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속에 피어나는 얼레지 꽃망울
서종규
조금은 무거운 지리산 종주 길인데, 갑자기 보랏빛 '얼레지꽃'이 두 눈에 환하게 들어온다. 무겁게 출발했던 지리산 종주의 발걸음이 날아오르려는 보랏빛 얼레지꽃처럼 가벼워진다. 아직은 이른 봄빛이 무겁게 느껴지는 지리산 종주길이 갑자기 환해진다. 뜻밖의 만남, 기대하지 않은 얼레지꽃은 무거운 나의 발걸음을 사뿐하게 해준다.
봄꽃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단정할 수 있는 꽃이 얼레지꽃이다. 얼레지꽃은 주로 산 능선에 핀다. 남쪽 완도 상황봉에서는 3월 초에 피어나기 시작한다. 전남 조계산 능선, 지리산 바래봉, 강원도 오대산이나 곰배령 등에서 봄이면 늘 그 아름다움을 몰래 드러내는 꽃이다. 그러나 아무 산에나 지천으로 피는 꽃이 아니다. 꽃말은 '질투'다.
5월 3일(금) 아침 지리산으로 혼자 출발했다. 광주에서 아침 6:35분 구례행 버스를 타고 8시 구례에 도착했다. 8:20 지리산 성삼재를 향하는 군내버스를 탔다. 지리산 천은사 입구에서는 아직도 문화재 관람료(1,600원)를 징수한다. 현수막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관람료를 징수하니 무료 통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남원방면을 이용하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9시, 지리산 성삼재(1,100m)에서 출발하는 종주 길은 아직도 겨울에서 갓 깨어난 이른 봄의 모습이다. 나뭇가지들은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다. 다만 봄기운을 찾을 수 있는 것은 핀 진달래꽃 보다 꽃망울이 더 많은 진달래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는 무거움이 앞선다. 즐거워야 할 지리산 종주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늘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첫날의 일정은 세석대피소까지 약 23km이다.
노고단 대피소 주변에 피어나기 시작한 진달래 꽃잎이 햇살을 받아 밝아진다. 산 아래는 이제 철쭉꽃의 세상이었다. 전남 곡성을 지나면 기차마을에서 섬진강변으로 이러지는 철로 언덕에는 온통 붉은 철쭉들로 이어졌다. 기차보다 길게 붉은 철쭉들이 철로 언덕에 이어져 피어 있었다. 지상의 나무들은 그 푸른 잎들을 다 쏟아내며 초여름을 준비하고 있는데, 지리산 종주길 노고단은 이제 봄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