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경기 수원병) 국회의원이 팔달문 개문을 알리는 대북을 치고 있다.
원정연
수원화성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인 장조(莊祖, 세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 영우원(永祐園)에서 수원 화산(華山) 현륭원(顯隆園)으로 옮기면서 그곳에 있던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이전해 만든 신도시로 1794년(정조 18) 1월부터 1796년(정조 20) 9월까지 건설됐다.
총연장 5.7km 구간에는 장안문(북문), 팔달문(남문), 창룡문(동문), 화서문(서문)을 비롯해 각루와 포루, 암문, 봉수, 장대, 공심돈 등 48개소의 방어시설이 설치돼 조선 성곽건축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을 얹은 다포식 건물인 팔달문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성문 대부분이 파괴된 장안문과는 달리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일찍이 1964년 9월 보물 제402호로 지정됐다.
이후 지난 2007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정밀안전진단 결과 목부재 변형으로 인한 원형훼손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 6월부터 전면적인 해체 보수에 들어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전흥수 대목장을 비롯해 도편수 김용덕, 단청장 정세훈, 장정일, 석장 김건태, 와장 이유영 등 장인들이 참여한 보수공사는 화강암 석축 위에 있던 2층 규모의 목재건축물을 전면 해체하고 균열과 부식이 심한 부재를 새로운 목재로 교체했다.
지난해 7월 24일 상량식을 갖고 지붕 기와공사와 주변 정비공사를 거쳐 완성된 팔달문 해체·보수공사에는 총 사업비 47억(국비 70%, 도비 15%, 시비 15%)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