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구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법에 대해 질문하는 마이클과 그에 답하는 법륜스님
안희경
누군가 나를 증오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들은 억울하면서도 불편하고 마음이 쓰인다. 그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는 건 뭔가 응어리진 것이 있고 아프다는 뜻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면서도 애써 그 고통을 거부할 때가 많다. 아파도 당연하다고 몰아붙이는 편이 당장은 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의 적대감도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과 본질은 같다고 본다. 이데올로기, 국익, 평화, 정의라는 이름으로 집단의 명분을 세워놓았지만, 그 치장막을 거둬내고 보면 안에는 개인처럼 오해와 욕심, 습관으로 이어져온 과거의 선택이 켜켜이 엉킨 타래가 보인다. 그 가운데는 끊고 갈 것과 풀고 갈 것이 있다. 다수의 재산을 위협하는 소수를 위한 폭력이라면 끊고 가야 할 것이고, 다수를 위한 이익이라고 하지만 다른 다수의 고통을 딛고 가는 것이라면 실마리를 풀고 조절해야 할 일이다.
이번 보스턴마라톤 테러에서 보스턴 경찰이 시의 출입을 막고,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을 찾기 위해 집을 뒤지고 다닐 때,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있던 하버드 종교학 대학원에서 온 젊은 신학도와 불교학도들, 그리고 다른 젊은 무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인권 침해를 알리고 막으려고 분주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있기 하루 전 점심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체첸 출신의 두 청년이 용의자로 붙잡혔고, 한 청년은 총에 맞아 절명했다. 그 청년의 동생은 사경을 헤맨다. 청년이 죽은 그 밤에, 보스턴 거리에는 성조기를 들고 춤을 추며 환호하는 시민들이 몰려나왔다. 보스턴은 민주당,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많고, 교육 수준이 다른 곳보다 높기에 이성적인 분위기를 풍겨오던 도시였다. 새삼 감정이 지배하는 시간 속에서 관념적 이성이 얼마나 나약한지 절감하게 해줬다.
다음 날, 뉴욕의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스턴의 지성인들도 과거 부시 정권과 현재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외치는 '악의 축'이란 논리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적을 사방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란 것을 지적해오고 있었다. 체첸, 아랍, 북한에 대한 분노의 돌림놀이를 이어가며 유지하고자 하는 힘이 장막 뒤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쟁 속에서 이익을 갖게 될 군산복합체를 위해, 다수 미국인과 다수의 이라크 주민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되었다고 지적해온 이들이 바로 자유주의자들이다. 전쟁에 쓸 돈을 의료보험 확대와 교육에 쓰자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보스턴테러, 북한의 핵 개발 위협 속에서, 미디어는 물론 SNS 속 여론 또한 북한 주민의 상황, 평화를 원하는 한국인, 그리고 러시아와의 갈등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체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공항에서 눈물 흘리던 여인... 그녀의 '자비심'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