 만들어진 이 엄청난 성당은 900년을 버티다가 이슬람 세력(오스만 터키)의 손에 떨어지는데(1453년), 당시 술탄 메메드 2세는 도저히 이 성당을 부술 수가 없었다. 이후 그는 그것을 모스크로 바꾸어 사용토록 명령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 우리가 이스탄불에 가면 또 하나의 기적 같은 건물, 성소피아 성당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일명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일명 소피아 성당박찬운

판테온은 중세 초기 성당으로 개명한 덕에 살아남는다. 그리고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를 거쳐 이 건물은 또 다시 그 역할을 바꾼다. 그것은 묘지다. 로마의 국립묘지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르네상스의 천재 라파엘로를 비롯해 근대 이태리를 통일함으로써 '이태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의 묘를 만날 수 있다. 만신전에서 기독교 성당으로, 그리고 국립묘지로…. 이렇게 판테온은 지난 2천 년 동안 그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판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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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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