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미사비가 내리는 가운데 거행된 5월 9일의 '대한문미사' 장면
전재우
충남 태안에서 살고 있는 나는 매주 월요일에는 서울을 갑니다.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는 월요일 저녁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거리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했고, 지난해 7월부터는 '대한문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올해 연세 아흔이신 모친을 모시고 사는 관계로, 과거 암투병도 하셨던 노친의 건강 문제 때문에 요즘에는 월요일 서울행을 본의 아니게 거르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고 죄스러운지 모릅니다.
고생스럽게 서울을 가서 '대한문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천주교 신자로서의 큰 자부심을 다시금 확인하곤 합니다. 나는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 안에서 편안히 앉아 미사를 지낼 때보다 대한문 앞이나 어느 길거리, 눈물어린 삶의 현장에서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할 때 내가 그리스도 신앙인임을 더욱 뜨겁게 자각하곤 합니다.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 그리스도님의 삶과 복음 안에서 믿음과 희망을 안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큰 행복감과 위안을 얻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작고 미약한 존재지만, 부당하고 가혹한 국가폭력과 자본의 횡포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작게나마 연대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체감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을 늘 존경의 눈으로 보곤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에게서, 또 미사에 함께 하는 수녀님들과 형제자매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님을 체감하곤 합니다.
거리의 목자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보다 대한문 앞과 세상 곳곳의 눈물어린 현장 안에 더욱 생동하는 모습으로 계시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성당 안에 편안히 앉아 미사를 지낼 때 갖게 되는 이상한 죄스러움, 저 대한문 앞과 세상 곳곳의 눈물 어린 현장에서 예수님을 체감하며 미사를 지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자꾸만 대한문 앞과 이곳저곳의 '생명·평화미사'에 참례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울러 나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성당을 다니고 기도생활에 충실하더라도 대한문미사와 세상 곳곳의 눈물어린 현장에서 거행되는 미사를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부정한다면, 내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가 대한문미사와 세상 곳곳의 현장미사를 신자들에게 전혀 알려주지도 않고, 신자들은 그런 미사가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알아도 무관심 속에서 남의 일로 여기며 산다면, 그런 교회와 신앙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깊은 회의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정치인으로서, 천주교 신자로서 부끄럽지 않습니까?